중국 출신 사진가 쓰루이 마는 런던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여성들과 어울리며 자유롭게 셔터를 눌렀다. 일상의 소소한 순간에서 탄생한 장면들은 편견 어린 시선과 고정관념을 벗어난 여성의 면면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자기만의 아름다움을 지켜가는 여성들의 연대, 그 단단한 공동체가 증명하는 ‘상호 연결’의 힘에 대하여.


런던에서 생활하는 아시아계 여성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내는 ‘Little Things Mean A Lot’ 시리즈를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
이 작업은 명확한 목표 없이 시작되었다. 일상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 장면을 우연히 마주했을 때 직감을 따라 셔터를 눌렀을 뿐이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냈더니 시리즈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결과물이 쌓였다. ‘Little Things Mean A Lot’이라는 제목은 미국 가수 베티 스완(Bettye Swann)이 부른 동명의 노래에서 영감을 얻었다. 모래알처럼 작은 일상 속 순간들이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전하는 가사가 내 사진들과 잘 어울린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런던 같은 대도시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평온한 순간들에 집중하는 내 작업 철학과도 맞닿은 지점이 있었다.
베이징에서 태어나 뉴욕과 런던에서 자랐고, 현재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이러한 배경이 당신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가족의 곁을 떠나 타국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정체성과 소속감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생겼고, 이에 대한 탐구를 기반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자전적인 면이 있는 내 작업을 ‘내 삶의 여성들을 통한 자화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카메라 앞에 선 여성들이 ‘내가 가장 진실되게 담겨 있다’고 느낄 수 있는 사진을 남기는 것이 내 도전 과제였다.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작업이 그들에게 뜻깊은 일이 되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어떻게 만났고, 어떤 과정을 거치며 작업을 진행했나?
사진 속 인물들은 내가 런던에 거주하기 시작한 이후에 만난 여성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모델, 의상 디자이너, 미술가 등 예술 분야에서 활동했는데, 그 때문인지 우리의 협업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그 목적과 의미를 이해해주었다. 하지만 이 시리즈의 본질은 우리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자체에 있었기 때문에, 촬영은 평범한 하루의 연장선상에서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진행되었다. 그 결과 내 친구들이 곤충을 관찰하거나 산책을 하고,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 등이 프레임에 담겼다.

조용한 강인함과 명징한 존재감, 회복력을 지닌 자연이 여성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버섯, 이끼, 작은 도마뱀, 꽃과 나무 등 자연의 다양한 생명체도 사진에 등장한다. 자연의 어떤 점에 매료되었나?
자연에 대해 배우는 걸 좋아한다. 자연과 계절의 관계, 식물이 다른 생명체에 의존하는 과정, 생물이 인간의 이해 바깥에서 소통하는 방법 등을 알아갈수록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우리의 앎이 얼마나 얕은지 깨닫는다.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자연물 중 하나는 버섯이다. 버섯을 구성하는 유기체의 대부분은 땅속에 숨겨진 채로 주변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는데, 그 사실이 인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연결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진다. 조용한 강인함과 명징한 존재감, 회복력을 지닌 자연이 여성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서양 국가에 거주하는 아시아계 여성으로서 우리는 많은 경험을 공유한다”라고 말했다. 당신이 접한 아시아계 여성의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고 보나?
아시아 여성을 바라보는 서구의 일부 시선은 부정적 고정관념을 형성한다. ‘아시아 여성은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이라는 편견 때문에 연인 관계에서 피해를 입거나 성적으로 대상화 된 이들도 있다. 이러한 잘못된 시선이 내면화되면 사회적 표준으로 굳어져버릴 위험이 크고, 아시아 여성 개개인의 정체성을 지워내 그들을 ‘대체 가능한’ 존재로 보이게 한다. 이러한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저항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아시아 여성의 관점에서 탄생한 시각적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향하는 시선을 전복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되찾는 것이다.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고 스스로를 온전히 보여주면 그 어떤 통제도 통하지 않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닐 수 있다. 또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그 연대를 더 단단히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여성들의 연대가 어떤 가치를 지닌다고 믿나?
현지인이 아닌 ‘소수의 외부인’으로 살아가는 경험에서 비롯된 연대감은 스스로를 애써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동체를 만들어낸다. 그 안에서 우리는 그저 존재하며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아시아 여성 공동체의 가치는 전 세계로 확장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경험은 국경과 문화를 비롯한 모든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분명히 지닌다. 그렇기에 모든 여성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배제와 차별이 만연하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은 오늘날, ‘상호 연결’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타인과 연결되는 일은 행복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인간적인 상호작용이 있어야 서로를 진심으로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정하게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한다. 마음을 닫아버리기 쉬운 현실이지만, 각자의 내면에 타인을 위한 공간을 조금이라도 만들어둔다면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야 우리가 더욱 의미 있게 어우러지고, 나 자신과 주변 세상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 이해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첫 전시를 내 인생의 여성들에게 바친 건 의도적인 선택이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헌사가 세계 곳곳의 여성들에게 무엇을 전할 수 있기를 바라나?
내 인생의 여성들은 나를 존재하게 했다. 어머니, 자매처럼 가까운 친구들, 이웃의 여성 공동체가 없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을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서 느끼는 감사와 사랑이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도 닿을 수 있었으면 한다. 더 나아가 여성들이 따로 또 같이 이뤄온 성과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보다 관대하게 대하기를 바란다. 모든 여성이 충분히 인정받는 세상을 기대한다.
당신의 주변 여성들과 함께해온 날들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아름다운 순간이 참 많았지만, 지금 떠오르는 건 부모가 된 친구들의 모습이다. 새 생명을 탄생시키고 돌보는 건 신성한 일이지 않나. 어머니의 경이로운 능력이 발현되는 순간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사실이 특권처럼 여겨진다. 아이에 대한 사랑을 품은 여성 공동체가 한마음으로 모여 있던 그 장면이 오래도록 생생하게 기억될 것 같다.


현대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경험은 국경과 문화를 비롯한 모든 경계를 넘어서는 보편성을 분명히 지닌다.

여성들이 따로 또 같이 이뤄온 성과를 돌아보며 스스로를 보다 관대하게 대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