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넘은 시간, 저마다의 밤을 마무리하는 순간을 포착하며.

리처드 퀸(Richard Quinn) 쇼를 보러 가는 길은 참 길었습니다. 금요일 밤 런던 시내의 교통 체증은 서울의 출퇴근 시간만큼 괴로웠고 오후부터 내리던 비에 온몸은 물기를 가득 머금은 채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죠. 에디터의 이러한 몸과 마음은 리처드 퀸 쇼장에 들어가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달라졌습니다. 소복이 쌓인 눈과 거리를 밝히는 가로등, 커다란 철문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입니다. 마치 19세기 런던의 거리를 재현한 듯 보였는데요. 이 모든 세트는 리처드 퀸이 런던에 바치는 러브레터. 그래서인지 쇼가 시작되고 타운하우스에서 나와 철문을 지나는 모델들은 넷플릭스 드라마 <브리저튼> 속 무도회장을 나서는 여주인공들을 닮아 있었습니다.

블랙 & 화이트 톤으로 시작한 쇼는 플로럴 패턴과 파스텔컬러로 확장되었으며, 강렬한 레드 컬러 드레스가 등장하며 절정을 맞았습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대담해진 실루엣이 돋보였는데요. 코르셋 벨트로 허리를 조였고, 풍성한 패니어 스커트는 극적인 분위기를 배가시키는 요소로 작용했죠. 쇼의 막바지에는 신부의 상징인 베일을 쓴 모델들이 반짝이는 웨딩드레스 룩을 입고 나와 은은한 조명 아래 빛을 발했습니다.

리처드 퀸은 명실상부 런던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이자 브랜드입니다. 쇼 노트를 통해 이번 컬렉션은 리처드 퀸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그의 작품에 영감을 준 런던이라는 도시를 향한 헌정이라고 밝힌 바 있죠. 여러 브랜드가 런던 패션 위크에 불참 소식을 건넨 이번 시즌, 리처드 퀸과 런던의 긴밀한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인상적인 듯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