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 제형의 파운데이션을 바른 뒤 얼굴 전체에 오일 미스트를 뿌려 촉촉한 피부를 연출하고 옅은 핑크 컬러로 볼과 입술을 가볍게 물들여 변신 전의 모습을 나타냈다.
위아래 점막을 채운 뒤 브라운 아이섀도를 칠해 음영감을 주고
실버 글리터를 얹혀 눈매를 강조한 스모키 메이크업.

더 빠르고 더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시대. 그만큼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소비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트렌드는 과거의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는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오래된 경구처럼 다시 과거의 것에 주목하고 과거에서 영감을 받아 또 다른 뉴 트렌드가 탄생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최근 몇 년간 뷰티 신에서는 Y2K, 빈티지, 뉴트로 등의 키워드가 주목받고 있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그 시절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공통된 무드를 공유하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10년 전 유행한 스모키 메이크업이 다시 급부상하는 추세. 지난해 SNS를 강타한 ‘몹 와이프 메이크업(Mob Wife Makeup)’, ‘그런지 메이크업(Grunge Makeup)’에 이어 이제는 ‘언레코그나이저블 메이크업(Unrecognizable Makeup)’이 화제다. 메이크업으로 본래 얼굴 윤곽을 완전히 바꾸거나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이 트렌드는 속도감 있는 편집 기법과 함께 민낯에서 대담한 룩으로 드라마틱하게 전환되는 것이 특징. 이러한 형식은 콘텐츠가 빠르게 소비되는 틱톡의 성격과 맞물리며 단순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챌린지로 확산되고 있다.

언레코그나이저블 메이크업은 약 10년 전 유행한 스모키 메이크업, 강한 콘투어링, 누드 립 스타일을 결합한, 그야말로 레트로 무드의 집합체다. 2010년대 초반에 유행한 메이크업을 떠올려보자. 두껍고 길게 뺀 아이라인, 인조 속눈썹을 활용해 눈을 극대화한 볼륨, 입술 색은 최대한 덜어내 누디하게 표현하며 시크한 분위기를 가미한 것이 이 시절 스모키 메이크업의 정석. 누드 립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며 2010년대를 주름잡은 맥(M.A.C) 립스틱 #피치스톡이 지난 1월 재출시될 만큼 지금은 누드 립의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다만 현재의 스모키 메이크업은 과거보다 한결 담백하게 연출하는 것이 핵심. 블랙보다는 브라운이나 그레이 톤의 부드러운 색조로 음영을 주고, 아이라인과 아이섀도 사이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스머징해 깊이감을 더한다. 속눈썹은 자연스럽게 컬링하고 가벼운 제형의 마스카라를 발라 무거운 느낌을 중화한다. 볼드한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가되, 그 안에서 간결함을 잃지 않으며 동시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지금 트렌드. “예전에는 과장된 속눈썹이 스모키 메이크업의 포인트였다면, 지금은 본연의 속눈썹을 활용하는 것이 특징이에요. 여기에 아이라인을 얇고 섬세하게 그리면 세련된 인상을 줄 수 있고, 아이라인과 아이섀도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스머징하면 한층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낼 수 있죠.” 메이크업 아티스트 임정인의 조언을 참고해보자. 여기에 입자가 있는 펄 아이섀도나 글리터까지 얹으면 미묘한 올드 스쿨 무드와 함께 하이키 글램 룩을 완성할 수 있다.

스모키 메이크업에 일가견이 있는 셀럽들의 룩을 살펴봐도 좋다. 고스 걸 느낌이 충만한 모델 가브리에트 벡텔(Gabbriette Bechtel)은 아이라이너로 위아래 점막을 빈틈없이 채우거나 아이홀 부분에 진한 딥 브라운 아이섀도를 듬뿍 칠한 뒤 스머징해 독보적 아우라를 자아낸다. 그런가 하면 모델 신디 킴벌리(Cindy Kimberly)는 섬세하게 그린 눈썹과 누디한 베이지 립 제품으로 실제 입술보다 과장되게 그려 강렬한 개성을 드러내며 스모키 메이크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일상에서 이 대담한 룩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다면 메이크업 아티스트 임정인이 전하는 아래 팁을 숙지하길. 먼저 손쉽게 분위기를 전환하고 싶다면 아이라이너로 눈 아래 점막을 채워볼 것. 언더 아이래시 라인만 가볍게 쓱쓱 채워도 인상을 또렷하게 만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모델 가브리에트 벡텔이 자주 시도하는 룩이다. 스모키 메이크업이 아직 낯설다면 은은한 브라운 라이너를 사용하거나 부드럽게 발색되는 크리미한 펜슬 제형의 라이너를 사용해보길. 좀 더 과감한 연출을 원할 때는 블랙 라이너를 선택해도 좋다. 아이라인을 그린 뒤 비슷한 컬러의 매트 아이섀도를 덧바르면 지속력을 높일 수 있으니 참고하자.

여기에서 만족하기 어렵다면 되직한 마스카라로 펑키한 매력을 더해보기를 권한다. 베네피트의 매드갤 바운스 마스카라, 구찌 뷰티의 르 마그네티즘, 돌체앤가바나 뷰티 에버풀 XL 익스트림 볼륨 앤 리프트 마스카라 등 최근 출시되는 제품은 모두 마치 속눈썹을 연장한 듯 풍성하지만 가벼운 텍스처로 완성해준다. 포인트는 정석대로 꼼꼼하게 바르기보다 마치 현대미술가의 붓질처럼 속눈썹 사이를 지그재그로 자유롭게 오가며 연출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마스카라가 뭉친 것처럼 보인다고 할 수 있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터치하는 것 또한 언레코그나이저블 뷰티와 맥을 같이한다는 것을 잊지 말 것.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이자 나를 가장 과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수단으로 떠오르는 언레코그나이저블 메이크업. 지금, 그 경계에서 우리는 새로운 미감을 창조하고 있다. 나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화시키는 동시에 가장 나다운 나를 표현하는 법. 과거와 현재의 미감을 공유하며 나를 표현하는 혁신적인 방식, 이것이 바로 언레코그나이저블 뷰티의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