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청춘이란 찰나에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 영화, 음악,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까지.
마리끌레르 피처 에디터 5인이 저마다의 생에서 건져 올린,
불완전하게 반짝이는 청춘의 조각들.

배우 홍경
“의심과 불안, 불확실성 속에서도 나의 기저로, 기저로, 가장 아래로 내밀히 내려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어떤 굳은 믿음 같은 게 있었어요.” 올해 스물아홉, 20대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있는 배우 홍경과 마주 앉아 지난 시간을 회고하기로 했다.(이번 화보를 위해 그를 포함해 많은 스태프가 모여 만든 단체 대화창 이름도 ‘twenty’였다.) 우리는 20대의 시간을 여물게 하는, 불면의 밤을 화보의 배경으로 삼았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올 때, 사위는 적막하고 의식은 더 명료해지는 시간을. 그 형형한 얼굴들을 담기로 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지난 밤들을 떠올리며 자주 불안하고 초조했음을 털어놓았다. 그가 삶을 이루며 보고 경험한 훌륭한 작품들처럼 그렇게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서, 본 만큼 자신도 해내고 싶어서, 자신의 상한선에 닿고 싶고, 자신을 다 써보고 싶어서 그는 자주 불안했다고 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은 얼마나 귀하고 드높은가. 그 고군분투는 얼마나 찰나의 것이며 쉽게 깨어지는 것인가. 젊음의 광채를 만드는 것이 바로 그런 마음 아닐까 하고 그의 맑은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유선애 피처 디렉터

배우 오경화
“제가 진짜로… 그냥 들이받는 애거든요. 소처럼. 태몽도 소 꿈인데, 아무튼 들이받아요.” 이보다 가열차고 담대할 수 있을까 싶지만, “지금 생각하면 어휴, 다시는 못 할 것 같아요.(웃음)”라고 말하는 사람. 누군가는 티 내고 싶지 않아 애써 숨기는 어색함, 부끄러움, 자신 없음, 그렇지만 하고 싶은 그 모든 마음을 포장하지 않고 툭 꺼내 보이는 오경화 배우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진심으로 동생의 꿈을 끌어안고 응원해주던 정자 언니(그가 드라마 <정년이>에서 맡은 역할)처럼 배우 오경화의 다음을 응원하고 싶어진다. “제가 바라는 세상은 편협하지 않은 세상이에요. ‘각자의 울타리에서 나와도 안 다쳐, 다 같이 잘 살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게 제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은 소통인 것 같아요.” 이 찬란한 마음이 좋은 영화 안에서 계속해서 생동하길, 긴 팔과 다리를 시원하게 내저으며 나아가길 바라게 되었다. 근래에 마주한 가장 반짝이는 존재였다. 강예솔 피처 시니어 에디터

더보이즈 큐, 김우민, 홍사빈, 쏠
인터뷰를 하다 보면 가끔씩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사람의 목소리, 눈빛과 표정까지 지면에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떤 순간에는 그의 진심이 들리고 보이는 것만 같아서, 아무리 있는 그대로 적어보려 해도 납작한 텍스트로는 오롯이 표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난 칼럼들을 다시 꺼내 읽어보았을 때, 가장 선명히 떠오르는 청춘과 함께한 순간들을 여기에 한 번 더 남겨둔다. 이들의 낭만, 열정, 사랑이 보다 진실하게 가닿기를 바라며. 김선희 피처 에디터
“소년, 소녀가 저한테는 가슴을 울리는 단어예요. 나이를 떠나 누구에게든 찬란히 빛나는 듯한 느낌을 주잖아요.” _더보이즈 큐
“아무리 힘들어도 마지막 힘을 내보는 거예요. ‘무조건 간다’는 생각만 품은 채 끝내 터치 패드에 손이 닿을 때까지요.” _수영 선수 김우민
“‘낭만’이란 단어를 좋아해요. 작은 낭만을 품고 있을 때 마음이 가끔 따뜻해지더라고요.” _배우 홍사빈
“제 삶에 당연히 존재하는 사람들한테 오래 사랑을 주는 게 소원이에요. (…)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이 쌓이다 보면, 더 사랑할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_뮤지션 쏠

뮤지션 김창완
잠자리 안경을 쓴 채 공허한 눈빛으로 ‘청춘’을 부르는 1980년대의 김창완을 보는 걸 좋아했다. 앳된 얼굴로 “언젠간 가겠지 / 푸르른 이 청춘”이라 읊조리는 그를 볼 때면 대체 시간이란, 청춘이란 무엇인가 싶었다. 20대의 중반에 그를 만나 인터뷰했을 때, 내가 건넨 질문은 나보다 앞서 생을 살아낸 이에게 내보인 청춘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건넸을 때, 그는 나를 오래 바라보더니 이렇게 답했다. “내가 그린 그림 중에 ‘인생 낙서’라는 게 있어요. 그 그림은 인생을 낙서처럼 끄적여봤다는 뜻과 함께, 아무 생각 없이 휘갈긴 듯해도 하루하루에 인생의 참맛이 담겨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인생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꼼꼼히 살핀다고 해서 더 잘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람결에 몸을 던진 낙엽처럼 산다고 해서 삶이 놓아지는 것도 아니에요. (…) 이렇게 살아도 되고 저렇게 살아도 된다고. 망가진 인생이라는 건 없어요.” “모든 찰나가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그의 말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망측하고 흉해지는 게 아니”며 “그 시간 속에서 돋아나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그에게서, 유한한 생이나 나이 듦 따위는 결코 가릴 수 없는 청춘의 ‘푸르름’을 보았다. 임수아 피처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