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3일, 봉제인간의 첫 단독공연 ≪봉제인간 : 분노의 재봉틀 (Sewing Machine of Wrath)≫에 다녀왔다. ‘지금 우리 여기서 살아있음’을 느꼈던 시간. 지리멸렬한 일상에서 벗어나 현재를 만끽했던, 짜릿한 해방의 기록.

누군가 봉제인간 음악의 매력이 무엇이냐 물을 때면 “음악이랑 섹스하는 느낌이야.”라고 답해 왔다. 강렬한 악기 소리로 관객의 혼을 쏙 빼놓다가, 리듬을 변주해 느슨하게 연주하고, 꿈결 같은 목소리로 노래하면서 마음 깊숙한 곳을 어루만지는… 이들의 음악을 들을 때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도파민이 내 안에서 솟구치는 것만 같았다. ‘음악은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이라는 말을 실체화시킨다면 그게 바로 봉제인간의 음악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봉제인간의 출현은 센세이셔널했다. 파라솔과 술탄 오브 더 디스코, 그리고 솔로로 활동해 온 지윤해가 보컬과 베이스를, 혁오의 임현제가 기타를, 장기하와 얼굴들의 전일준이 드럼을 맡아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다니. 밴드 음악 좀 좋아한다 하는 이라면 정신 못 차릴 조합이었다. 첫 싱글 <GAEKKUM/GOOD>을 들은 뒤 느꼈던 건 ‘제 멋대로 하는 인간들이 ‘제 멋대로’를 아주 ‘제대로’ 한다’는 것이었다. 순수한 피지컬, 본래 지닌 개개인의 실력만으로도 모두를 압살해버리는데, ‘비틀어’라는 노래 제목처럼 예상을 비트는 요망한 음악 구성으로 밀당을 시전한다. 그렇게 1년 남짓한 시간이 지난 뒤 첫 정규앨범 <12가지 말들>을 발매했고, 지난 3월 23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첫 단독 공연을 열었다.

≪봉제인간 : 분노의 재봉틀 (Sewing Machine of Wrath)≫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분노에 찬, 덜덜거리는 재봉틀 소리가 울리며 공연이 시작됐다. 지금껏 무대에서 보여준 것처럼 강렬한 분장을 한 채 나타나려나 짐작했는데, 세 사람은 (비교적) 수수하게 등장했다. 역시나 사람들이 바라는 걸 곧이곧대로 해주는 법이 없구나… 일종의 규칙이나 고정관념 같은 것이 생기면, 곧바로 전복한다는 느낌에 오히려 ‘봉제인간답네’ 싶었다. 인트로 연주 이후 본격적인 공연이 이어졌다. ‘꾸부렁 할머니’ ‘지난 이야기’ ‘밤의 달리기’ ‘KISS’로 이어지는 <12가지 말들>의 곡을 연주하고, ‘발소리’와 ‘Good Night’으로 조금은 잔잔한, ‘촉촉한 봉제인간’스러운 노래로 공연의 페이스를 조절했다. 이후 미발매 곡 ‘아등바등’까지. 봉제인간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무대가 이어졌다.

공연이 후반부로 접어들어 ‘GAEKKUM’과 ‘GOOD’ ‘BAT’와 같은 폭발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곡들을 연달아 연주할 때쯤에는 자아를 내던져둔, 일종의 무아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무대 위 세 사람은 ‘저러다 죽는 거 아냐?(특히 전일준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늘 그런 걱정을 하게 된다…)’ 싶을 정도로 온몸이 부서질 듯 연주하고 있었다. 그러니 무대 아래의 나는 그저 즐기면 될 뿐이다. 그 순간엔 다른 무엇도 중요하지 않았다. 미뤄둔 일이나 해결해야 할 문제 같은 건 머릿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 우리가 여기 함께 있다는 것. 같은 노래를 들으며 춤추고 있다는 것. 그것만이 중요했다. 문득 얼마 전 진행한 한영애 선생님과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무대에서 무엇을 느끼냐고 묻자 “나 살아 있어. 너 살아 있어? 우리 만났어. 우리 지금 여기만 생각하자, 이런 것들이지 뭐.(웃음)”라고 돌아온 답변이.

이후 마지막 곡 ‘12가지 말들’이 시작되었다. 지윤해가 “사람들, 살아있습니까? 다 무사합니까?”라고 외쳤을 때, 일종의 벅차오름이 느껴졌다. 봉제인간이 코로나 시기에 음악으로 서로를 치유하기 위해 결성한 ‘테라피 그룹’ 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것이 떠올랐다. 혼란하기 그지없던, 지난한 시기를 지나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났음이, 그 시간을 살아낸 우리가 서로에게 무사하냐고, 당신 살아있느냐고 물어볼 수 있음이 새삼 감사했다. 지금 역시 그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어지러운 형국이지만, 언제나 우리를 구원하는 건 결국 음악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봉제인간의 MD 티셔츠를 입은 여러 관객을 보았다. 하나의 몸통으로 연결된 세 개의 인형이 빨간 실로 서로를 잇고 있는 모습이 티셔츠에 프린팅되어 있었다. 무대 아래 처음 보는 관객들이 어깨동무를 하는 모습, 무대 위 세 사람이 가열차게 연주하는 모습을 번갈아 보며 ‘지금 우리 여기서 살아있음’을 느꼈다. 세 개의 앵콜 곡을 연달아 연주한 뒤 공연을 마무리하며 지윤해가 말했다. “오늘 진짜 재미있었다. 그쵸?”

‘모두 각자만의 재미있는 음악을 좇았다’는 그들의 지난 인터뷰 내용을 떠올리며 ‘지금의 재미를 좇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살아내는 일이란 지금 눈앞에 있는 재미를, 도처에 존재하는 작은 희망을 성실히 찾아가는 여정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판단 대신 직관으로. 이성 대신 감각으로. 어제와 내일에서 잠시 벗어나 눈앞의 감각을 따라가는 것. 그것이 잠깐의 찰나 혹은 끝나버릴 한 순간일지라도 내게 주어진 ‘지금’을 온몸으로 살아내는 것. 그렇게 나를 둘러싼 현재의 ‘재미’에 집중하는 것. 봉제인간의 음악에 이러한 태도가 담겨있기에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우리가 해방감과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 또한 이 재미와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어 말해본다. 부디 네 멋대로 (계속) (재미있게) 해주세요, 봉제인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