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물결이 요동치고, 수면 위 새벽의 윤슬이 희미하게 부서질 때. 밝지 않은 밤, 오직 빛나는 홍경의 얼굴들.




우리가 오늘 20대를 여물게 하는 깊은 밤의 시간을, 그 형형한 시간과 얼굴을 담아보기로 했죠. 밤의 시간, 좋아하나요?
새벽 3~4시쯤 푸르스름한 새벽녘에 내린 빛을 좋아해요. 저희 집은 암막 커튼이 없어서 블라인드 사이로 어둡고 푸른 새벽빛이 떨어져 내릴 때가 있는데, 그런 밤의 순간들을 좋아해요.
20대의 밤을 어떤 시간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생각해보면… 불안이 많았던 것 같아요. 단지 부정적인 불안만은 아니고 여러 심리가 섞여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그리고 이 일을 시작하면서 ‘이런 것들을 좇고 싶고, 해나가고 싶다’는 맹목적인 열망이 있었어요. 내가 해야 하는 것과 바라는 것, 이상향과의 괴리를 좁히려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아요. 종잇장처럼 아주 얇은 의미라 할지라도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했고요. 거기서 오는 불안이 있었어요. 하지만 그 감정이 부정적으로만 귀결되지 않았던 건 의심과 불안, 불확실성을 뚫고 나의 기저로, 기저로, 가장 아래로 내밀히 내려가다 보면 이상하게도 어떤 굳은 믿음 같은 게 있었어요. 새벽의 끝에서 믿음을 발견했었어요. 그 시간들이 연료가 돼 준 것 같아요. 20대의 불안과 불확실성이 제게 준 것이 많아요.
엄습하는 불안 속에서 무엇을 했나요? 혹은 무엇을 할 수밖에 없었나요?
그럴 때 막 섭취했던 것 같아요. 좋은 것들, 영화나 책 등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것들 있잖아요. 처방약처럼 그것들을 섭취했어요. 잠깐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거죠. 이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무언가에 푹 빠지게 되는 순간, 그 몰입의 찰나에는 불안이나 두려움을 느낄 새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몸이 그렇게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맞아요. 숨어드는 거잖아요. 누군가의 이야기 속으로, 한 사람의 깊은 세계 속으로. 촬영을 앞두고 만났을 때, 본인의 20대를 두고 ‘투쟁의 과정’이라고도 이야기했잖아요. 무엇에 대해 투쟁하는 여정이었어요?
만으로 스물아홉, 그리고 이제 서른인데요. 지금 이 시기를 관조하기에는 아직 너무 20대 같은 거죠. 더 지나야 알지 않을까 싶지만, 그건 있는 것 같아요. 틀린 것일 수 있지만…. 20대 배우가 걸어가는 길에 있어서 어떤 기성의 루트가 있는 것 같아요. 그 가운데 다른 것을 하고, 다른 문법을 사용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컸어요. 남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혼자 의미 부여를 하면서 사투를 벌여온 것 같아요. 내가 믿는 것들을 붙잡고 저만의 투쟁을 해온 느낌이에요.
20대의 한가운데 있을 때는 내가 어떤 문법이나 규칙을 주입받고 있는지 인지하기 어렵기도 하잖아요. ‘살아보니 이렇더라’ 하는 주변의 개입을 유난히 많이 받는 시기이고요.
예를 들어 남자 배우라면 갖춰야 할 어떤 신체적 특성이나 외적인 스타일 등에서 형식화된 것들이 있다고 느껴요. 또 이 산업 안에서 20대 배우들이 그려지는 방식들이 있어요.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저는 그보다는 다른 선택을 해보고 싶었어요. 다른 선택을 함에도 불구하고 가고자 하는 도달점은 똑같을텐데 그때마다 ‘왜 이렇게 돌아가려고 하냐’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이 정도 연차의 배우라면 최소 이런 비중의 역할, 이런 톤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단계도 있고요.
근데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반항심이 일었어요. 똑같고 싶지 않아서 이 일을 시작했는데, 되레 비슷한 것을 해나가야 하는 상황들이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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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ome Hearts, 워치 Cartier, 레더 재킷은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워치 Cartier,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브레이슬릿 Cartier, 모자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좋은 작품을 만나고, 해내고 싶은 열망과 조급함이 큰 와중에도 그 불안을 빨리 해결하려거나 해치워버리려 하지 않았어요. 열망을 빨리 이룰 수 있다고 선동하는 숏 트랙 위에 오르고 싶은 유혹이 들었을 법도 한데요.
그게 제가 가진 어떤 믿음의 형태인 것 같기는 해요. 그 믿음이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감사하게도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떤 가르침을 받았다기보다 부모님과 좋은 영화를 보러 다녔던 어린 시절의 경험들이, 10대 때부터 좋은 영화를 많이 흡수하려고 했던 지난 시간들이 제 안에 쌓여 있어요. 그 경험들을 통해서 제 몸이 끌리는 거예요. 그리고 제가 선망하게 된 몇몇 아티스트의 공통점이 전형적인 길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더라고요. 그들을 보며,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생겼어요.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저라는 사람 자체가.(웃음)
기질이.(웃음)
네. 말을 잘 안 들어요. 그렇지만 저에겐 분명한 이유가 있는 고집이긴 해요.
영화 <결백> <정말 먼 곳> <댓글부대> <청설> 등 그리고 얼마 전 촬영을 마친 <굿뉴스>까지. 배우 홍경의 20대를 채운 필모그래피를 보면, 최소한 스스로 부끄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매 작품 배우로서 동어반복하지 않았다는 것을 넘어, 어느 작품에서든 자신을 완전히 다 썼다는 인상을 주니까요. 완전히 다 소진하고 나면 최소한 부끄럽지는 않잖아요.
그렇게 바라봐주시면 감사해요. 왜냐하면 오늘처럼 인터뷰를 하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종종 따르는 헛헛함 같은 게 있거든요. 이게 나 혼자 느끼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는 거죠. 그것도 어떻게 보면 인정받고 싶고, 사람들한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그런 것일 텐데요. 내가 쌓아온 것들이 의미가 있기 위해서는 제가 우선 돼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이 작업들이 저 혼자 갇힌 방에서 혼자 보는 것이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그래도 이 사람은 좀 궁금한 사람이다’, ‘재미난, 다른 형태의 것을 해보려고 했네’ 하고 바라봐줘야 의미가 생기는 거니까요. 최선에 대해서라면 매 작품마다 제가 던질 수 있는 공이 10개라면 그걸 구속 150(km/h)의 꽉 찬 공으로, 다 던져보자 했어요. 관객은 그렇게 느끼지 못할지언정 쏟을 수 있는 것을 다 쏟아부으려 했고요. 후회도 있지만 만족과는 별개로 감사하는 지점도 분명히 있어요. 산업의 형태가 바뀌면서 극장에서 20대 배우들이 자신의 얼굴을, 초상을 그릴 수 있는 기회가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할 때 현저히 줄었잖아요. 그런데도 어려운 시기에 여섯 편의 영화를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 감사해요.
음, 후회를 해요?
저는 후회를 해야죠. 후회 많이 해요. 우스갯소리로 <굿뉴스> 현장에서 변성현 감독님과 모니터 보면서 제가 아쉬운 소리만 계속하니까, 제발 조용히 좀 해달라는 부탁의 의미에서 ‘닥치라고’.(일동 웃음) 그런 말씀을 우스갯소리로 던져주시곤 했어요. 다들 그러시겠지만, 만족… 안 되겠죠. 저도 그래요. 제 꼬라지를 못 견디는 게 있어요.
그 꼬라지라는 게 뭐죠?(웃음)
그 꼬라지라는 건… 나의 모든 것이 다 마음에 안 드는 거죠. <댓글부대>의 안국진 감독님, <약한 영웅: Class 1>의 유수민 감독님, 의 한준희 감독님, 이번에 촬영을 마친 <굿뉴 스>의 변성현 감독님 등 지금까지 이분들과의 작업이 즐거웠던 게 다 저의 지독함을 견뎌주신 분들이에요. 지휘하는 입장에서 본인이 원하는 것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을 해보고 싶은 저의 욕망을, 그 꼬라지를.(일동 웃음)
집요함을.(웃음)
네. 그런 것들을 다 봐주셨으니까요. 다 그렇지 않을까 싶긴 한데요. 왜, 자기가 자기 목소리 들으면 되게 이상한 것처럼요.
자신에게 엄격한가요?
스스로는 자각을 못 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지독하다’ ‘너무 지독하다’는 말을 많이 해주는 것 같아요. 그게 양날의 검 같기도 해요. 지독해서 누군가를 피로하게 만들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또 잘 맞는 사람들은 저의 이런 지독함이 좋을 수 있는 거고요. 다행히도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신 분들은 이 지독함을 좋게 봐주셨어요. 근데 저 역시 지독한 사람들을 좋아해요. 지금껏 작업했던 분들은 다 지독한 면들이 있었어요. 그렇게 완성된 결과물이 분명히 관객들의 심장에 가닿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와중에 자유로워지고 싶은 것도 있나요? 무엇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나요?
‘자유’라는 단어를 생각하다 보면 결국 그 어떤 것으로부터도 결코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생각에 다다르는 것 같아요. 개인적인 생활의 영역, 일의 영역에서 수많은 가느다란 실들이 얽히고설켜 저를 감고 있고, 그것이 곧 그 자체로 제 삶을 이룬다 생각하기에 할 수 있는 건 그 실들이 저를 너무 조이거나 헐렁해지지 않게, 혹은 끊어지지 않게 균형을 잘 유지하고 싶어요. 저를 휘감은 수많은 실들이 있기에 연기를 하는 순간에 접속하려 부단히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비단 연기뿐 아니라 사람이 뭔가에 골몰하면 찰나라도 잊을 수 있으니까. 그런 게 자유 아닐까요. 적어도 저는 저를 휘감은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진 않은 것 같아요.
20대를 시작하기 직전 열아홉 살의 마음과 30대를 앞둔 스물아홉의 마음은 어떻게 같고, 또 달라요?
저는 마음의 불이 꺼지는 순간 이 일은 못한다고 늘 유념하고 있어요. 불씨라는 건 호기심 같은 것, 호기심으로부터 무언가를 해나가는 힘이 꺼지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해요. 겸손한 말들은 하지 않고, 오로지 저의 삶만을 놓고 보면 지난 10년 동안 그 불이 꺼지지 않고 되레 더 커졌다고 느껴요. 그럴 수 있었던 건 그간의 작업들이 연료가 돼 불을 더 태울 수 있는 단계들이 되어주었어요.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는 불안과 잘 지내며 함께 가는 법을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저는 스타트 라인 위에 선 것 같아요. 이제야 달릴 준비를 마치고 출발선에 선 느낌이에요.






10대 홍경은 어떤 소년이었어요?
반항아적인 측면도 있고, 혼자 영화 보는 걸 아주 좋아했죠. 그리고 그때는 더 위대해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제 마음에 그런 게 있거든요. 저는 무비 스타가 되고 싶고… 진짜로 무비 스타가 되고 싶거든요. 정말 무비 스타가 되고 싶어요. 근데 그땐 더 그랬어요. 그때는 진~짜 무비 스타가 되고 싶었어요. 저한테 무비 스타라는 건 조금 다른 의미거든요. 누구나 자기 마음에 품은 ‘스타’의 의미는 다르겠지만, 저에게 무비 스타는 좀 남달라요. 무비 스타가 되고 싶고, 위대해지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상상돼요. 엄청 조용한 학생인데, 마음속에서는 반항심과 무비 스타에 대한 열망이 소용돌이치는.
점심시간에 나가서 축구하길 좋아했고. 체육대회 때나 이럴 때는 족구도 하면서… 그런데 공부와는 영 안 맞아서, 야간 자율학습이 너무 싫어서 하지 않았고….(웃음)
문득 궁금했어요. 10대의 홍경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근데 너무 신기하지 않아요? 10대의 나는 존재하지 않지만 제 안 어딘가에 있을 거 아니에요.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 다른 사람인데 완전히 사라지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것이요.
맞아요. 근데 서툴고 투박한 다른 이들의 청춘은 예뻐보이는데, 정작 스스로의 청춘은 자꾸 외면하게 돼요. 못나게만 보여서. (웃음) 나에 대한 질문, 내가 주어인 질문도 많이 했나요?
20대에 걸쳐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지? 무엇이 나에게 의미 있고, 어떤 것들을 해야 하는 걸까?’ 이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해나갔던 것 같아요. 근데 그건 지금도 하고 있는 질문들이에요. 나에 대한 질문이 거듭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세대가 어떤 시기에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지금 우리 세대는 뭘 느끼고 있는가’로 질문이 확장되고 흘러가요. 저는… 진짜 무서운 건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야’라는 믿음이나 희망이 없어지는 순간. 그게 정말 공포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들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겠지만, 저 역시 젊은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제가 해나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이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거죠. 한 톨이라도요. 결국 사람들이 영화나 시리즈, 드라마를 보는 데는 여러 이유와 요소가 있겠지만, 결여되어선 안 되는 건 연대감인 것 같거든요. 우주 이야기건, 디스토피아 이야기건 결국 보는 이의 심장을 타격할 수 있어야 하는 건데요. 어느 지점에는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가 연대할 수 있는 부분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지금, 우리 세대를 생각하며 떠올리는 질문들이 재미있어요. 그것 때문에 30대가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를 씨앗으로 한 질문이 확장되는군요.
20대 때는 ‘나’로부터 시작되는 질문이었다면, 제가 지금 향하는 30대의 질문들은…. 몽타주 같은 몇 장면이 있는데요. 제가 10대였을 때 30, 40대였던 부모님이 떠오르는 순간들이 있어요. 이상하게도 그런 순간들과 연결이 많이 돼요. 앞으로 30대에 무언가를 해나간다면 그 순간들과 연결이 더 많이, 자주 되겠구나 싶어요. 가령 어느 날 새벽 6시, 우연히 일찍 눈이 떠지는 바람에 보게 됐던 제 방 창밖으로 보이던 출근하는 아버지의 모습 등이 깊게 남아 있어요.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알고 싶은 것 같아요. 저 두 분은 어떤 30대를 살았을까.
나를 넘어서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온 것들에 대해, 내가 되게끔 한 세계에 대해 궁금해하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성숙해지는 거겠죠.
맞아요. 살면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자각하게 되는 시기가 오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제가 맹목적으로 해나가는 일에 대한 의미도 결국 삶이 밑받침되어야만 의미가 있는 거니까요. 몇 해 전부터 아주 깊게 새기고 있는 한 가지가 있어요. 자주 상기하는 건 ‘삶이란 얼마나 유약한가’예요. 배우로서 더 유명해지고, 설사 꿈꿔온 무비 스타가 된다 해도 제 삶을 구성하는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것이 와그르르 무너질 걸 알고 있거든요.
마무리할까요. 너무나 많은 가능성이 도처에 널린 지금, 무엇을 하는가 보다, 무엇을 하지 않는가가 그 사람을 더 잘 설명하는 것 같거든요. 적어도 무엇은 하고 싶지 않나요?
‘부차적인 이유로 인해 호기심이 들지 않는 일을 오작동하듯 하지 않는다’예요. 마음을 들끓게 하고 호기심이 생겨야만 임해야 한다는 것. 그러지 못했을 때 오는 마음의 타격이나 텁텁함이 얼마나 큰지 아니까요. 그게 결국 제 마음에 물을 부어서 불을 끄게 만들기 때문예요. 제 삶에서는 건강하고 싶어요. 하지 말아야 하는 것들. 지금도 안 하고 있지만, 여전히 술 담배를 기피해야 된다. 건강한 삶을 토대로 건강한 사고방식을 하며 원하는 것을 할 수 있게끔 준비해야 한다. 단순하긴 하지만 지금은 이런 것들이 떠오르네요.
저는 요즘 “사람은 정의로운 것을 앎으로써 정의로워지는 게 아니라 정의를 사랑함으로써 정의로워진다. 사랑은 영혼의 중력이다”라는 한나 아렌트의 말을 오래 생각하고 있어요. 20대의 홍경이 가장 사랑하고자 한 것, 사랑한 것은 무엇인가요?
내가 뭔가를 정말 사랑한 게 있었나 쉽게 떠오르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자각을 못 하는 게 좋기도 하고요. 그래도 저 자신인 것 같아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제게는 징글징글하고 못생기게 다가오는 면이 있거든요. 일을 해나가며 혹은 살아오며 보려 하지 않아도 보이고 느껴지는 저의 모습들이 꼴 보기 싫고 모난 점들이 많은데 낭만적인 의미로 그런 제 자신을 ‘사랑’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Love Myself’ 하는. 어느 순간이든 저를 견디지 못하겠고, 뜨악하거나 힘겹게 마주 보거나 마지못해 눈을 꽉 감고 억지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은데요. 적어도 피하지 말자 마주 보고 인정해보려 하자 하며 발버둥쳤던 것 같아요. 역시나 말이 번잡해졌네요. 시간이 지나면 엄청나게 후회하겠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