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리스트 유재창은 스타일을 통해 한 사람의 분위기와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해냅니다. 유행에 휩쓸리기보다는 본질에 집중하고, 과하지 않은 균형 속에서 인물 고유의 무드를 만들어가는 스타일링을 지향하죠. 이번 인터뷰에서는 스타일리스트라는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작업을 대하는 태도, 그리고 오랜 시간 이어온 취향과 생각까지. 스타일리스트 유재창이 말하는 스타일의 언어를 차분히 들어보았습니다.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학창 시절 잠깐 축구 선수로 활동했어요. 패션과는 상관 없는 직업이었지만 운동을 하면서도 패션에 대한 관심은 늘 컸고, 어릴 때부터 옷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패션을 접하는 시간이 많았죠. 패션이라는 넓은 분야 안에서 어떤 길을 걸을지 고민하던 중,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준 건 한 방송 프로그램이었어요.
그 프로그램을 보며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이 단순히 옷을 잘 입히는 걸 넘어서, 한 사람의 이미지를 완성하고 자신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죠. 멋진 옷을 고르는 것뿐 아니라 스타일을 통해 분위기와 메세지를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멋있다고 느꼈어요. 그때부터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을 목표로 삼고 본격적으로 도전하게 됐습니다.
처음 스타일링을 맡았던 아티스트나 프로젝트를 기억하시나요?
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제 첫 스타일링은 남성복 브랜드 MNGU의 17FW 룩북 촬영이었어요. 당시엔 MNGU 매장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대표님께서 “이번 시즌 룩북 스타일링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주셨어요. 처음엔 부담스럽고 두려운 마음에 거절했지만, 대표님의 “누군가 너에게 일을 부탁하는 건, 네가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야.”라는 말에 용기를 낼 수 있었죠. 부족하더라도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으로 임했고, 그 경험이 제게 스타일리스트라는 직업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스타일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무엇인가요?
의외성에서 오는 신선함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서로 다른 분위기를 믹스했을 때 생기는 독특한 조화를 좋아하죠. 예를 들어, 화려하고 여성스러운 드레스에 빈티지한 스니커즈를 매치해 개성을 표현하면서도 스타일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주는 거예요. 이런 믹스 매치는 그 사람만의 분위기와 무드를 살릴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정형화된 룩이 아닌, 예상 밖의 조합에서 오는 새로움이야말로 스타일링의 가장 큰 매력이죠.
최근에는 ‘트렌드 없는 트렌드’라는 말이 자주 들리곤 합니다. 더 이상 특정 유행을 좆기 보다는, 각자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실장님의 스타일링을 봤을 때 유행에 휩쓸리기 보다는 대상의 본질적인 멋에 집중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실장님이 생각하는 ‘시간에 흔들리지 않는 멋’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저에게 ‘시간에 흔들리지 않는 멋’이란 트렌드를 등지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 속에서 진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순간들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트렌드 없는 트렌드’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하루에서 수 많은 정보와 스타일이 쏟아지잖아요. 이런 시대에 모든 스타일을 무시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죠. 그래서 저는 결국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느껴요. 스타일링은 대상이 가진 고유한 분위기, 그리고 옷이 전달할 수 있는 감정에 집중해야 진짜 멋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태도가 결국, 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오래도록 기억될 스타일을 만든다고 믿습니다.
앞선 질문에 이어, 실장님의 스타일링에서는 ‘감성적’, ‘절제된’, 그리고 ‘세련된’이라는 인상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과한 장식 없이도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방식에서 이런 인상을 받곤 했는데요, 이런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처음 스타일리스트 일을 시작했을 무렵, 함께 작업했던 브랜드 대표님들께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걸 넘어, 삶 자체가 간결한 분들이었죠. 그런 분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절제된 미감과 감성적인 균형에 대한 기준을 배워갔던 것 같아요. 스타일링을 구성할 때에도 실루엣이나 소재의 질감, 여백의 미에서 오는 미묘한 감정의 흐르메 더 집중하게 됐고요. 그런 과정을 거치며,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서 사람의 분위기와 정서를 섬세하게 건드릴 수 있는 스타일링을 지향하게 된 것 같아요.
스타일링은 액세서리 하나, 컬러 하나로 큰 차이를 가지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스타일링을 할 때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 사이에서 어떤 기준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는 ‘채운다’와 ‘비운다’ 사이에 명확한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기준은 작업의 배경이나 스타일링의 목적에 따라 매번 달라지기 마련이니까요. 감정을 풍부하게 전달해야 할 때는 디테일을 더하고, 오히려 여운을 남겨야 할 때는 과감히 비워냅니다.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에 기준을 두기 보다는 지금 내가 표현하려는 대상의 본길을 깊이 이해하는게 먼저인거죠.
그래서 스타일링을 시작하기 전에 늘 맥락을 먼저 읽으려 해요. 그 사람이 서 있는 배경,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현장의 흐름. 그런 요소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며 자연스럽게 균형을 맞추려 하죠. 결국 스타일링은 정해진 공식을 따르는 일이 아니라, 매 순간 다르게 반응해야 하는 감각의 일이라고 믿습니다.


실장님은 남성과 여성, 양쪽의 스타일링을 모두 맡고 계신데요, 성별에 따라 스타일링할 때 느껴지는 결이나 무게감의 차이가 있을까요? 혹은 실장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은 언제나 같나요?
남성과 여성의 차이보다는 인물 자체에 초점을 둡니다. 물론 성별에 따라 실루엣이나 구조적인 접근이 달라질 수 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그 사람이 표현해야 할 분위기와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어떤 옷인가’보다, ‘그 옷이 누구를 말하고 있는가’예요.
최근에는 아일릿의 스타일링을 맡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아일릿의 스타일링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이미지나 방향성이 있었나요?
사실 아일릿이라는 팀의 이미지와 방향성에 대해서는 저보다 훨씬 더 오랜 시간 고민하고 애써오신 분들이 옆에 계세요. 그래서 저는 그분들이 제한하는 콘셉트와 방향에 대해 깊이 신뢰하고, 그 맥락 안에서 제 역할을 고민하는 편입니다.
다만 스타일링이라는 건 결국 이미지를 가장 선명하게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일이잖아요. 저는 아일릿이 가진 본질적인 색을 더 명확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시선의 흐름이나 분위기, 실루엣 하나하나를 정교하게 다듬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무엇보다도 감사한 건, 스타일링이 하나의 결과물이 되기까지 서로의 아이디어를 존중하고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과 함게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그 안에서 스타일리스트로서의 주관을 지키되, 팀의 방향성과 부딪히지 않도록 균형을 맞추려 합니다. 결국 제가 아일릿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은 스타일은, 팀이 본래 가지고 있는 무드를 더 또렷하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언어’에 가까운 것이에요.


실장님은 영화에서 영감을 얻고, 특히 90~2000년대 영화를 즐겨 보신다고 들었어요. 특정 시대의 미장센에 꾸준히 끌리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그 시기의 영화가 지금의 일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그 시기의 영화에는 지금과는 다른 속도와 감성이 담겨 있어요. 특히 90~2000년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던 과도기였잖아요. 그래서인지 어딘가 낯설고 엉뚱한 장면들이 많고, 그 특유의 세기말 감성이 저한테는 오히려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와요.
또 그 시대의 배경과 색감은, 설명하긴 어려운 익숙한 감정을 건드리죠. 그런 감정들이 모여서 스타일링을 구상할 때의 영감이 돼요. 당시의 느슨한 실루엣이나 컬러 톤, 스타일링 방식도 많이 참고하고요. 결국 그 시대 영화가 가진 감성과 시대 정신, 그리고 미묘한 아이러니가 지금의 저에게도 유효하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장기적으로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가 궁금합니다.
저는 결국 ‘같이 일해서 좋았다’라는 말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에요. 스타일링이라는 건 단순히 멋있는 결과물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해서 생기는 감정이 훨씬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늘 누군가에게 편안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해요. 다시 함께하고 싶은 사람, 그런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