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의 기원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했다.
명료한 선과 대담한 컬러가 특징인 작가의 작품을 에트로의 섬세한 자수로 수놓았다.

동서양의 미감이 조화로운 매혹적인 작품으로 국내 외에서 주목받고 있다.
에트로와 협업하게 된 걸 축하한다. 이 협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어느 날 에트로에서 메일이 와 있었다. 마르코 드 빈센조가 오랜 기간 인스타그램에 올린 내 작업물을 지켜봐왔다고 해서 놀라웠다. 동양적 기조에 서양적 요소가 섞인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빈센조도 그 부분에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그에게서 본인과 생각하는 방향이 비슷할 것 같은 작가를 지구 반대편에서 찾은 게 마법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대담한 선과 컬러 사용이 돋보이는, 동서양의 조화가 아름다운 작품이 많다. 10대의 대부분을 뉴질랜드와 영국에서 보냈다. 그 덕에 한국에 돌아온 후 동양의 미를 신선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나의 작업 세계와 스타일을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펜 그림을 즐겨 그리다 보니 판화와 동판화가 좋아 석사까지 전공하고, 현재의 작업 스타일을 구축하게 되었다. 동서양의 문화권을 모두 경험한 내겐 자연스러운 결과다.
현재 전개하고 있는 식물 시리즈에 대해 소개해주기 바란다. 식물을 키우고 관찰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려보고 싶었다. 마치 그림일기처럼 시작한 것이 자연스럽게 작업으로 연결되었다. 그림 속 화병 혹은 대지가 나라고 여겨질 때가 많다. 그릇이 넓은 사람이 되라는 어머니의 말씀 덕분일까. 가볍기도 하지만 매우 무거운 진심이 담긴 시리즈라 할 수 있다.
요즘 영감을 받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은 다시 쓸어 담을 시기라고 생각한다. 특정하게 몰두하는 것은 없지만 최대한 많은 것에서 영감을 받고, 탐색하는 과정에 있다. 아, 최근에 스테인드글라스 유리공예를 해볼 기회가 있었는데, 입체적인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언젠가 오브제나 액자를 만들어볼까 기획 중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학적 관점은? 내 눈에 즐겁고 만족스럽고 울림이 있는 것. 그리고 형태와 대비, 색의 조화와 균형이다.
본격적으로 협업을 시작했을 때, 마르코 드 빈센조가 무엇을 요청했나? 협업을 확정한 후 첫 미팅 당시, 빈센조는 이번 컬렉션의 세계관에 대해 설명했다. 에트로의 크고 넓은 세계 속 마르코 드 빈센조의 세계, 그 안에 컬렉션을 향하는 비전까지. 그리고 이 스토리를 토대로 나만의 새로운 비전을 고민해달라고 했다. 놀랍게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길 바랐고 온전하게 펼칠 수 있도록 많은 자유를 주었다. 이 광대한 길을 준비하며 막막한 순간도 있었지만, 갈 수 있는 길이 다양해서 재밌었다.
기억에 남는 재미있는 요청이 있었다면 뭔가? 에트로의 이전 컬렉션을 참고하지 말라는 것. 다만 에트로와 결을 맞추기 위해 전체적인 무드가 우아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여러 번의 심사와 수정을 거쳤고, 이 과정이 마냥 쉽지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빈센조는 최종적으로 작품을 단 하나만 선정해야 하는 순간에 내가 원하는 작품이 무엇인지 물었고, 그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해주었다.
컬렉션을 위해 그린 작품은 어디에서 영감을 받았나. 에트로 2025 F/W 컬렉션의 세계관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하는 신화 그리고 창조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다. 그 세계관 안에서 벌과 꿀, 눈물 등이 떠올랐고, 특히 모든 것의 시초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상상 속 식물을 그렸다. 추상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떤 꽃을 그렸다기보다는 이 이야기에 대한 감정이나 아이디어에서 추출된 형태를 시작으로 꽃의 모양을 잡아갔다.
에트로 2025 F/W 여성 컬렉션 쇼는 어땠나? 밀라노는 처음 와보는 도시인 데다 첫 패션쇼라 무척 들떴었다. 특히 작업을 전달한 후 어떤 아이템에 어떻게 출력되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도 쇼장에서 처음 본 거다. 볼드한 디자인과 세련된 실루엣이 살아 있는 룩 사이에 자리한 나의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어찌나 감격스러운지 형용할 수 없는 많은 감정이 올라왔다. 작품 원본의 느낌을 생생하게 살린 자수나 감각적인 컬러 매치 등이 인상적이었다. 빈센조의 미감은 물론 에트로의 장인정신에 다시금 놀랐다.
가장 애착이 가는 아이템은? ‘새’가 있는 작품. ‘새’라는 새로운 요소를 넣는 작업을 하면서 무척 즐거웠다. 초반에 그린 거라 제일 진실되고 순수한 작품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간다.
본인의 작품을 입은 에트로 우먼은 어떤 여성일까? 대담하고 진취적이면서 동시에 세련되고 섬세한,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조화로운 여성이다.
앞으로 이번 작업처럼 새롭게 도전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다면? 플랫한 스크린에 담긴 작품만 보다가 이번 협업처럼 입체적으로 구현한 작품을 마주하니 무척 새로웠다. 종이에 프린트라는 틀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분야에 접목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