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청춘이란 찰나에 머물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곁에서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책, 영화, 음악, 우리가 주고받은 대화까지.
마리끌레르 피처 에디터 5인이 저마다의 생에서 건져 올린,
불완전하게 반짝이는 청춘의 조각들.

영화 <녹색 광선>

애써 믿어보는 마음을 생각한다. 온갖 무의미 속에서도 세상에 다리를 붙이고 굳게 서 있게 해주는 작은 희망 같은 것을. 에릭 로메르의 영화 <녹색 광선> 속 ‘델핀’은 혼자인 것이 외롭고 슬프지만,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 역시 불편하다. 홀로 휴가를 보내게 된 델핀은 여행 내내 눈물을 흘린다.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해 나를 설명하고 또 증명해야 하는 것이 버겁고, 이상적인 만남이 펼쳐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서럽다. 그렇게 여행을 마치려던 차에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 그와 함께 해변에서 ‘녹색 광선’을 본다. ‘헛된 기대와 거짓말을 사라지게 하고, 자신은 물론 다른 이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게 해준다’는 전설을 지닌, 1초 남짓한 찰나에만 볼 수 있는 한 줄기 빛을 말이다. 청춘은 허무와 한 몸이 되기 쉽다. 세상에 갓 나온 이들이 낯섦 앞에서 작아지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흔들리고 무너지기 쉬운 젊음에, 무의미에 맞서는 모든 이들에게 <녹색 광선>은 사소한 믿음의 가능성을 전한다. 그것이 한순간의 환상일지라도, 그저 우연에 불과할 지라도, 녹색 광선을 본 델핀이 작게 환호한 것처럼 말이다.

재달의 음악

9년 전, 무대에 오른 한 사람의 영상을 봤다. 싱잉 랩이랄지, 혹은 랩 록이랄지. 하나의 단어로는 결코 규정할 수 없는 방식으로 노래하는 이가 있었다. 질끈 감은 눈, 오르내리는 눈썹, 거칠게 뻗어내는 두 팔. 긴장한 듯 굳어 있다가도 내뱉는 노랫말 하나하나에 진심을 담고 있음이 느껴졌다. “죽을 때까지 알바만 하다 갈 수 없어 / 난 별이 되어 빛을 내고 싶어”(‘눈꺼풀’)라고 소리치던 사람. 그 후 나는 10대 후반과 20대의 초반을 재달의 음악과 함께했다. ‘앞이 캄캄하며 내일로 가는 막차를 놓쳐버린 듯’하고, ‘방황하는 나침반이 나를 괴롭힌’(‘Sherpa’)다고 말하던, 청춘의 불안이 담긴 가사가 나를 어루만졌다. “내가 뿌리 내린 곳이 나의 중심”이며 “나무처럼 살고 싶”(‘Tree’)다고 노래할 때면, 나 또한 삶의 무게중심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 가슴 위에 커다란 돌덩이가 얹힌 듯한 밤이면 나는 여전히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재달의 노래를 들으며 눈꺼풀 속으로 숨는다. 당신과 함께 젊음을 건널 수 있어 다행이라고, 내 청춘의 셰르파가 되어주어 고맙다는 마음을 품은 채로.

뮤지션 김창완

뮤지션 김창완 마리끌레르
ⓒ민현우

잠자리 안경을 쓴 채 공허한 눈빛으로 ‘청춘’을 부르는 1980년대의 김창완을 보는 걸 좋아했다. 앳된 얼굴로 “언젠간 가겠지 / 푸르른 이 청춘”이라 읊조리는 그를 볼 때면 대체 시간이란, 청춘이란 무엇인가 싶었다. 20대의 중반에 그를 만나 인터뷰했을 때, 내가 건넨 질문은 나보다 앞서 생을 살아낸 이에게 내보인 청춘의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이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건넸을 때, 그는 나를 오래 바라보더니 이렇게 답했다. “내가 그린 그림 중에 ‘인생 낙서’라는 게 있어요. 그 그림은 인생을 낙서처럼 끄적여봤다는 뜻과 함께, 아무 생각 없이 휘갈긴 듯해도 하루하루에 인생의 참맛이 담겨 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인생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꼼꼼히 살핀다고 해서 더 잘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바람결에 몸을 던진 낙엽처럼 산다고 해서 삶이 놓아지는 것도 아니에요. (…) 이렇게 살아도 되고 저렇게 살아도 된다고. 망가진 인생이라는 건 없어요.” “모든 찰나가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는 그의 말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망측하고 흉해지는 게 아니”며 “그 시간 속에서 돋아나는 아름다움이 있”다는 그에게서, 유한한 생이나 나이 듦 따위는 결코 가릴 수 없는 청춘의 ‘푸르름’을 보았다.

이기리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

“나는 이 장면을 영원히 간직하거나 / 지워 버릴 수도 있지만 / 다시 눈을 뜨고 끝까지 다 보기로 한다”(‘일시 정지’). 말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회피하지 않고 직시해야 하는 상처도 있다. 이기리의 시집 <그 웃음을 나도 좋아해>에는 학교 폭력을 비롯한 어린 시절의 상처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아픔을 말하는 여러 시 중에서도 이기리의 시가 유독 빛나는 이유는 그것을 딛고 일어난 이의 단단함이 그 안에 배어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고통이 타인에게서 비롯된 것일지라도, 타인이 나를 살릴 거라는 믿음을 놓지 않는다. “죽지 않으면 안 돼? // 죽지 않아 주면 // 야호 // 나랑 더 놀아 줄 수 있으니까”(‘우리 집에는 식물이 없다’)라고 말하는 애틋한 명랑함도 고개를 내민다. 이 시집의 마지막 시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나겠습니다’에는 이런 시구도 있다. “나는 타인을 사랑하고 믿으려는 맹목적 태도를 바꾸지 못했습니다. (…) 나의 웃음이 당신의 웃음이고 나의 기쁨이 당신의 기쁨이라면. 나의 말이 당신의 심장을 몇 번 더 뛰게 할 수 있다면. 나, 더 살아도 되겠습니까.” 기나긴 생의 초입에서, 언제까지고 계속될 아픔을 딛고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될 때면 이기리의 시집을 펼친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앞의 시)일 거라는 “믿음을 연습”(앞의 시)하며 오래도록 그의 시를 곱씹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