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마리끌레르 영화제는 한국과 이란, 일본과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의 동시대성을 담은 영화 17편을 상영한다.
4명의 영화계 인사가 이 중 함께 보고 싶은 아홉 편의 작품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스크린을 아름답게 수놓을 장면과 이야기들을 다 함께 극장에서 마주할 날을 기다리며.

writer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대도시의 사랑법>

감독 이언희
출연 김고은, 노상현

청춘은 대체 얼마나 엉망으로 흥청망청할 수 있는 시절이란 말인가.
그러나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것이 청춘의 전부라고 납작하게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태생적 아웃사이더 기질과 유흥 본능으로 의기투합했고, 가진 건 젊음과 체력뿐이었으며 마음껏 썼고 계산하지 않았다.” 흥수(노상현)가 고백한 대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젊음과 체력을 끝도 없이 과신한다. 청춘은 대체 얼마나 엉망으로 흥청망청할 수 있는 시절이란 말인가. 그러나 <대도시의 사랑법>은 이것이 청춘의 전부라고 납작하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핍’이야말로 이 영화에 잘 표현된 정서 중 하나이자 20대를 압축하는 단어일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외부로부터 무언가를 얻어 채우려 하기에 계속해서 갈증이 생길 수밖에 없는 시절. “미친년과 게이가 만나 시작된 애니멀 라이프”의 구체적인 묘사 이전에, 청춘이 얼마나 외롭고 혼란스러운 시기인지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이 영화의 작법은 두텁게 미더운 구석이 있다. 두 주인공과 비슷한 연령대의 관객과 충분히 연결되면서도, 그 시간을 이미 지나온 관객에게는 그들의 한 시절에 보내는 ‘뜨거운 안녕’으로서 손짓을 건넨다. 거기에서 느껴지는 애수(哀愁)야말로 <대도시의 사랑법>의 정수일 것이다.

데뷔작 <…ing>(2003)를 시작으로 <어깨너머의 연인>(2007), <미씽: 사라진 여자>(2016) 등에서 섬세한 연출을 보여준 이언희 감독은 박상영 작가가 쓴 동 명의 연작소설 중 단편 <재희>를 스크린에 생생하게 비춘다. 영화는 대학에서 만나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재희(김고은)와 흥수의 조금은 독특한 우정 이야기다. 남의 눈치 보지 않는 재희와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은 채 자발적 거리 두기를 하던 흥수. 두 아웃사이더는 우연한 계기로 서로를 알아보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나아가 한집에 함께 살게 되면서 각자의 청춘을 즐기던 두 사람이 서로를 지켜주고 자신만의 삶을 찾아 가는 과정, 영화는 그 시끌벅적하고도 뭉클한 경로를 따라간다.

원작에서 주인공 영을 통해 소개되는 인물인 재희는 영화 속에서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 움직이는 캐릭터로 변모한다. 또한 그는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20대와 30대를 거치며 겪는 수많은 시행착오의 순간들을 대변한다. 안쓰러워 안아주고 싶은 순간이 있는가 하면, “왜 사소한 것에 목숨 거냐고 하지 말고 그냥 쟤한테는 그게 목숨 같나 보다 하세요” 같은 촌철살인의 대사를 적재적소에 날릴 줄 아는 재희는 이 영화의 시원한 탄산수 같은 존재다.

영화의 다른 한 축을 이루는 건 흥수의 이야기다. 흥수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또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숨기고 살아간다. 강
인한 외모와 달리 그의 내면은 열일곱 살의 어느 날 엄마에게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들킨 순간에 멈춰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방황하는 성소수자는 한국 사
회의 경직성 안에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 현실이지만, 동시에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익숙한 묘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한국 상업영화에서 조연 캐릭터를 통해 뉘앙스만을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주인공의 서사로, 시대극의 분위기나 판타지를 경유하지 않은 채 동시대성 을 지닌 평범한 청춘의 얼굴로 성소수자의 삶을 그린 <대도시의 사랑법>은 귀한 시도다. 나아가 성 정체성 만이 인물의 전체인 양 묘사하지 않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지닌 갈망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 역시 캐릭터의 층위를 넉넉히 확장한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대도시 그 자체다. 이는 원작과 달리 관객에게 직접적인 풍경으로 제시되는 요소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감추고 숨어들 수 있는, 다른 사람과 쉽게 연결되지만 그렇기에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그래서 모두가 조금씩은 고독한 곳. 이 모든 도시의 면면이 영화 전반에서 탁월하게 감지된다. 특히 재희의 에피소드를 통해 도시가 여성에게 얼마나 차별적인 공간인지, 흥수의 상황을 통해 타인을 향한 혐오가 얼마나 빈번하고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공간인지를 그려낸다. 그럼에도 두 사람이 젊음을 마음껏 낭비할 수 있는 것 역시 대도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전역한 흥수의 집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계단을 뛰어 올라가는 재희, 재희가 위급한 상황임을 감지하고 밤의 도로를 달려가는 흥수의 모습 등 원작에 없는 몽타주들 역시 한밤의 불빛처럼 어른거리는 도시의 풍경을 따스하게 수놓는 디테일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면서 우리는 내가 나이기를 포기하고 싶어지는 순간에도 나를 알아봐준 사람, 내가 나일 수 있도록 붙잡아준 존재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우리 자신과 우리 각자의 ‘20대의 외장하드’에 바치는 러브 레터 같은 영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편지다.

<나미비아의 사막>

감독 야마나카 요코
출연 카와이 유미, 카네코 다이치, 칸이치로

‘절망으로 가득한 세대’라며 스스로를 진단해버리고
매일의 자극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는 이들.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뒤흔들고 싶어 자꾸만 돌출되는 존재들.
<나미비아의 사막>은 그 공허한 몸부림을 포착하는
렌즈가 되기를 자처한다.

영화는 번잡한 도쿄의 풍경 한가운데에서 주인공을 말 그대로 ‘발견’한다. 수많은 인파를 비추던 카메라는 점점 특정 인물을 줌인 한다. 매무새를 정리하며 육교를 걷고, 계단을 내려오는 젊은 여자. 우리는 곧 그가 스물한 살의 카나(카와이 유미)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직은 그의 무기력을 감지할 수 없기에 밝게만 보이는 청춘. 허우샤오시엔 감독의 영화 <밀레니엄 맘보>(2001)의 오프닝을 2020년대 도쿄의 한낮으로 완전히 다르게 해석해 옮겨왔다는 인상을 주는 시작이다. 사정을 알고 보면 그 자신도 목적지를 알지 못하지만, 여기와 다른 어딘가를 꿈꾸는 무력한 청춘이라는 점에서도 카나는 <밀레니엄 맘보>의 주인공 비키(서기)와 닮았다.

카나는 모두에게 절대적인 호감을 사기에는 어려워 보이는 인물이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그가 못된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잔인하게 굴고, 폭력적이길 서슴지 않는다. 카나에게는 지속적인 자극이 필요해 보인다. 안정적으로 그를 돌보는 애인 혼다(칸이치로)와의 관계에서는 바로 그 안정 성이 카나를 지루하게 만든다. 혼다에게 거짓말을 하고 밖으로 나온 카나는 프리랜서 예술가 하야시(카네코 다이치)를 만나러 가고, 그와의 육체적 관계를 끊을 듯 지속한다. 카나는 이후 하야시의 공간으로 거처를 아예 옮기기까지 하는데,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서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별다른 관심사도, 흥미를 느끼는 일도 없는 카나의 일상은 무심하게 흐른다. 제모 전문 에스테틱에서 고정적으로 근무한다는 사실이 그나마 그를 사회적 궤도에 간신히 올려두는 듯 보인다. 친구와 대화할 때조차 그가 더욱 집중하는 것은 주변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또래 남성들의 잡담이다. 동창의 죽음을 알리는 친구 앞에서, 카나의 귀에는 여성 종업원을 대놓고 성적 대상화하는 음식점에 관한 이야기가 더 크게 울린다. 깊은 유대감에 의존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것이 불필요한 사람인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갈망하고 어떤 삶을 꿈꾸는가. 영화는 카나 자신이 모르는 것을 섣부르게 앞서가며 답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나미비아의 사막>은 모호한 영화다. 그것은 뚜렷한 흐름을 만드는 서사보다 특정 순간을 기민하게 관찰하는 데 관심이 더 있는 듯한 이 영화의 지향점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가령 하야시의 가족을 만났을 때, 그의 어머니(와타나베 마키코)와 나누는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서 영화는 카나가 느끼는 구체적인 모욕감을 포착한다. 자신이 중국계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언급해야 할 때, ‘인터’라는 단어가 국제 학교의 약어임을 알아차리지 못한 순간에 카나가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 화면 위로 부각된다. 상대방이 자신을 무시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에게는 열등감과 상처로 남는 순간들. 이런 미세한 순간들의 잔상이 모이고 모여 지금의 카나가 된 것일지 모른다.

영화에서는 많은 부분이 의도적인 공백으로 남겨져 있다. 예컨대 제목의 장소성은 사막에 생긴 워터홀 영상을 보고 있는 카나의 스마트폰 화면 정도로만 제시될 뿐이다. 나미비아(Namibia)의 어원이 나마(nama), 즉 ‘아무것도 없는 곳’임을 떠올릴 때, ‘나미비아의 사막’이라는 제목은 그제야 카나의 외로움이라는 구체적인 질감으로 다가온다. 화면에 침입하듯 꽂히는 날카로운 음악, 불현듯 배경으로 등장하는 네온의 색감과 자유로운 카메라의 움직임 안에서 영화는 카나와 동시대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생각을 동일시해 엮어둔다. ‘절망으로 가득한 세대’라며 스스로를 진단해버리고 매일의 자극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버티듯 살아가는 이들. 경직된 사회 분위기를 뒤흔들고 싶어 자꾸만 돌출되는 존재들. <나미비아의 사막>은 그 공허한 몸부림을 포착하는 렌즈가 되기를 자처한다.

젊은 두 여성, 야마나카 요코 감독과 배우 카와이 유미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반가운 영화이기도 하다. 스무 살에 만든 <아미코>(2017) 로 국제 무대에 소개됐던 야마나카 요코 감독은 이 영화로 제77회 칸영화제 감독 주간에서 국제영화비평가 연맹상을 받으며 동부문 최연소 여성 감독 수상자라는 영예를 안았다. <썸머 필름을 타고!>(2021), <플랜 75>(2022) 등에 출연하며 일본 영화의 새로운 얼굴로 확고하게 자리매김 중인 카와이 유미가 이 영화에서 뿜어내는 동물적 감각과 매력은 압도적일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