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년 전에 파리 엑스니힐로 매장을 찾은 적이 있어요. 향수를 직접 제조하는 방식이 무척 흥미로웠는데 개인 맞춤형 향수 서비스인 ‘오스몰로그(Osmologue)’를 제공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2013년에 브랜드를 시작하기 전부터 하이 퍼퓨머리의 수준을 끌어올릴 방법을 고민했어요. 향기의 궁극적인 목적은 개인의 고유한 향기를 만드는 데 있다는 생각이 출발점이었죠. 제가 엔지니어링 분야에 조예가 깊어서 전통적 향수 세계에 기술적 혁신을 더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개인화한 향기를 제조할 수 있는 블렌딩 머신을 개발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향기 자체를 개인화하는 독보적 서비스로 남아 있어요. 향기를 개인화하는 브랜드는 여전히 엑스니힐로뿐이라고 자부합니다.
엑스니힐로의 역사가 그다지 길지 않은데, 마니아층이 확실한 것 같습니다. 수많은 제품이 나오는 향수 시장에서 엑스니힐로가 지향하는 지점이 무엇인가요? 궁극적인 비전은 하이 퍼퓨머리 하우스가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 중심엔 혁신과 협업이 있습니다. 혁신은 오스몰로그 같은 개인 맞춤형 향기 서비스이고, 협업은 예술 · 건축 ·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과 함께하는 작업이죠. 특히 개인화는 고객이 단순히 향을 고르는 것을 넘어, 자신의 성격과 취향을 표현하는 방식이기에 무척 중요한 지점이에요. 최근에는 다양한 향의 레이어링을 즐기는 고객이 많아 이런 분들을 위한 향수 레이어링을 제안하고 그에 맞는 제품도 제공하고 있고요. 요즘 향을 레이어링해 자신만의 향을 즐기는 것이 트렌드이니 시기적으로도 잘 맞는 것 같아요.
‘러스트 인 파라다이스(Lust in Paradise)’는 한국인이 무척 사랑하는 향기예요. 그 조향 배경이 궁금합니다. ‘러스트 인 파라다이스’는 루이즈 터너라는 저명한 조향사가 만든 향수예요. 프랑스 리비에라에서 받은 영감이 향수의 핵심 바탕이 되었죠. 우리 브랜드 공동 창립자인 브누아 베르디에(Benoît Verdier)가 남프랑스 출신인데, 그의 성장 배경인 그곳이 향기의 출발점이 되었어요. 루이즈와 함께 이 지역의 여름 분위기와 바닷가의 윤슬 같은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어요. 그래서 핑크 페퍼를 톱 노트로 사용해 스파클링한 느낌을 주었고, 화이트 피어니를 중심으로 여름의 분위기를 풍부하게 담았습니다. 여기에 머스크 향을 더해 지중해 특유의 중독성과 부드러움을 표현했어요. 머스크는 특히 피부에 오래 남는 향기라 섬세하면서도 지속력 있는 향을 선호하는 한국 고객의 취향에 잘 맞는 것 같아요.
러스트 인 파라다이스만큼 브랜드를 잘 대변하는 향수가 새로 출시되었죠. 그 주인공 ‘스파이키 뮤즈(Spiky Muse)’는 도전적인 플로럴 향이 물씬 느껴집니다. ‘스파이키 뮤즈’는 꽃의 여왕 장미를 중심으로 조향했어요. 하지만 전통적인 고상한 장미가 아니라, 보다 대담하고 강렬한 캐릭터를 지닌 장미를 상상하며 만들었죠. 그 한 끗 다른 재해석을 위해 새로운 원료인 딸기를 활용했습니다. 지금까지 향수업계에서는 딸기를 합성원료로만 사용했는데, 최근에는 식품 산업의 부산물에서 자연 유래 딸기 오일을 추출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일종의 업사이클링 방식인데, 엑스니힐로가 시장에 처음 도입한 원료죠. 이 자연 딸기의 향은 과즙이 터지는 듯한 생생함과 장미 향과는 또 다른 신선하고 도전적인 느낌을 더해주죠. 과일 향이 너무 강하지 않도록 조율하기 위해 시더우드를 베이스로 사용해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았어요. 플로럴과 프루티의 조화가 핵심이에요.
스파이키 뮤즈의 비주얼 아트워크도 인상 깊습니다. 어떻게 구상했나요? 캠페인마다 향수의 컨셉트와 조향 방식을 시각적으로도 표현하려 노력해요. 장미와 딸기의 조합을 에지 있고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단순히 원재료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감정과 분위기, 그리고 향수에 담고자 한 우아함과 대담함의 균형을 시각화하는 것이 관건이었죠. 향수 보틀의 사진과 브러시 스트로크를 콜라주해 그 중간 지점을 잘 찾아낸 듯해요.
엑스니힐로라는 이름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Ex Nihilo’는 라틴어로 ‘무(無)에서부터’라는 뜻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시작해 우리가 꿈꾸는 하이 퍼퓨머리 브랜드를 창조하겠다는 철학을 담고 있어요. 전통적 향수업계의 규칙을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창조적 자유를 부여하고 룰을 깨뜨리는 것을 지향하죠.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하고요.
조향사와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나요? 조향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매우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예요. 제가 예전에 조향 회사 지보단 (Givaudan)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다행히 많은 조향사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거든요. 그 덕분에 브랜드를 만들 때부터 다양한 조향사들과 협업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향수를 만들 때는 먼저 컨셉트와 무드보드, 일러스트 등을 기반으로 감정과 분위기를 설명해요. 그 설명을 들은 조향사는 여러 가지 향의 방향성을 시도해보고, 보통 네다섯 가지 시안을 가져오는 식이죠. 함께 시향해보고 의견을 나누며 향기를 다듬어가는데, 여러 번 되돌아가다 보면 결국 이거다 싶은 향이 나와요. 그때 우리는 그 향수가 완성되었다고 판단하고, 세상 밖으로 공개할 준비를 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엑스니힐로가 요즘 같은 초개인화 시대에 무척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전적으로 동의해요! 누구나 자신만의 향기를 갖고 싶어 하죠. 이를 만족시키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고요. 진정한 개인화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창의적 조향뿐 아니라 안전성 테스트, 지속력 테스트 등 기술적 검토도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완전 맞춤형 서비스 외에도 매장에서 준개인화 서비스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미리 준비된 향을 기반으로 고객이 자신의 취향에 맞게 조합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시스템이에요.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비스포크 향수를 갖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앞으로 출시될 향수에 대해 살짝 힌트를 주신다면요? 9월쯤, 저희 베스트셀러 향수 중 하나의 엑스트레(extrait) 버전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보다 진하고 깊은 향을 기대해도 좋아요!
향수는 경험이 중요한 품목이에요. 고객에게 향수를 ‘경험’으로 전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향수는 단순히 제품이 아니라 그 이상이죠. 향을 맡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기억 그리고 개인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객이 향수를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을 시도하고 있어요. 아티스트와 협업해 선보이는 리미티드 에디션, 매장에서 제공하는 오스몰로그 서비스, 몰입형 향기 이벤트 등도 모두 그 일환입니다.
지금 계절에 한국 고객에게 추천하고 싶은 향수가 있나요? 단연 스파이키 뮤즈를 추천합니다. 봄철에 특히 잘 어울리는 향수거든요. 시원한 느낌을 선호한다면 오렌지 블로섬을 중심으로 상쾌한 느낌을 주는 ‘콜론 352(Cologne 352)’도 추천해요.
앞으로 엑스니힐로가 어떤 브랜드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프렌치 하이 퍼퓨머리 하우스로 자리 잡고 싶어요.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브랜드가 아니라, 창의성과 자유로운 정신을 담아 고객과 깊은 정서적 연결을 이뤄가는 브랜드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특히 한국은 아시아 시장에서 트렌드를 주도하는 중요한 나라이기에, 이곳의 젊은 세대와 더욱 긴밀히 소통하고 싶어요. 지금의 젊은 세대는 향수를 고를 때, 향기의 스토리와 배경까지 관심을 가져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담은 향수를 만들고,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거예요.

젊은 세대는 향수를 고를 때, 향기의 스토리와 배경까지 관심을 가져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더 많은 이야기와 감정을 담은 향수를 만들고, 성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