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틱톡을 필두로 올해는 인스타그램까지 이목구비와 피부 톤을 변화시키는 뷰티 필터가 전 세계적으로 일부 제한됐다. 각 운영사 바이트댄스와 메타의 관계자에 따르면, 이는 유저의 자아 이미지 왜곡과 자존감 하락을 경계하며 시행한 규제로, 특히 10대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한 조치임을 밝혔다. 뷰티 필터를 애용해온 유저들은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결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오히려 더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에디터 역시 그들의 의견에 적극 공감하는 바! 당장 메신저를 열어 주변 지인의 프로필을 쭉 훑어보니 대다수 인물 사진은 뷰티 필터를 거쳐 ‘정말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하는 의심과 기묘한 감정이 동시에 일었다. 고백하건대, 나라고 그들 같던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뷰티 필터가 온라인 세계를 뒤집어놓기 전, 이미 포토샵이라는 기술로 모두가 자신의 얼굴을 이상형에 맞춰 바꾸기에 급급했으니까.


지금 SNS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채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던 2010년 초, 유난히 내향적인 성격 탓에 오프라인 세상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온라인으로 눈을 돌렸다. 종종 이점을 안겨주던 수려한 외모는 온라인 세상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프로필에 평소보다 잘 나온 사진 몇 장을 올리니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 후 눈에 불을 켜고 더 완벽한 셀피를 만들기 위해 포토샵 속 마우스를 요리조리 휘둘렀다. 그 시대 흔히 말하는 ‘얼짱’이 된 난 SNS에서 여왕벌로 군림했고, 그 영광을 마음껏 즐겼다. 자의식은 점점 더 비대해졌고, 심지어 포토샵으로 빚어낸 얼굴이 실제 얼굴이라 착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하지만 진실은 곧 드러나기 마련. 쏟아지는 오프라인 만남 요청에 한껏 도도하게 굴던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을 발견했고 만나기로 약속했다. 꽤 먼 거리임에도 그는 친히 내가 살고 있는 곳까지 와줬지만, 내 실물을 확인한 후 던진 첫마디는 서늘하다 못해 싸늘했다. “사진이랑 조금 다르네.” 그 한마디로 나의 자아는 말 그대로 산산이 조각났다. 이를 만회하려 열렬한 구애를 퍼부었음에도 그는 서둘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홀연히 자취를 감췄다. 적잖이 충격을 받은 나는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부정하는 쪽을 택했다. 되레 거울 속 모습이 가짜라 인식하며 온라인 사진 속으로 스스로를 숨겼다.


그렇게 15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수많은 사진을 보정했고, 그걸 이용해 누군가를 만났으며, 처절한 평가받은 뒤 절망하는 삶을 반복했다. 아픈 시간은 굳은살이 되었고, 만인의 이상형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조금 더 성숙한 자아와 함께 거울 속 스스로를 오롯이 마주하기 시작했다. 완벽하지 않은 사진 속 모습이 오히려 쿨하다 말하는 세상이 된 것도 보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전환점이 됐다. 모두가 나처럼 운 좋게 자가 치료가 되는 건 아니다. 종종 인터넷 뉴스 랭킹에 누군가의 실물 논란이 도배되는 것만 봐도 많은 이가 ‘왜곡된 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필터 안 세상을 헤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스스로를 사랑하자는 움직임은 트렌드가 아닌 사회 기조가 되어 가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 성형수술은 물론 사진과 영상 리터칭 기술 또한 그에 비례하듯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지난해 한 매체에서 국내 MZ세대 1천2백83명을 대상으로 외모에 대한 만족감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약 40%의 응답자가 만족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는데, 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더욱 체감할 수 있다. 미간부터 코끝까지의 길이가 짧을수록 비율이 이상적이라는 기준이 떠오르며 이에 집착하는 이른바 ‘중안부 정신병’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고, 광대뼈에서 턱선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매끄럽지 않아 숫자 3처럼 보인다며 스스로를 ‘땅콩형 얼굴’이라며 자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대가 흐르며 새로운 미의 기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나 사소한 부분에 온 신경을 쏟는 점은 분명 경계해야 한다. 이런 강박은 시대를 거듭할수록 연령대 또한 낮아지고 있는데, 지난해 11월 통계청에서 발표한 ‘15세부터 18세 사이 청소년의 주된 고민’에서는 외모 고민이 12%를 차지했다. 학업, 진로 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을 보면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치가 아니다.

인간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본능이며, 인류 문화의 발전에 불가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모에 대해 완벽을 추구하다 보면 미의 기준이 하나로 고착될 위험이 있다.
이런 흐름은 다양한 형태의 아름다움을 부정하며, 이는 곧 개인의 성장을 방해하고 더 나아가 사회 발전까지 멈추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수세기 전부터 인간은 아름다움을 좇아왔다. 어쩌면 외모에 대한 집착은 본능적인 행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집착이 나 자신을 괴롭히고 힘들게 만든다면 그것은 분명한 문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실질적 치유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런 중독적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정심리상담센터 정옥현 센터장은 이러한 외모 강박은 분명 신체이형장애로 불리는 병이며, 성인보다 변별력이 떨어지는 청소년이 더 쉽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성인은 비교적 자아 정체감이 이미 형성돼 있고, 삶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좌절이나 고통을 조절해내는 방법을 깨우친 반면 청소년은 이를 형성해가는 시기이기에 남들과 비교하는 데 더욱 취약해요. 또한 그들이 주로 소비하는 연예인과 인플루언서가 외모를 통해 수익을 창출을 한다는 비교적 간단한 논리로 받아들일 수 있어 더욱 위험하죠.” 과거에 비해 오늘날은 휴대폰과 SNS의 발달로 더 많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닿을 수 없는 이상향을 쉽게 마주할 수 있고, 이런 상황에서 뷰티 필터는 순식간에 자신이 원하는 외모로 만들어줌으로써 일시적 만족감을 주지만, 현실의 얼굴로 돌아갔을 때 더 큰 절망으로 이어지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SNS 속 뷰티 필터에 대한 더욱 강력한 규제가 필요한 상황이다.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지는 요즘, 과연 지금처럼 단순히 뷰티 필터를 금지하는 것이 최선책일까? 정옥현 센터장은 “모두에게 금지한다면, 비교 수단과 기준이 없어짐으로써 정신 건강 개선에 도움을 줄 순 있어요. 하지만 외모지상주의나 성을 상업화하는 사회 흐름과 기술의 급발전 속에서 또 다른 기술이 만들어질 것이 뻔하죠. 그렇기에 예방 차원의 지원과 교육이 가장 중요해요.” 결국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근본적인 정신과 치료가 가장 우선시돼야 하지만, 미에 대한 동경은 인간의 본능과 같아 뾰족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가장 현실적으로 효과가 보장되는 것은 심리 상담 및 약물 치료다. 이후 운동이나 소소한 취미 생활을 즐기며 타인이 아닌 본인에게 집중하는 태도가 동반되면 더욱 효과적일 터. 또한 ‘특정한 기준을 맞추어 따라가면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품고 본인만의 가치를 찾아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인간에게 만족이라는 감각은 참으로 간사하다. 특히 오늘날 외모에 대한 열망은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아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만족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가장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가지고 태어난 본연의 모습에 스스로 만족하며 담담히 웃어 보이는 것, 어쩌면 그때야말로 우리가 사진으로 기록해 두어야 하는 가장 찬란한 순간이 아닐까. 이가 너무 누렇다느니, 웃을 때 팔자주름이 신경 쓰인다느니 하는 걱정은 제발 저 멀리에 묻어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