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찬란하면서도 씁쓸하고, 여성은 연약하고도 강인하다. 과감한 색채로 관습적인 카테고리를 해체하는 디자이너, 록산다 일린칙이 앤아더스토리즈와 단독 협업 컬렉션을 출시했다.

평소 작업에서도, 앤아더스토리즈와의 협업 컬렉션에서도 대담한 색채와 굵직한 선이 돋보이는 실루엣이 눈에 띕니다.
세르비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색에 대한 사랑이 싹텄어요. 햇빛이 풍부하고 생생한 색감이 가득한 곳이었거든요. 제게 색은 성장 과정의 일부라, 익숙하고 안전한 느낌을 줘요. 또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재료이기도 하죠. 그 덕에 저는 대담하고 예상치 못한 색 조합을 자유롭게 활용합니다. 일부러 낯설게 조합해 보는 거예요.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흔들어보고 싶거든요. 우리는 모두 어떤 색이 서로 어울리는지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에 노출되어 있는데요. 전 이런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요. 저의 목표는 재미와 예기치 못한 요소를 함께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컬러 조합이 대조적이고 독특하면서도 조화로운 것이죠.



이번 협업 컬렉션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컬러 팔레트를 사용했나요?
봄/여름 컬렉션인 만큼, 늦여름의 노을, 나른한 아침, 끝없이 이어지는 여름날의 아름다움처럼 가볍고 향수 어린 분위기를 담고 싶어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여름의 순간들을 담아내고자 했어요. 동시에 브론즈나 번트 오렌지처럼 다소 어두운 색조도 포함했는데요. 밝음 속에도 언제나 어두움이 존재하잖아요. 그런 이중적인 면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앤아더스토리즈와의 협업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진행을 결심한 구체적인 계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패션계가 서로 얽히고 연결되는 방식은 참 흥미로워요. 이번 협업은 공통의 인연을 통해 이루어졌는데요. 앤아더스토리즈 아틀리에 팀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의미 있는 무언가를 같이 만들고자 하는 열망과 그에 관한 호기심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전 세계의 다양한 여성과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아이디어가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했고, 거기서 영감도 많이 받았습니다. 제 작품을 통해 서로 다른 커뮤니티들이 연결되는 건 언제나 정말 보람찬 일이에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건축을 공부하다가 영국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패션을 전공했는데, 진로를 바꾼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전공은 건축에서 패션으로 바꿨지만, 사실 저의 여정 자체는 그 반대 방향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어요. 세르비아에서 공부할 때는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갈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현실을 고려해 건축학과 진학을 선택했죠. 하지만 제 안에 있는 열정과 본능을 외면할 수 없어서 베오그라드 응용미술대학에도 진학했어요. 그곳에는 패션을 포함한 다양한 전공이 있었거든요. 이런 경험이 쌓여 결국 런던의 세인트 마틴에서 석사 과정을 밟게 된 거예요. 그리고 그곳에서 제 패션 커리어가 시작됐죠.
패션의 어떤 점에 그토록 끌리나요?
아름다움을 창조하면서도 동시에 문화나 현실과의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다는 점이 특히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건축을 공부했던 이력이 지금 패션 분야에서 작업하는 데 미치는 영향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디자인에 철학적인 요소를 많이 녹여내는데요. 특히 ‘쉼터’와 ‘보호’라는 개념이 있어요. 우리의 집은 종종 작고 성스러운 안식처, 즉 우리가 안전하고 보호받는다고 느끼기 위해서 만드는 신성한 공간으로 인식되곤 하잖아요. 저는 늘 옷 역시 우리의 영혼에 그런 안락함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어요. 그런 마음으로 옷을 디자인해 왔고요. 또 저는 드레스를 모든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조형물로 바라봐요. 하나의 조각품처럼 접근하는 거죠.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동시에, 자기 내면도 계속 들여다보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한 적 있는데요. 세상의 욕망과 나의 욕망이 뒤섞이는 시대에 ‘나만의 시각’은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신성한 내면의 세계를 잃지 않아야 해요.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는 개인적인 관점을 계속해서 지켜나가는 게 중요하죠.
당신은 자신을 ‘여성 중심적’인 미학을 실현하는 디자이너라고 설명하죠. 어떤 뜻인지 더 자세히 말해줄 수 있나요?
저는 여성으로서, 여성을 위해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일종의 ‘자매애’를 담은 개념이에요. 다른 여성들이 무엇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지, 또는 무엇을 감추고 싶어 하는지를 이해하는 감각이죠. 그리고 저는 제 디자인을 넘어서, 다른 여성들을 지원하는 데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젊은 여성 예술가나 여성 크리에이터를 널리 알리고 응원하는 일을 정말 좋아해요.
최근 당신에게 영감을 준 여성은 누구인지 궁금하네요.
에바 로스차일드, 라나 베굼, 타이 샤니, 홀리 블레이키… 존경하는 여성의 이름을 말하자면 끝도 없죠. 한 명만 콕 집어 말하는 건 불가능해요. 저는 어머니, 예술가, 사상가, 비전가 등 수많은 비범한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는데요. 제 작업을 만들고 정의하는 건 이들의 공동체 정신이거든요. 모두 각자 자신만의 이야기, 강점, 그리고 개성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요.
‘여성성의 재해석’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해 왔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현대적인 여성성’이란 무엇인가요?
오늘날의 세계에 맞는 방식으로 여성임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것이에요. 과거의 이상이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방식과 오늘날의 복잡함을 받아들이는 거죠.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지니는 거예요. 선택의 자유를 갖고, 진정성 있게 말이죠.
이번 컬렉션을 표현하는 단어 세 가지를 꼽아 주세요.
페미닌(Feminine), 자연스러움(Effortless), 그리고 즐거움(Joyful)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