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싹 속았수다> 아주 잘 봤어요. 보는 내내 귀한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 습니다. 요즘 어딜 가나 비슷한 말 많이 듣죠?(웃음) 귀하다, 저도 같은 마음이었어요. 그래서 많이 들어도 늘 감사해요. <폭싹 속았수다>와 함 께한 모든 분 덕분에 매일 마음이 잉잉잉 합니다.(웃음)
작품과 관련한 여러 인터뷰를 보았는데, 좀처럼 들뜨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어요. 모두가 소란하게 호평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 같달까요. 저 지금 너~무 좋아요! 그렇지만 인기와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가능한 한 일희일비하지 않으려 할 뿐이죠. 한편으론 취향에 따라 제가 출연한 작품에 대한 호오가 갈릴 텐데도 꾸준히 응원을 보내주는 분들께 더 고마운 마음도 들고요.
각자 어떤 시간에 머무느냐에 따라 달리 보이는 이야기입니다. 날마다 마음에 남는 장면이 다를 테고요. 인터뷰 질문에 답하는 오늘은 어떤 장면이 떠오르나요? “내가 너를 힘들게 해?” 애순이가 뭐라고 하든 수호천사처럼 함께 있던 관식이었는데, 관식이가 유일하게 애순이 곁을 떠난 순간은 그때뿐이었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살게 하고 싶은 마음이 보이던…, 오늘은 그 장면이 떠오릅니다.
곱고 다정하고 마음을 찌르는 말들로 가득한 작품입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남은 건 어떤 말인가요? 1화에서 ‘광례’(염혜란)가 어린 ‘애순’(김태연)에게 전복을 먹여주며 “니 조동이에 들어가면 천환 같어”라고 해요.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느껴져요. 관식에게도 애순이와 금은동 귀요미들이 그런 존재여서 유독 마음에 남은 것 같아요.
평소 임상춘 작가님의 글을 흠모해왔다고 들었어요. 참여한 모든 배우가 하나같이 글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던데, 도대체 그의 글에는 어떤 힘이 담겨 있는지 궁금했어요. 작가님의 이야기에는 살아가는 데 힘이 되는 정이 가득해요. 일상에서 경험하는 가벼운 인사, 무심한 배려, 스치듯 나누는 호의 등 너무 차갑지도, 너무 뜨겁지도 않은 온기가 담겨 있어서 좋아요.
풋풋한 학생에서 세 아이의 아빠가 되는 시간 속에서 달라지는 눈빛, 몸짓, 어투가 인상 깊었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 그렇게 아버지가 된 건가요? ‘관식’을 연기하면서 고려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일단 관식이 가진 듬직함을 표현하기 위해, 몸무게를 늘리고 운동을 하면서 체구를 키웠어요. 그 밖에 시각적으로 느껴지는 변화는 분장 팀과 의상 팀의 세심한 노력이 큰 역할을 했고요. 그날그날의 외양에 따라 태도나 자세가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관식의 외형을 너무 잘 만들어주셔서, 연기하는 데 적잖이 도움을 얻었어요. 저는 가정을 이룬 후의 관식에게서 신중한 태도가 잘 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자신을 닮은 생명체가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존재일지를 생각하며, 가족과의 시간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자는 것이 출발점이었죠. 애순이와 아이들이 넘어지면 달려갈 수 있는 곳, 위로받고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관식이가 되었습니다.
<폭싹 속았수다>를 본 많은 사람이 그랬듯, 배우 역시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삶을 살펴보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무언가 가 있다면요? 인생에 꼼수가 없는 무쇠 같은 관식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성실함으로 일군 시간들은 시간이 지나면 열매가 되어 돌아온다 믿거든요. 또 애순이는 그날의 마음을 털어놓고, 관식이는 애순의 등을 두드려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힘든 날은 있어도, 외로운 날은 없도록 만드는, 서로를 다독이는 그 시간이 좋았어요.
자신이 출연한 작품을 자주 다시 보는 편인가요? 자주 보지는 않지만, 계절에 따라 문득 생각나는 작품이 있긴 해요. 뜨거운 여름날에는 <구 르미 그린 달빛>이 생각나고, 첫눈이 내리는 겨울날에는 <응답하라 1988>이 떠올라요. 이제 노란 꽃이 피는 봄날에는 <폭싹 속았수다>가 생각날 것 같네요.
<폭싹 속았수다>는 언제 다시 보게 될 것 같나요? 개인적으로는 너무 많이 울게 되어 자주 보진 못할 것 같습니다만. 보고 싶은 날, 바로 다시 볼래요. 금명이가 불쑥 관식과 애순이 있는 요새에 간 것처럼요.
드라마 덕분에 ‘폭싹 속았수다’라며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스스로에게 폭싹 속았수다(정말 수고했다)라고 자주 말해주나요? 어떤 때 그 말을 해주고 싶나요? 하루 일과를 마친 후 스스로를 잘 격려해주려 하는 편이에요. “오늘 하루 괜찮았다, 좋았다.” 그러면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주는 방식이 건강한 삶을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인터뷰를 읽고 계신 여러분도 오늘 하루 폭싹 속았수다!(웃음)
계절이 돌고 돌며 지속되는 애순과 관식의 삶을 보며 건네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지금 박보검이라는 배우는 어떤 계절을 지나는 중이라 생각하나요? 나의 계절 안에서 어떤 순간들을 맞이하는 중인가요? 모든 것을 새롭게 정비하며, 지금의 저는 봄을 맞기 위해 준비 중인 것 같아요. 겨울을 견딘 자리에 연둣빛 새잎이 돋아나는 작지만 힘찬 순간들을 기록하며 봄을 기다리고 있어요.
새 드라마 <굿보이>로 봄을 넘어 여름까지 맞이하게 될 것 같아요. 따뜻함 이상의 뜨거움을 지닌 인물 ‘동주’를 만났으니까요. 코믹 액션 수사물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인물도 처음이라 기대됩니다. <폭싹 속았수다>로 위안과 위로를 받았다면, <굿보이>로는 경쾌한 힘을 얻는 분이 많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이 배우가 나오는 작품은 추천하고 싶다는, 저라는 배우에게 믿음이 생긴다면 더 바랄 게 없 을 테고요.
영화 <원더랜드>와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굿보이>로 이어지는 최근의 작품들을 보면 다루는 이야기는 각기 다르지만 그 안에 사람과 삶에 대한 애정이 담겨 있다는 공통점이 눈에 띄어요. 그 점이 작품을 선택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가늠해봤습니다.기본적으론 제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가 가족이나 연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선택해요. 작품을 본 후 옳고 그름,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이런 대화를 통해 각자의 삶이 건강한 방향으로 선순환되길 바라면서요.
음악 프로그램 <더 시즌즈 – 박보검의 칸타빌레> 역시 같은 마음으로 선 택한 거겠죠? 음악에 대한 사랑을 더해서요. 맞아요.(웃음) 배우는 팬들을 대면할 기회가 팬 미팅이나 시사회 외에는 거의 없어요. 그래서 하게 되기도 했고요. 또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직접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부르는 분들을 보면 진짜 경이로워요. 그분들은 음악으로 자신만의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어내는 거잖아요. 그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무척 소중한 요즘입니다.
언젠가 <더 시즌즈 – 박보검의 칸타빌레>에 초대하고 싶은 인물이 있다 면요? 꼭 가까이에서 들어보고 싶은 음악이요. 바람을 좀 넓게 가져보자면(웃음) 딱 세 곡이 떠올라요. 코디 프라이의 ‘Photograph’, 커크 프랭클린의 ‘OK’, 그리고 비욘세의 ‘Listen’.
마지막 질문입니다. 삶에 영화와 드라마, 음악 그리고 무언가 하나를 더 남긴다면요? 무엇이 존재하면 좋을까요? 사랑. 살아가며 미움이나 다툼, 시기와 질투보다는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받은 사랑을 잘 나누고, 또 그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전파되어 세상이 보다 더 평화롭고 따뜻해지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봄처럼요.







하이 삭스는 개인 소장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