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글로벌 향수 & 뷰티 크리에이티브 리소스 디렉터, 토마 뒤 프레 드 생 모르
경쾌한 프루티 플로럴 향이 특징인 샹스 오 스플렌디드

당신의 작업물을 보면 브랜드가 오랜 시간 이어온 헤리티지를 유지하면서도 트렌드를 놓치지 않는 동시대적 면모가 눈에 띕니다. 공존하기 어려운 이 두 가지를 하나의 콘텐츠에 담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무엇인가요? 역사와 헤리티지, 현재와 미래 사이의 지점에 놓인 자체가 도전이에요. 우리가 그린 스토리라인을 잘 유지하되, 그 방법은 늘 새로워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로미오와 줄리엣>이나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가 시간이 흘러도 내용은 변하지 않지만, 그때그때 동시대적으로 재해석되는 것처럼요. 샤넬도 마찬가지예요. 샤넬이 지닌 헤리티지는 놓지 않되, 그것을 현대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죠. 그 중간 지점을 찾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샤넬은 오랜 역사를 이어온 만큼 아이코닉한 제품이 많아요. 캠페인 작업을 할 때 샤넬의 유구한 역사를 담으려고 노력하는 편인가요? 항상 그렇진 않아요. 과거만 인용하고 언급하는 것은 지금 시대와 맞지 않기에 적절한 균형이 필요해요. 이건 제품에 따라서 작업 방향이 달라지기도 해요. 역사가 긴 제품이라면 더 자유롭게 그리기 좋아요. 기존보다 훨씬 미래지향적으로 방향성을 잡기도 하고요. 그에 비해 역사가 짧은 제품은 그 역사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품에 따라 다르게 방향을 잡는 편이에요.

샹스의 서사도 무려 20년이 훌쩍 넘었죠. 샹스 컬렉션의 비주얼 아이디어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샹스는 단순히 운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단과 결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에게 샹스는 이런 결심으로 향하는 ‘움직임’이에요. 내가 그 결심만 하면, 그 기회를 잡고 움직이고, 현실화하는 것이죠. 원형 보틀은 사각에 비해 이런 움직임을 더욱 잘 표현하는 형태이고요. 컬러도 아주 중요한 요소죠. 긍정적 기운을 불어넣는 밝은 컬러, 그중에서도 보라색을 선택해 에너지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각 샹스 컬렉션의 컬러 팔레트가 다른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맞아요. 샹스 오 땅드르는 부드럽고, 샹스 오 후레쉬는 에너제틱한 느낌이죠. 다양한 꽃이 피어나듯 다채롭게 춤추는 듯한 컬렉션을 구상했어요. 각 샹스는 모두 다른 리듬으로, 당당한 에너지를 표현하고 있답니다.

이번에 출시하는 샹스 오 스플렌디드를 처음 경험했을 때 떠오른 그림이 궁금해요. 매력적이면서도 무척 긍정적인 향이라고 생각했어요. 에너지가 넘치면서 유쾌하며, 싱그러운 과일 향이 확 퍼지는 느낌이요! 단번에 에너지 넘치는 무드가 머릿속에 구상되었죠.

샹스 컬렉션은 한국에서도 무척 사랑받는 제품이에요. 샹스 오 스플렌디드가 기존의 샹스 컬렉션에 비해 가장 뚜렷하게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이번 샹스는 이전보다 더 깊은 인상을 남겨요. 여전히 유쾌하고 긍정적이면서 그 위에 미묘하게 다층적인 감정이 더해졌어요. 더욱 흥미롭게요! 요즘은 흑과 백, 이분법으로 나누어 세상을 바라보는 경향이 짙지만, 이 향은 그 사이 어딘가에도 충분히 답이 존재한다고 이야기해요. 이번 샹스 오 스플렌디드 캠페인은 그 다채로움을 비추고 있어요. 거울과 그 속에 반사된 다양한 나의 모습,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미묘한 감정, 그 경계에서 느껴지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모두 담았죠. 이런 맥락에서 향이 지닌 서사가 한층 풍부하게 확장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캠페인 필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죠? 필름 속 보라색 거울 세트가 무척 신비롭게 느껴졌어요. 보틀이 연상되는 점도 인상적이고요. 향수의 컬러를 보라색으로 고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앞서 말했듯 샹스 오 스플렌디드가 프루티 계열이에요. 붉고 진한 레드 계열 과일을 중심으로 구성했기 때문에 보라색이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죠. 물론 흰 바지에 튀어 얼룩이 지면 너무 잘 보이긴 하겠지만요, 하하! 또 하나의 이유는 기존 샹스 라인과 차별화된 컬러가 필요했어요. 샹스는 지금까지 비비드한 원색을 사용한 적이 없어요. 늘 부드럽고 감성적인 컬러 팔레트를 활용했죠. 이런 흐름에 따라 이미 사용한 옐로, 그린, 오렌지, 핑크 다음으로는 퍼플이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지였어요.

샹스 오 스플렌디드의 키워드는 ‘믿음’, 그리고 ‘무한한 가능성’으로 귀결될 수 있을 듯해요. 캠페인 필름에서 보여준 앙젤과 소녀들의 발랄한 애티튜드가 이런 키워드를 반영한 건가요? 샹스 오 스플렌디드의 기획 의도가 그러하듯 이 캠페인 필름에서는 무한한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어요. 마치 만화경처럼 주인공이 거울 미로 속에서 반복되고 확장되면서 끝없는 가능성에 관해 이야기하죠. 보통 미로 속에서는 걱정되고 불안하기 마련이잖아요. 하지만 필름 속 주인공은 단 한순간도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않아요. 그의 표정과 태도에서 알 수 있듯, 오히려 설레요. 마치 우리에게 ‘나는 이길 준비가 되어 있어’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요. 마치 게임이 시작되기 전부터 이미 승리를 예감하는 사람처럼요.

필름 속 앙젤은 전혀 불안해 보이지 않아요. 당차고 밝은 에너지가 그대로 느껴지고요. 이번 캠페인의 주인공으로 앙젤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유는 간단해요. 그와 다시 일하고 싶었거든요. 예전에 마스카라 캠페인을 함께 촬영한 적이 있는데, 프로페셔널하면서도 당당한 모습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어요. 샹스 오 스플렌디드 캠페인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샹스 오 스플렌디드의 얼굴 그 자체죠. 그는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에요. 그만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감성은 샹스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진취적 메시지와 무척 닮아 있어요. 늘 새로운 것을 향해 나아가며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는 모습. 그야말로 ‘샹스’다운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해요.

기존 샹스 캠페인의 톤 앤 무드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비주얼을 구상하는 일은 어마어마한 도전처럼 느껴집니다. 이번 샹스 오 스플렌디드를 론칭하며 이러한 고민을 어떻게 해결했나요? 고민스러웠지만 의외로 수월하게 진행했어요. 2001년부터 2022년까지 샹스 캠페인은 모두 장-폴 구드(Jean-Paul Goude) 감독이 연출을 맡았거든요. 그는 자신만의 독보적 비주얼 감각을 지닌 감독이기 때문에 그에 버금가는 후임자를 찾는 과정은 많은 고민이 따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오랜 시간 그와 함께했기 때문에 오히려 후임자 선정의 기준이 명확했어요. 장-폴 구드 감독의 스토리텔링을 자연스럽게 이어갈 수 있고, 그와 비슷한 비주얼 감도를 지닌 인물이어야 했죠. 떠오르는 사진가는 단 한 명,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이었어요. 그는 이미지를 순수하게 담아내는 동시에 정교하고 세심한 터치를 가미하는 아티스트거든요. 그런 점에서 장-폴 구드 감독과 비슷한 점이 무척 많죠. 이번 캠페인은 새로운 스토리인 동시에 만화 같은 분위기가 있어요. 소녀들이 움직이는 장면은 마치 만화 캐릭터처럼 생동감이 느껴져요. 이런 맥락에서 자연스럽게 영화감독 장-피에르 주네의 작업 방식이 떠올랐어요. 그의 작품을 보면 초현실적이고 컬러와 구도, 카메라 움직임이 무척 생경하죠. 그 정서적 연속성이 이번 캠페인에도 살아 있고요. 새로운 이야기를 다루더라도, 샹스 캠페인만의 일관된 시선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감도를 정확히 이해하는 연출자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걱정스러웠지만, 오히려 그 긴 시간이 있었기에 적임자와 작업하는 행운을 누렸죠.

창작자의 입장에서 사람들이 이 캠페인을 보고 느끼길 원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스스로를 믿고 달릴 것, 두려워하지 말고 인생을 즐길 것,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모두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감을 가질 것.

요즘 시대의 콘텐츠는 쉽게 양산되고, 그만큼 빠르게 휘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화적 서사와 메시지를 담아내는 디렉터로서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참 끔찍하죠.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현실이에요. 가장 고통스러운 건 우리가 영상을 빨리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당연히 속도를 높일 수는 있지만, 퀄리티는 절대 타협할 수 없거든요. 디테일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는 명확해요. 결국 퀄리티가 브랜드의 시각적 정체성을 결정하니까요. 하지만 세상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어요. 게다가 지금 이 세상은 무척 시끄러워요. 이미지, 정보, 스토리가 지나치게 많잖아요. 그럴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이 많은 것 중에 대체 무엇을 기억할까?’, ‘우리 작업 중에 기억에 남는 게 단 하나라도 있을까?’ 남들보다 조금 덜 생산하더라도, 우리가 만드는 한층 더 고급스러운 콘텐츠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기를 바라요. 물론 쉽지 않죠. 일종의 도박 같고, 이길 수 있을지 확신도 없지만, 우리에겐 퀄리티가 가장 중요하니까요. 모두가 시끄럽게 말하는 시대엔 가끔 조용히 침묵하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좀 과감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요즘 세상엔 말이 넘치는데, 정작 내용은 없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그게 훨씬 재미없다고 느껴요.

일을 하면서 기억에 남는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이 항상 어렵다고 느끼기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무척 감명했어요. 당신도 그렇게 느낄 거예요. 요즘은 아이폰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에디터처럼 행동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그래서 더 조심스럽고,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해요. 솔직히 말하면 요즘은 모두가 제 경쟁자예요. 누구나 영상을 찍고, 누구나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시대거든요. 그 안에서 더 좋은 영상, 더 좋은 영화를 만들어내는 건 결코 쉽지 않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애쓰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차이를 만드는 건 ‘얼마나 깊게 만드느냐’인 것 같아요.

인터뷰가 담긴 책이 발행될 때쯤엔 완연한 봄을 넘어 여름을 준비하고 있을 시기예요. 샹스 오 스플렌디드를 뿌리기 가장 좋은 계절이 되어 있을 듯하네요. 이 제품은 어떤 사람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가요? 최대한 많은 사람이 샹스 오 스플렌디드를 경험하길 바라요. 이 향수를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고, 인생을 함께하는 친구 같은 존재로 느끼길 바라요. 그러다 보면 처음 이야기한 것처럼 기회를 잡을 결심을 하고 곧바로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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