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투는 단순한 하나의 취향을 넘어 개인의 자유와 문화적 표현의 상징이다. 타투가 그저 한 사람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질 때, 우리는 정서적 풍요와 문화적 성숙을 이루며, 더 다양하고 포용적인 사회라는 꽃을 피울 것이다.
타투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개인적으로 이 질문에 ‘짝사랑’이라 답하겠다. 약 15년 전, 그 시절 핫 셀럽이던 콜 모어와 스트리트 패션 문화의 열혈팬으로서 그들의 몸에 당연한 태도로 새겨진 타투는 쿨하고 자유로운 정신의 상징으로 보였다. 언젠간 타투를 마음껏 새길 수 있는 때를 고대하며, 같은 마음을 가진 친구들과 하고 싶은 도안에 대해 밤새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취향에는 호불호가 나뉘는 법. 타투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나와 달리 극도로 거부하는 사람도 있음을 차차 인지하게 되었다. 분위기 좋게 데이트를 한 사람이 나중에 내 몸에 타투가 있다는 이유 하나로 연락을 끊기도 했고, 온라인 세상에는 담배를 피우고 문신이나 피어싱을 한 사람을 비하하는 ‘문담피’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실제로 ‘한국리서치 정기조사 여론속의 여론’은 2023년에 18세 이상 남녀를 대상으로 타투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약 66%가 타투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대부분 타투가 불량해 보이거나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어쩌면 타투는 표현의 자유 중 일부일 뿐인데, 이를 혐오하는 태도가 지배적인 의견을 차지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역사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선조들은 유교 문화 아래 부모가 준 신체를 훼손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는데, 그 시대 풍습이 알게 모르게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타투가 주로 범죄자를 비롯해 반사회적 인물을 표현하는 문화로 자리 잡으며 반사회적 인물의 상징이 된 사태 또한 한몫했다. 심지어 대한민국 의료법은 1992년부터 타투를 침습 행위로 분류하며, 의사 면허를 가진 의료인 이외의 사람이 시술하는 행위를 금지하며 이런 부정적인 인식에 못을 박았다. 지속되는 대중의 타투 합법화 요구에 지난 2014년부터 2015년까지, 약 2년에 걸쳐 규제 개혁이 추진됐지만, 아쉽게도 무산됐다. 이에 더해 2022년 지상파 방송사들은 ‘보는 사람이 불쾌감을 느껴서는 안 되며, 어린이 정서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방송 내 타투 노출 금지라는 규제를 내리기도 했다. 현업에 종사하는 타투이스트들은 현 규제는 시대 감성과 심히 동떨어져 있다고 입을 모아 주장한다. 6년 차 타투이스트인 노동포크는 규제의 허점을 꼬집었다. “애매한 법의 둘레 밖에서는 이미 수많은 작업자와 소비자가 존재하는 것이 한국 타투 시장이고, 이는 모두가 아는 공공연한 사실이죠. 그럼에도 정부는 계속 애매한 규제를 고수하고, 그 아래 생겨나는 사각지대는 작업자와 소비자 모두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시술자에 대한 처벌조차 명확하지 않아 비위생적 환경을 개선하지 않는 작업자가 여전히 존재하며, 소비자는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아무런 대응을 할 수 없죠.” 또 원하는 타투를 받기 위해선 작업자의 집이나 이름 없는 주소지로 향하며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떨어야 하고,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도 영수증조차 받을 수 없어 소비자로서 누려야 할 당연한 세제 혜택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이는 타투이스트도 마찬가지다. 개인사업자 항목 중 ‘타투’가 없어 정상적인 사업체 등록은 물론 세금 또한 납부할 수 없다. “국가 차원의 관리가 너무나 절실합니다. 정확한 규제가 생기면 이를 어겼을 때 처벌하는 기준도 훨씬 명확해져 모두가 안전한 환경에서 타투를 즐길 수 있을 거예요.” 10년 차 타투이스트 빈센트 또한 비슷한 의견을 피력했다.
그렇다면 다년간 정부가 고수해온 타투에 대한 규제를 통해 국민의 심신 건강,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적 안정과 질서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내 생각으로는 단연코 그렇지 않다. 이는 하나의 문화를 탄압하는 행동으로, 사회에서 창의성과 다채로움이라는 가치가 사라지게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특정 문화에 우위를 만들어 소수집단에 대한 차별과 소외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정부의 암울한 규제와 반대로 타투를 인식하는 대중의 시선이 점차 긍정적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대중문화 속 수많은 셀럽이 타투를 공개적으로 드러내 이를 패션과 개성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타투를 더 이상 낙인이 아닌 ‘추억’이나 ‘기록’의 의미로 승화하며 긍정적인 해석이 더해지는 중이다. 또한 뛰어난 실력을 갖춘 국내 타투이스트의 글로벌 활동과 성과가 타투가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받는 데 이바지했다. 보건복지부가 추산한 2024년 기준 문신 인구는 약 3백만 명을 돌파했고, 한국타투협회가 추산한 시장 규모는 2천억원에 이를 정도로 몸집이 커지고 있다. 음지에서 양지로 나아가면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부는 지금, 이들이 법적·사회적 장벽 없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의 선택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 보인다.
모든 문화는 다양한 배경 아래 생각지도 못한 형태로 진화한다. 이 과정에서 생겨나는 마이너 문화는 독특한 취향을 가진 이들에게 ‘우리’라는 소속감을 심어주는 건 물론, 좋아하는 것을 계속 좋아할 수 있는 힘과 위로를 건네기에 더욱 소중하다. 타투가 나의 알 수 없는 공허감을 채워주고, 끔찍히도 혐오하던 신체의 일부를 가려준 것처럼, 누군가에게 또 다른 무언가로서 존재할 터. 독특함이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되지 않게, 모든 문화가 있는 그대로 발전하는 사회가 되기를 다시 한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