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워드에서 수상한 9명의 펠로우.
3명의 펠로우와 샌디 토크스빅의 대담 장면.
연설 중인 까르띠에 문화 및 인류애 프로젝트 의장 시릴 비네론.

이튿날, 사카이 공연아트센터에서 진행한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 (Cartier Women’s Initiative, CWI)’ 2025 어워드 시상식은 전날 못지않게 감동적이고 다채로운 이벤트로 가득했다. 방송인이자 성평등 운동가인 샌디 토크스빅(Sandi Toksvig OBE)이 특유의 유쾌함으로 식을 이끌어가는 가운데 일본을 대표하는 클래식 예술가 3인이 CWI를 위해 특별 작곡한 신작을 연주하며 막이 올랐고, 하이라이트인 시상 순서에는 총 9명의 여성이 무대에 섰다. 폐기되는 고무 소방 호스를 패션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엘비스 앤 크레시(Elvis & Kresse)의 크레시 웨슬링(Kresse Wesling)부 터 바나나와 대나무 섬유로 생분해 생리대를 만드는 기업 사티(Saathi)의 크리스틴 카게추(Kristin Kagetsu), 나무 10만 그루가 정화하는 양에 준하는 탄소 발생량 저감 결과를 이끌어낸 비비드 엣지(Vivid Edge)의 트레이시 오루크(Tracy O’Rourke), 독자적 플랫폼을 통해 평균 3시간 이상 소요 되던 케냐 내 응급 대응 시스템을 16분 수준으로 단축시킨 플레어(Flare)의 케이틀린 돌카트(Caitlin Dolkart), 유기물 분해 장치인 바이오디게스 터를 통해 인도 전역에 깨끗한 화장실을 보급한 반카 바이오루(Banka BioLoo)의 나미타 반카(Namita Banka), 태양광 기반의 정수 ATM을 설치함으로써 르완다를 포함한 아프리카 일대에 식수를 공급하는 이리바 워터 그룹(IRIBA Water Group)의 이베트 이심웨(Yvette Ishimwe), 아랍 내 읽기 빈곤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접근하기 쉬운 아랍어 교육 콘텐츠를 론칭한 리틀 싱킹 마인즈(Little Thinking Minds)의 라마 카이얄리(Rama Kayyali), 성폭력 피해 여성에게 긴급 구조 및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세이프 유(Safe YOU)의 마리암 토로스얀(Mariam Torosyan), 기술과 유통의 인프라를 결합해 농촌의 판매망을 혁신적으로 개혁한 에스마트 글로벌 (Essmart Global)의 재키 스텐슨(Jackie Stenson)까지. 자신만의 방식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여성들은 마리끌레르와 CWI, 그리고 이들이 공유하는 여성과 연대라는 키워드가 얼마나 큰 의미와 힘을 지니고 있는지 다시금 깨닫게 했다. “우리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해 세대를 위한 길을 개척한 그들의 용기와 비전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들의 여정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영감을 선사합니다.” 어워드 말미에 울 려퍼진 시릴 비네론의 전언 역시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을 맴돈다. 때로 우리는 스스로를 둘러싼 환경에 순응하기를 택한다. 그게 부조리이든 불합리이든 익숙해지고 나면 더 이상 불편할 게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사카에 모인 9명의 여성, 그리고 CWI가 해를 거듭하며 후원해온 3백30명의 펠로우는 기꺼이 불편함을 견디기로 결정함으로써 실존한다. 그렇게 자신에게 주어진 한 칸의 ‘지정 주차 구역’을 단호하게 벗어난다. 이제 그들의 용기는 한 올로 태어나 연대를 통해 매듭이 됐다. 이 매듭이야말로 이 땅에 발 딛고 사는 모두의 오늘을 몇 발짝 더 나아지게 만드는 실마리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인간은 과도기적 존재이며, 사회가 그은 틀을 벗어나 자신만의 삶의 이유를 찾아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니체의 바람은 어쩌면 이런 이들을 두고 남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리끌레르 코리아는 CWI 어워드 시상식에 올해로 두 번째 동행했다. 까르띠에가 오로지 ‘선의를 위한 힘’을 발휘하기 위해 이어온 이토록 진심 어 린 지원을 목도하며 느낀 깊은 공감과 책임감이 독자에게 전달되기를 바라며, 프로그램을 6년간 지휘해온 CWI 글로벌 프로그램 디렉터 윈지 신 (Wingee Sin)과 나눈 짧은 대화를 전한다.

샌디 토크스빅과 CWI 글로벌 프로그램 디렉터 윈지 신.

INTERVIEW

Wingee Sin

금융업에서 쌓은 커리어를 뒤로하고 2019년 까르띠에 여성 창업 이니셔티브(CWI)의 글로벌 프로그램 디렉터가 된 계기가 궁금하다. 나는 커리어의 첫 장을 자본시장에서 시작했고, 이후 15년간 그 분야에서 일하며 마지막 무렵에는 금융 투자 상품 개발과 관련한 직무를 맡았다. 그 시절 실리콘 밸리에서 알게된 인상적인 사실이 있다. 업계에 여성 창업자와 여성 투자자가 드물 뿐만 아니라 여성을 고려한 상품도 거의 없다는 점이다.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수명이 길기 때문에 더 장기적인 재정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금융에 관한 시스템이 세계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면, 그 목표는 결코 달성될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여성 임팩트나 기업가 정신 같은 주제에 깊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큰 전환점이 되었을 것 같다. 그 시점에 까르띠에를 만났다. 당시 브랜드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초반에는 CWI를 변화를 만들어내는 여성들의 공로를 치하하는 형태의 어워드로 운영했지만, 이제는 더 의미 있고 본질적인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그렇게 여성 기업가들의 임팩트 역량 강화에 조력할 기회를 얻었다.

직무를 맡은 후에는 어떤 일들을 해왔나? 시릴 비네론의 강력한 리더십과 전폭적 지지 덕분에 CWI 프로그램을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단순히 재정 자본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인적 자본 제공까지 범위를 확대해 포괄적으로 기업가들을 지원하고자 했다.

지난번 CWI에 참석하며 알게 된 양육 수당에 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우리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사업을 운영하는 기업가이자 누군가의 딸인 동시에, 많은 경우 아내이자 어머니다. 이토록 많은 역할과 책임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펠로우십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니, ‘이 모든 걸 어떻게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이런 맥락에서 이 수당은 펠로우들이 프로그램 기간 동안 보육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소액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형태로 기획했다. 아주 작은 배려지만, 상당수 펠로우가 누군가 자신을 위해 이런 부분까지 세심하게 생각해주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CWI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United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중 최소 하나 이상의 분야에 기여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빈곤 종식, 기아 해소 및 식량 안보, 성평등 달성 등 유엔이 발표한 17개의 목표 중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야는 무언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성평등을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다른 여러 분야의 변화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SDGs 전체에 긍정적 파급효과를 미칠 거라고 기대한다.

프로그램 전반을 지휘하면서 얻은 깨달음이 있나? 지금까지 함께한 3백30명의 펠로우들에 대해 반추할수록 그들이 세상을 위해 만들어낸 제품과 서비스에 놀라게 된다. 각각의 제품과 서비스에는 고유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소비자들이 이들의 물건을 산다면 결국 그 이야기도 함께 구매하는 셈이다. 지금 입고 있는 이 드레스는 인도네시아 출신 펠로우인 데니카 리아디니 플레츠(Denica Riadini-Flesch)의 브랜드, 수카치타(SukkhaCitta)의 제품이다. 그는 ‘농장에서 옷장까지(farm-to-closet)’라는 브랜드의 슬로건 아래 인도네시아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재생 농업 방식과 전통 공예를 되살리고, 농촌 지역 장인에게 직업적이고 경제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일을 목표로 삼는다.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을 공동체에 실질적 변화를 가져왔다. 바로 이런 점이 이 옷을 특별하게 만든다. 다시 말해 이야기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마리끌레르 코리아는 패션이나 예술을 매개로 사회의 목소리를 시각화 하고자 노력하는 매체다. 덕분에 CWI 펠로우들처럼 진취적인 여성 독자층이 많은데, 이들에게 프로그램 디렉터이자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아온 여성으로서 조언한다면? 펠로우 각각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다양한 서사와 방법론 사이로 한 가지 공통점이 보인다. 거의 모든 펠로우가 중요한 사건을 겪고 나서 인생의 방향을 변경했다는 사실이다. 하나의 경험이 문제 해결의 의지를 갖게 했고, 나아가 실질적 솔루션을 제시하는 단계에 이르게 한 것이다. 마리끌레르 코리아의 독자들에게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세상에서 마주치는 어떤 문제도, 그걸 해결하다 보면 결국 자신만의 무언가가 생길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기를 바란다고. 이 가능성을 갖는 것 자체가 이미 훌륭한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