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걷다 보면, 어떤 공간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올여름 에디터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 곳의 책방이 그랬다. 하나는 SF 장르에 대한 애정을 품은 연희동의 플라뇌즈, 다른 하나는 도쿄 감성을 고스란히 옮겨온 한남동의 츠타야 서점 팝업이다. 서로 다른 분위기를 지녔지만, 공통적으로 감각의 확장을 경험하게 해준 공간이었다.
SF를 사랑하는 독립책방, 플라뇌즈

연희동 골목 어귀, ‘SF’라는 큼직한 글자가 적힌 창문이 시선을 끈다. 이곳이 평범한 서점이 아니라는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본건물의 2층과 3층에 걸쳐 자리한 ‘플라뇌즈’는 만화카페 ‘페잇퍼’ 내 팝업스토어로 운영 중인 독립 서점으로, 공간 전반에 SF 장르에 대한 깊은 애정이 스며 있다.


2층은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 구병모 작가의 <파과> 같은 국내 소설은 물론, 고딕, 추리, 공포 소설까지 폭넓은 장르가 어우러진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책 위에 정성스럽게 놓여진 손 글씨 메모들이다. 작은 메모지에는 손님들과 직원의 감상, 추천, 취향이 겹겹이 담겨 있다. 책을 고르다 보면 자연스레 메모도 함께 읽게 되는데, 마치 누군가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특히 눈에 띄었던 건 전혜진 작가가 자신의 책 위에 직접 남긴 메모였다. 고전 순정만화 속에서 SF의 요소를 짚어내는 <순정만화에서 SF의 계보를 찾다>와 <달의 뒷면을 걷다>는 두 장르를 넘나드는 신선한 통찰을 전한다.


플라뇌즈(Flaneuse)란 도시를 거니는 방랑자를 뜻하는 ‘플라뇌르(Flâneur)’를 여성적으로 재해석한 단어다. 그 의미처럼 3층은 ‘걷는 책방’이라는 콘셉트 아래, 도시를 감각적으로 걷는 여성의 시선을 따라 책이 큐레이션된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을 비롯해 신여성과 연대에 관한 책들, 동물과 식물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한강의 소설까지. 깊은 사유를 이끌어내는 큐레이션이 인상적이다.

EDITOR’S PICK
에디터는 이곳에서 이경희 작가의 <SF,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를 구매했다. SF 입문자에게도, 오래된 팬에게도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줄 책이었다. 주말의 여유로운 오후, 설레는 마음으로 첫 장을 넘겨보려 한다.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5안길 32-7
INSTAGRAM @flaneuse_paperr
감각적인 북 큐레이션, 츠타야 서점


연희동의 플라뇌즈가 장르의 깊이를 탐색했다면, 한남동의 츠타야 서점 팝업은 취향의 결을 정제된 감도로 펼쳐 보인다.
지난 5월 말, 콘텐츠 크리에이티브 그룹 CCC ART LAB은 나인원 한남에서 ‘츠타야 CCC ART LAB 서울 팝업’을 오픈했다. 세 개의 테마 공간으로 구성된 이번 팝업은 브랜드 특유의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과 예술적 감각이 응축된 공간이다. 일본을 여행해 본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렀을 츠타야 서점.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이 팝업 소식을 발견한 순간, 에디터 역시 설레는 마음을 숨길 수 없었다.



가장 먼저 향한 공간은 ‘아트의 정원’. 도쿄 긴자 츠타야에서 영감을 받은 실내 정원 형태의 공간으로, 나가이 히로시와 아라이 사코, 모리 히로시 등 일본 현대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코헤이 나와의 조형 작품 ‘Throne’은 절제된 텍스처와 구조미로 시선을 압도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다음은 큐레이션 숍 ‘취향의 조각’. 문구류, 오브제, 인센스, 에코백 등 감각적인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일본의 디자인 셀렉션 브랜드와 국내 브랜드가 어우러진 이 공간은 정제된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에 들어선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마지막 공간은 소형 서점 형태로 꾸며진 ‘작은 책방’. <Popeye>, <Purple> 등 해외 매거진과 아트북이 패션, 건축, 리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전시되어 있다. 팝업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책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이라는 정체성은 충분히 전달된다. 츠타야 특유의 미학이 온전히 살아 있는 공간이다.


서로 다른 온도를 지녔지만, 책을 통해 감각을 일깨우는 방식은 닮아 있는 두 곳. 이번 여름, 플라뇌즈와 츠타야 서점에서 당신의 취향을 새롭게 정의해 보는 건 어떨까.
주소 서울 용산구 한남대로 91 나인원 한남
기간 5월 30일부터 7월 13일까지
INSTAGRAM @ginza_tsutayaboo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