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공간이 방문객들에게 고요함과 깊은 교감을 전하고, 세대를 거쳐 이어져 온 장인정신의 감각을 일깨우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르 라보 글로벌 브랜드 프레지던트 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데보라 로이어


르 라보는 서두르지 않는다. 향 하나에도 온기를 불어넣고, 모든 조향은 장인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프레시 블렌딩을 고수하고, 엄선한 자연원료만을 사용하며, 그날의 공기와 사람의 기분을 담아내듯 라벨에 이름을 적는다. 이처럼 섬세한 태도가 차곡차곡 쌓여 ‘슬로우 퍼퓨머리(Slow Perfumery)’라는 철학을 이뤘고, 이는 소비자의 일상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 고집스럽고 고아한 르 라보가 서울 북촌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 최초이자 전 세계 네 번째 플래그십. 고즈넉한 한옥 골목의 결을 따라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을 통과하듯 도달하는 이곳. 향이 공간이 되는 경험은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르 라보 북촌은 전통과 현재가 겹쳐지는 방식으로 설계되었다. 한옥의 유려한 곡선과 나뭇결은 르 라보의 투명한 유리병, 절제된 타이포그래피, 퍼스널 라벨링에 담긴 장인정신과 은은하게 조응한다. 무채색에 가까운 목재, 질감을 그대로 살린 석재, 절제된 조도는 모두 향을 위한 배경이 된다. 공간은 말을 아끼되, 향을 충분히 감각하게 한다. 전통 목재 기둥을 그대로 살리고, 벽은 삼베로 감싸며, 옻칠한 한지를 포인트로 활용한 디테일은 한국적 정서와 현대적 조형미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도록 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놓인 두 채의 한옥은 하나의 공간처럼 이어지며, 이곳을 찾는 이들을 특정 브랜드의 숍이 아니라 깊은 호흡을 이끄는 쉼터로 안내한다. 여정은 ‘프래그런스 오르간 룸(Fragrance Organ Room)’에서 시작된다. 향이 블렌딩되는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이 공간은, 마치 살아 있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향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바라보는 순간, 소비는 행위가 아닌 감각이 된다. 입구를 지나면 홈 컬렉션과 바디-헤어-페이스, 향수들이 감각적인 리듬으로 이어진다. 질감이 느껴지는 돌 싱크대, 빈티지 가구, 결이 살아 있는 벽과 선반 위로 향과 시간이 층층이 쌓인다. 마감의 흔적조차 하나의 미감으로 녹아드는 이곳은 향이라는 비물질을 물성으로 번역해낸다. 그리고 마지막, 가장 고요한 쉼의 형태. 북촌 플래그십의 또 다른 한옥에는 르 라보의 네 번째 카페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미닫이문을 열면 단아한 중정이 펼쳐지고, 잔잔한 나무 그림자 아래로 직접 내린 핸드 브루잉 커피와 비건 패스트리, 향의 여운이 머문다. 르 라보 북촌은 단순히 공간이 아니다. 그것은 ‘향’을 매개로 감각과 시간, 그리고 삶의 리듬을 조율하는 하나의 철학적 제안이다. 빠르게 소비되지 않는 것들, 조용히 곁에 머무는 것들, 그 진정성 있는 순간들을 향해 르 라보는 여전히, 앞으로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