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욕망이 뒤엉키고, 충돌하고, 엇갈린 자리에 생겨난 균열. <파인: 촌뜨기들>의 세 배우, 류승룡, 양세종, 임수정이 갈라진 틈새에서 건져 올린 것들.

임수정 재킷과 팬츠, 울 니트 브이넥 스웨터, 레이스 러플 블라우스 모두 Chloé, 스레드 컬렉션의 멀티 셰이프
다이아몬드 이어링과 링 모두 Graff.
양세종 스트라이프 재킷 Acne Studios, 블랙 티셔츠 Auralee, 블랙 와이드 팬츠 Jacquemus.
류승룡 재킷과 니트 톱 모두 Zegna, 안경 Gentle Moster.
브라운 트랙 톱과 레더 재킷 모두 Ferragamo, 브라운 와이드 팬츠 Jil Sander.

슬리브리스 톱과 베이지 싱글 재킷, 쇼트 트렌치 재킷 모두 Dior, 블랙 와이드 팬츠 Jacquemus.

약 한 달 뒤면 시리즈 <파인: 촌뜨기들> 첫 화가 공개되죠. <이끼> <미생> <내부자들>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려온 윤태호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입니다. 각색된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어떤 인상을 받았나요?

작품에 정말 많은 인물이 등장해요. 그런데 각자가 가진 배경이나 욕망이 저마다 달라서 서사가 전혀 겹치지 않더라고요. 신안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 전국에서 꾼들이 모이는데,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한데 모여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고 얽히는 구조가 흥미로웠어요. 인물들이 어떻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갈등을 돌파해가는지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고요.

197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인 만큼 시대 고증도 중요한 과제였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래서 대본 외에도 유튜브 영상을 자주 참고했어요. 외형적으로도 디테일을 더하기 위해 사전에 감독님, 분장 팀, 의상 팀과 많은 논의를 했고요. 제가 연기한 ‘오희동’의 외적인 스타일을 동물 에 비유하자면, 딱 늑대예요. 대본을 읽자마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타인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가 익숙하고, 그걸 스스럼없이 인정하는 인물이에요.

희동이라는 인물을 관통하는 욕망은 무엇인가요?

핵심에는 돈이 있어요. 막대한 부에 대한 욕망이죠.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자랐고, 삼촌을 따라다니면서 좀도둑질을 밥 먹듯이 하고 다니면서 환경이 희동을 그 렇게 만들었을 거예요.

그 욕망을 어떤 방식으로 실현해나가요?

희동은 목표가 생기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달려나가는 인물이에요. 그 과정에서 방해가 되는 요소는 사람이든, 상황이든 가차 없이 밀어붙여요. 희동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충동을 참지 않는다는 건데요. 언제나 몸이 먼저 반응해버리는 행동파입니다.(웃음)

작품 속 상황처럼, 현실에서도 나와 타인의 욕망이 부딪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는 편인가요?

대체로 양보하는 쪽이에요. 정말 아니다 싶은 정도가 아니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게 둬요. “가져가세요” 해요, 그냥. 갈등이나 다툼을 워낙 싫어하거든요. 예를 들어, 친구 셋이 있는데 둘이 사이가 좋지 않으면 제가 중간에서 양쪽 눈치를 보면서 관계를 풀려고 노력해요. 그 관계가 제게 너무 소중하니까요. 잘못 이 상대에게 있어도 먼저 웃는 얼굴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쪽이고요. 평화주의자 같은 면이 있어요.(웃음)

희동이라는 인물과는 전혀 다르네요. 연기하면서 속이 시원했을 것 같아요.(웃음)

정말 그랬어요. 저와 워낙 다른 인물이라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죠. 희동은 충동이 올라오면 바로 행동으로 옮기잖아요. 저는 그럴 때 복싱장에서 샌드백을 치거나 한강을 달리면서 풀거든요. 희동이 실존했다면 아마 장수했을 거예요. 스트레스가 없어서.(웃음)

작품 밖에서 지금 양세종 배우가 품고 있는 욕망이 있다면요?

집에서 이 질문을 보고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내가 정말 갖고 싶은 게 뭘까. 그런데 쉽게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 대신 지금 가장 바라는 건 ‘평온함’이에요. 단순히 편안함을 느끼는 것에서 나아가 진정으로 고요한 상태요. 좀 어불성설인 게, 사실 배우라는 일을 하면서 평온하기란 불가능한 것 같거든요. 작품마다 주된 감정이 다르니까요. 멜로 장르를 할 땐 섬세해졌다가, 또 어떤 역할은 한껏 절제될 때도 있다 보니 잔잔한 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더라고요.

지난 인터뷰를 살펴보며 인물에 몰입하기 위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 는 배우라고 느꼈어요. 현장에서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연기에 임하나 요?

여전히 정답은 대본에 있다고 믿지만, 연기하는 방식은 이전과 조금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톤이나 동선을 미리 계획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대사나 상황만 완벽하게 숙지해 가고 현장에서는 모든 걸 열어두려고 해요. 이번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변화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강윤성 감독님을 만나고 조금 바뀌었어요. 감독님은 인물이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연기를 중요하게 여기세요. 대사 톤이 조금만 부자연스럽거나 만들어진 듯하면 단박에 알아보시더라고요. 그런 디렉션을 주신 덕분에 현장 분위기에 푹 빠져들어서 연기할 수 있었어요. 감독님, 감사합니다. 이 말 꼭 써주세요.

작품에 참여한 배우진의 면면을 살펴보면 쟁쟁한 이름들이 포진해 있 더라고요. 여러 선배 배우들과 함께한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가족 같은 분위기였어요. 한여름에 바다로 나가는 장면이 많다 보니 촬영할 때 배우들끼리 한배에 타 있을 때가 많았거든요. 지방 촬영지가 워낙 멀어서 하루 정도 촬영이 없는 날이 있어도 다들 촬영지에 그대로 머물렀는데, 그럴 때 김성오 선배님이 “세종아, 뭐 해? 같이 운동 갈까?” 하고 먼저 연락을 주시기도 했고요. 단체 채팅방에 “밥 먹자”라는 톡이 올라오면 우르르 몰려가서 다 같이 밥 먹고.(웃음)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식구처럼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작중 삼촌 역의 류승룡 배우와는 어떤 대화를 주로 나눴어요?

저 혼자만 간직하고 싶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긴 어렵지만, 연기 외적으로도 좋은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인간 양세종이 지금 겪고 있는 시행착오나 삶에 대한 조언들이요.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알아봐주신 게 무척 감동이었어요. 참 감사한 분이에요.

강윤성 감독은 “모든 캐릭터가 자기주장을 하며 살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죠. 촬영하면서 이를 실감하기도 했나요?

선배님들이 카메라 밖에선 다들 엄청 유쾌하신데, 촬영에 들어가는 순 간 공기가 확 달라지더라고요. 작품에 서울, 전라도, 경상도 패거리가 각각 등장하거든요. 이 인물들이 한 공간에 모이는 순간 이미 기싸움이 시작돼요.(웃음) 특정 장면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함께 있는 모든 순간에 에너지가 충돌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머릿속 에서는 치열한 수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그런 미묘한 심리전을 보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들을수록 기대되네요. 작품에 전형적인 선인이 단 한 명도 등장하지 않죠. 이처럼 권선징악의 틀을 벗어난 이야기에서 시청자들이 무엇을 발견하길 바라나요?

모두 똑같은 악인처럼 보이지만 성향이나 성격이 다 달라서, 보다 보면 자신과 비슷한 면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을 거예요.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가는 모습이 주는 통쾌함도 있을 테고요.

끝으로, <파인: 촌뜨기들>의 이야기가 양세종 배우에게 남긴 것이 있다면요?

인간의 욕심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는지 생각해보게 됐어요. 각자 행복에 대한 관점은 다르겠지만, 인간에게 결국 중요한 건 행복이 구나. 이 사실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에요.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