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고하던 정의에 질문 혹은 반기를 던지는,
7월의 SF, 미스터리 신작 소설 세 편.
히가시노 게이고, <가공범>

“누구에게나 청춘이 있었다. 피해자에게도, 범인에게도, 그리고 형사에게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가공범>은 ‘고다이 쓰토무’를 주인공으로 유명 정치인 도도와 전직 배우인 에리코 부부 사망 사건의 범인과 범행 동기를 찾아가는 추리 스릴러 소설이다. 1985년부터 현재까지, 약 40년에 걸친 이야기로, 올해로 데뷔 40주년을 맞이한 그의 작가 생활 기간과도 맞물리는 이야기인 셈이다. 작가는 작품을 발표하며 “이 소재를 작품으로 쓰게 될 날은 오지 않을 줄 알았다”라고 말했다. 그 이유 가운데에는 주인공 ‘고다이 쓰토무’가 자리한다.
지금까지 히가시노 게이고가 창조한 대표적인 탐정들은 곧 차가운 천재 타입에 뛰어난 관찰력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전작인 <백조와 박쥐>에도 등장한 바 있는 이번 소설의 주인공 ‘고다이’는 유능함보다는 성실함이 무기인 인물이다. 작가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그저 묵묵히 자신의 몫을 해내는, 주변에 흔히 있을 법한 형사 고다이를 내세워 ‘보편성’에 주목한다. 유일함을 추구하고, 자신의 특별함을 드러내며 경쟁하는 사회에서 역으로 ‘보통의 삶’에 자리한 복잡한 인간사, 거기에 얽힌 크고 작은 사건들과 저마다의 사연들을 비추며 말한다.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특별한 무언가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한 사람들 덕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천재 탐정의 수사가 주는 명쾌함보다 평범한 형사 고다이가 고군분투하는 과정에 드러나는 인간의 다채로운 면면으로 깊은 공감을 자아내는, 새로운 휴먼 미스터리 시리즈의 시작을 알렸다.
“존재하는 세계의 차원이 다르겠지. 또래에게만 관심이 있고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과 정보를 공유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중략) 왕따나 학대, 가정폭력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것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략) 청소년들의 마음속에 있는 어둠도 시대와 함께 업데이트되는 것이다.”
안톤 허, <영원을 향하여>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존재란 무엇인가.
안톤 허의 SF소설 <영원을 향하여>는 나노기술, 핵전쟁이라는 전환점을 맞은 인류의 모습을 통해 지금까지 우리가 인간을 정의하는 기준에 대해 묻는다. 나노 봇으로 대체된 신체, 죽지 않는 몸, 복제되는 개체를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반대로 시를 읽고, 음악을 연주하고, 사랑에 빠지는 인공지능은 인간이라 할 수 없는 걸까. 작가는 불멸에 이른 인간들과 인공지능 ‘파닛’, 복제된 클론 ‘이브’가 노트를 이어받아 써 내려가는 ‘일기’를 보여준다. 수백에서 수천 년에 걸친 개개인의 이야기를 연결해 주는 것은 사랑이다. 부부간의 사랑, 부모와 자식의 사랑, 에밀리 디킨슨의 시에 대한 사랑. 작품 속 모든 인물은 여러 가지 사랑의 동력으로 살아간다. 그 경험으로 나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기억한다. 일기에 꾹꾹 눌러 담은 기억과 사랑은 각 등장인물의 근원과 그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알려주고, 이어 기록하며 지켜나갈 수 있게 한다. 이들의 모습이 곧 인간의 정의에 대한 안톤 허의 대답이다. 로봇과 인공지능도 컴퓨터의 언어인 코드로 작성된 매개체인 것처럼 우리도 유전자라는 일종의 언어로 작성된, 암호화된 정보를 품은 매개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의 언어로 ‘나’의 이야기를 써나가는 한 나는 ‘나’일 수 있는 것이다. 작가가 <영원을 향하여>를 집필하며 비로소 오롯한 ‘안톤 허’를 경험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기존의 정의와 경계를 넘고, 영원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의 문학적 항해를 따라가다 보면 다시금 작가의 메세지가 수면 위로 올라온다. “당신이 쓰는 이야기가 바로 당신입니다.”
“문자 그대로 자아 같은 겁니다. 시적 초상은 자아의 표현이 아니라 자아 그 자체인 거죠. 시는 우리가 누구인지 ‘밝혀’주지 않고 우리 자신에게 ‘우리를 더 가까이 데려다’주지 않고 우리 자신을 ‘표현하도록’ 도와주지도 않습니다. 시인은 자아를 글로 써서 존재하게 만드는 예술가입니다.”
우사미 마코토, <달빛이 닿는 거리>

“나의 아가에게. 이 편지를 읽는 넌 지금 몇 살일까?”
인간의 상처와 회복, 그리고 가족의 의미에 대해 섬세하게 탐구하는 일본 미스터리의 여제, 우사미 마코토가 신작 <달빛이 닿는 거리>로 돌아왔다. 이야기는 평범한 여고생 미유의 삶에서 시작된다. 미유는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남자 친구는 무책임하게 등을 돌리고, 가족마저 그를 비난한다. 갑작스러운 절망과 불안 속에서 자살을 결심한 미유는 우연히 비영리 단체를 마주하며 ‘그린 게이블스’라는 게스트하우스로 향하게 된다. 그곳에 사는 남매는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고,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진 아이들을 위탁 보호하며 살아가고 있다. 남매 역시 어린 시절의 학대와 상실, 정체성의 혼란을 안고 있지만, 자신보다 더 힘든 아이들을 보듬으며 상처를 치유해 간다. 미유는 그런 삶의 방식에 회의적이었지만, 점차 혼자 짊어지던 삶의 무게를 나누고 위로받으며 가족의 의미를 다시 써 내려간다. 그렇게 절망의 끝자락에 서 있던 미유는 상처를 극복하고, 사랑을 건넬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다. 우사미 마코토가 묘사하는 위탁 가정, 미혼모, 아동 학대, 그리고 가난은 그저소설 속 인물이 마주한 상황으로 그치지 않고, 이것이 곧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습으로 무겁게 각인된다. 그리고 작가는 더 나아가 개인과 사회의 고통이 이토록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오히려 우리는 연대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불어넣는다. 짙은 어둠이 바라는 희망과, 그 빛이 모여 어둠을 뚫고 그들에게 가닿는 순간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꼭 돈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 건 아니야. 혼자 있으면 너무 외로우니 남자를 따라가 버리는 거야.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다정하게 대해 주니까. 그리고 누군가가 곁에 붙어 있으면 따뜻하잖아.” 그런 속내를 털어놓는 아이도 있었다. 밤거리를 떠도는 소녀들을 ‘비행 청소년’이라고 싸잡아 부르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그런 복잡하고도 섬세한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