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튀어나온 군살 없이 납작한 배, 탄탄하게 새겨진 복근, 매끈한 옆구리 라인, 잡티 하나 없는 피부, 완벽히 정돈된 메이크업. 오랫동안 관습처럼 이어져온 미의 기준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마르고 잘 가꿔진 몸이 자신감의 상징이었다면, 지금은 자연스러운 라인과 무보정 실루엣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해방감을 표현하는 추세. 2025 코첼라 밸리 뮤직 앤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에서 제니는 복부가 훤히 드러나는 미드리프(midriff) 룩으로 쿨한 존재감을 과시했고, 리한나는 만삭의 배를 과감히 드러내며 하나의 자기표현 방식을 보여줬다. 이런 변화는 메이크업도 마찬가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회가 만든 미의 기준을 따라가던 시대는 지났고, ‘나’를 위한 뷰티가 주목받고 있다. 헝클어진 헤어스타일과 번진 듯한 아이 메이크업, 구겨진 티셔츠 등 겉으로는 무심해 보이지만 오히려 자유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스타일에 대중은 열광하고 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SNS가 있다. 틱톡에서는 #real body, #normal body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보정 없이 날것 그대로의 보디를 보여주는 영상이 화제다. 필터는 벗어던진 채 셀룰라이트, 흉터, 옆구리 살, 뱃살 등 그동안 감춰야 할 대상으로 여기던 몸의 요소들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디테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탄탄한 복근보다는 살짝 말랑한 배, 볼록한 뱃살이 더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평과 함께 말이다. 셀럽들도 리얼 보디를 보여주며 이 흐름에 힘을 실었다. 수키 워터하우스와 에밀리 라타이코프스키는 출산 후 변화한 체형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크롭트 톱과 로라이즈 룩으로 당당하게 대중 앞에 선 모습. 플로렌스 퓨와 셀레나 고메즈 역시 ‘지금 이대로의 몸이 좋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기보다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싶은 마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해방감으로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나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메이크업 역시 ‘나를 위한 가꾸기’로 인식이 바뀌었다. 한때는 주근깨나 기미를 가려야 할 결점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그런 부분조차 개성으로 인식하는 시대. 주근깨는 피부 표현의 하나로 보고 되레 메이크업으로 강조하기도 한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오랫동안 클린 걸 뷰티가 큰 지지를 얻으며 뷰티 신을 지배해왔는데, 그 판도가 메시 걸 뷰티로 바뀌고 있다. 무결점 메이크업으로 깨끗하게 잘 가꾼 모습을 나타내는 클린 걸 뷰티와 달리, 메시 걸 뷰티는 흐트러지고 러프한 느낌을 강조한다. “메시 걸 뷰티는 스모키 메이크업, 그런지 메이크업의 연장선이지만 이들보다 덜 연출된 듯 힘을 뺀 느낌이 포인트예요. 눈두덩이에 바른 섀도와 마스카라를 손가락으로 쓱쓱 문지르고 입술은 일부러 지워진 것처럼 연출하면 이 느낌을 극대화할 수 있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장해인이 전하는 메시 걸 뷰티 팁을 참고하자. 이런 무질서한 미를 이끈 대표 인물로는 찰리 XCX가 있다. 2024년 발표한 찰리의 앨범 이 큰 인기를 얻으며 그의 스타일이 젠지 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번지고 뭉개진 메이크업, 땀에 젖은 듯 정돈되지 않은 스타일은 그의 앨범 제목에서 영감 받은 브랫 코어(brat core)라는 키워드를 탄생시켰다. 이 키워드는 단순한 스타일 트렌드를 넘어 지금 젠지 세대가 겪는 감정, 사회적 프레임에 대한 피로와 반항의 정서가 응축된 문화적 반응으로 볼 수 있다. 오랫동안 뷰티가 집중한 ‘예쁘게 보이는 나’는 더 이상 지금 젊은 세대에 받아들여지지 않고 피로감만 줄 뿐. 롤라 영의 히트곡 ‘Messy’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무질서한 외모뿐만 아니라 완벽하지 않은 나, 자기 수용을 솔직하게 가사에 녹이며 이 시대 여성들의 해방감을 표현하는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이전에도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에는 에이미 와인하우스, 코트니 러브, 케이트 모스가, 2000년대는 에이브릴 라빈, 린제이 로한, 케샤가 있었다. 무너진 글램, 눈 밑이 시커멓게 번진 아이 메이크업, 헝클어진 헤어로 ‘예쁘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같지만, 불안정성과 자기 파괴성이 뒤따랐다. 스마트폰 이전 시대라 파파라치 문화가 정점을 이루며 스캔들을 상품처럼 소비하던 시대였다. 알코올중독, 사생활 등이 원치 않게 공개되면서 수동적인 프레이밍이 덧씌워지던 때, 이런 스타일은 존중받기보다 무너짐의 서사로 소비된 측면이 컸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면서 지금은 본인이 주체적으로 연출하고 드러내는 자세로 변화했다. 이런 움직임이 메시 걸 뷰티, 브랫 코어 등으로 통제되지 않는, 가감 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솔직한 미학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정제되고 잘 가꿔진 뷰티가 제안하는 전형적인 미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나만의 방식대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앞서 언급한 리얼 보디 챌린지, 메시 걸 뷰티, 브랫 코어 등 지금 뜨고 있는 뷰티 키워드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나를 존중하는 자세다.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기보다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싶은 마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해방감으로 더 이상 애쓰지 않아도 되는 순간,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나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