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빛나는 예술은 한 사람의 마음속 어둠을, 삶의 그늘을 밝혀주는 힘이 있다.
캔버스에 스며든 광채, 음악의 반짝이는 선율, 영화와 책에 담긴 눈부신 서사까지.
마리끌레르 피처 에디터 4인이 각자의 일상에서 그러모은 빛의 아름다운 면면.

마이클 리키오 밍 히 호 MICHAEL RIKIO MING HEE HO

마이클 리키오 밍 히 호 MICHAEL RIKIO MING HEE HO
Michael Rikio Ming Hee Ho, ‘and the sum of its parts’, Acrylic on cotton canvas panel, 33.5×28cm, 2025.
Courtesy of the Artist and sangheeut

지난 4월의 아트부산, 크고 화려한 작품으로 기세를 떨치는 많은 갤러리 사이에서 상히읗 갤러리가 마련한 솔로 부스는 어쩐지 담소했다. 가로세로 30cm 내외의 작은 작품들이 부유하듯 듬성듬성 놓인 이 부스는 존재를 외치기보다 조용하게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듯한 태도로 자리하고 있었고, 나는 그 은은한 존재감에 이끌려 작가 마이클 리키오 밍 히 호의 그림들을 살피게 됐다. 어디든 다른 곳에 있고 싶은 막연한 갈망을 담은 이상화된 풍경 위에 늦은 밤 보내지 못한 문자메시지, 끝내 전해지지 않은 편지, 너무 작게 속삭여 아무도 듣지 못한 작가의 문장이 더해진 작품들은 보이는 시이자 읽히는 그림이었다. 불안정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슬픔과 환멸을 조심스럽게 감싸안는 작가의 방식은 작지만 깊은 빛을 품고 있었다. 이에 매료되어 한참을 들여다보았고, 떠날 때가 되어서야 전시의 제목을 알게 됐다. <내가 모는 차의 이름은 다정함. 너는 그 옆자리에 있고, 우리는 천천히 길을 달리며 엽서를 보내고 사랑의 편지를 쓸 거야>.

미야케 쇼 <와일드 투어>

<와일드 투어>

지역의 식물들을 채집하고 관찰하는 워크숍에 참여하는 대학생 인턴 ‘우메’, 그리고 그를 따르는 중학생 ‘타케’와 ‘슌’. 세 사람은 산으로, 들로 다니며 식물을 발견하고 수집하고 탐구하며 서로를,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발견한다. 식물 채집도,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것도 서툴고 어색하지만, 그래서 모든 발견의 순간이 더 귀하고 사랑스럽게 빛을 발한다. 미야케 쇼 감독은 탐구와 발견의 순간을 담고 싶다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덧붙였다. “누군가와 함께 탐구의 시간을 거친다는 것은 나와 그 사람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기도 해요. 내가 놓친 것을 친구가 발견하고 알려주는 것 같은 거죠. 그건 그 친구와 새롭게 다시 만나게 되는 경험이기도 해요. ‘너에게는 이런 감성이 있었구나’ 하는 놀람과 존경의 마음, 그리고 거기서 사랑을 느끼기도 하죠.”

박참새 산문집 <탁월하게 서글픈 자의식>

마음산책

“나는 슬픈 사람이다. 이유 없이 슬픈 사람이다. 그 어떤 시절도 사람도 내가 슬픈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모든 슬픔에 이유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아주 많은 슬픔이 이유 없는 채로 우리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갈 곳 잃은 슬픔들이 매일매일 산책한다.”

슬프다. 모르겠다. 잘할 수 없다. 막막함, 고단함, 서글픔이 점철된 문장들이 이어짐에도 이상하게 그대로 침잠해버리진 않겠다, 놓아버리진 않겠다는 믿음이 생긴다. 자신의 낡아진 마음을 이토록 투명하고, 탁월하게 고백하는 이에게서 수면 위의 빛을 향해 올라가는 기운이 느껴진다. 어둠 속에서 빛이 가장 선명하게 보이듯, “넘실대는 서글픔” 안에 머무는 문장 속에서 외려 추동의 빛을 발견할 수 있었다.

로드 <Virgin>

유니버셜 뮤직

‘Meet me in the park. Tonight 7 p.m. – x x’ 갑작스러운 예고와 함께 뉴욕 워싱턴 스퀘어 파크에 로드(Lorde)가 등장했다. 경찰의 제재로 오후 7시가 아닌, 9시에 시작된 게릴라 공연. 비키니 톱에 흰 셔츠를 걸친 로드는 4년 만에 선보이는 싱글 ‘What Was That’을 틀고 마구잡이로 춤을 췄다. 정말 그랬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아니하고 닥치는 대로 마구 하는 춤 혹은 행위 어쩌면 절규에 가까운 몸짓을 보고 또 봤다. 한없이 자유로워서 빛이 나는 그가, 그의 새 음악이 반가웠다. 그리고 두 달 뒤 ‘What Was That’을 포함해 11곡을 채운 정규 앨범 <Virgin>이 발매되었을 때, 비로소 그날의 퍼포먼스가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 알게 됐다. 그는 이번 앨범의 메시지를 ‘해방’이라 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 자신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것, 그게 모두에게 중요하다고 믿는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