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백8번째를 맞은 피티 워모, 이름하여 피티 워모 108(PITTI UOMO 108)이 열리는 이탈리아 피렌체 포르테차 다 바소(Fortezza da Basso)의 중심부에는 바이크를 타는 사람 형상의 거대한 조형물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었다. 이번 피티 워모 108의 테마는 다름 아닌 ‘바이크(Bike)’. 이는 바이크 문화에 존중과 경의를 표하고, 클래식부터 스트리트 웨어, 테크니컬 웨어 등 다양한 남성 스타일을 폭넓게 연결하고 소통하겠다는 지향점을 담았다. 그리하여 무려 7백40개의 브랜드를 피렌체에 집결시켰고, 조형물 위 자전거를 타는 역동적인 바이커의 형상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메디치 가문 소유의 고택 빌라 메디체아 델라 페트라이아의 정원에서 펼쳐진 옴므 플리셰 이세이 미야케 컬렉션. 요정 같은 분위기를 더한 헤드피스가 어우러진 서정적인 룩을 선보였다.

이번 피티 워모 108은 새롭게 재해석한 바이크 정신을 기반으로 시작한 만큼 눈에 띄는 변화가 많았다. 무엇보다 클래식과 스트리트, 아웃도어 등 피티 워모가 꾸준히 발전시켜온 영역을 넘어서서 보다 영하고 팝한 브랜드와 협업한 결과물을 만날 수 있었다. 첫 번째는 퍼렐 윌리엄스가 NIGOⓇ와 협업해 만든 브랜드 빌리어네어 보이스 클럽의 하위 브랜드인 아이스크림(ICECREAM)! 블록 코어 스타일링에 적합한 유니폼 톱부터 위트 있는 프린트, 익살맞은 캐릭터 참이 달린 액세서리 등이 브랜드를 상징하는 거대한 아이스크림콘 장식처럼 경쾌하고 청량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두 번째는 게스 진스 × 히스테릭 글래머의 협업 예고! 게스 진스 부스에 들어가자마자 눈에 띈 두 브랜드의 협업 결과물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아직 어디에도 공개하지 않은 따끈따끈한 두 브랜드의 협업 제품을 미리 볼 수 있는 행운을 얻다니! 웨어러블한 게스 진스의 실루엣에 히스테릭 글래머의 아이덴티티를 덧입힌 센슈얼한 디자인이 주를 이뤘는데, 피티 워모에서 잘파 세대를 위한 협업을 볼 수 있어 더욱더 새롭고 신선하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이번 피티 워모 108은 그간 쉽게 보기 어려웠던 한국 패션 브랜드를 만날 수 있어 더욱 특별했다. 바로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 8개가 모인 부스, ‘코드 코리아(Code Korea)’! 아시아의 서브컬처를 중심으로 스트리트웨어를 전개하는 아조바이아조(AJOBYAJO)부터 평범한 사람들의 각기 다른 특별함을 패션으로 담아내겠다는 포부를 가진 디자이너 장형철이 이끄는 오디너리피플(Ordinary People), 로맨틱한 무드를 기반으로 패션부터 홈 라인까지 제안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오키오 라운지(OKIIO LOUNGE), 슈즈 디자이너 이서정과 수제화 장인 김한준이 만나 편안함이 깃든 아름다운 슈즈를 만드는 피노아친퀘(Finoacinque), 카툰 아티스트 만지의 그림으로 독창적인 디자인을 완성하는 만지 스튜디오(MAN.G STU:DIO), 리사이클 원단을 사용하며 동양의 미를 재해석해 섬세하게 바느질한 옷을 선보이는 자고류(Jagoryu), 해체주의적 디자인을 모던하게 재해석하는 발로렌(Valoren), 버려진 페트병과 재고 원단을 업사이클링해 타임리스 의류를 제작하는 몽세누(Montsenu)까지. 코드 코리아 외에도 한국 브랜드 최초로 루이자비아로마와 협업해 프레젠테이션과 팝업을 진행한 잉크(EENK)도 있었다. GOT7의 영재도 피렌체를 찾아 잉크와 루이자비아로마의 협업을 축하했다. 이처럼 각양각색의 한국 브랜드가 피렌체에 모인 전 세계의 프레스들을 만나고 소통하며 K-패션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보여줬다.

젠더리스 실루엣과 독창적인 디테일이 돋보이는 2026 S/S 시즌을 제안한 니콜로 파스콸레티 컬렉션 쇼 현장.

피티 워모 기간 중 가장 주목받으며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게스트 디자이너들의 쇼라 할 수 있다. 그 시작을 알린 첫 번째 게스트 디자이너는 바로 옴므 플리셰 이세이 미야케(Homme Plissé Issey Miyake). 컬렉션은 메디치 가문 소유의 고택 빌라 메디체아 델라 페트라이아(Villa Medicea della Petraia)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펼쳐졌다. 디자이너는 붓의 다양한 터치에서 영감 받은 디테일을 중심으로 컬렉션을 선보였다. 붓을 액세서리처럼 꽂거나 그림의 붓질을 옮겨놓은 듯한 아티스틱한 헤드피스는 숲에서 튀어나온 요정 같던 모델들의 동화적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켰다. 컬렉션의 전반적인 실루엣은 구조적이지만 플리츠 특유의 유연함이 돋보였는데, 재킷, 팬츠, 베스트, 허리 장식, 백을 넘나들며 당장 입어보고 싶을 만큼 편안한 실루엣과 감각적인 컬러 매치로 모두를 사로잡았다. 쇼 시작 전 고택 안에서 볼 수 있었던 브랜드의 전시 <Amid Impasto of Horizons>도 빼놓을 수 없었는데, ‘컨셉트’를 ‘의류’로 승화해가는 프로세스를 전시로 구현해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고택 안팎에 이탈리아의 다양한 도시를 찾아가 개발한 소재들을 전시한 것도 흥미로웠는데, 특유의 평면적인 옷과 메디치 가문의 숨결이 담긴 르네상스 시대의 조우를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 게스트 디자이너는 젠더리스 실루엣을 중심으로 컬렉션을 전개하는 니콜로 파스콸레티(Niccolò Pasqualetti). 이번 시즌에는 끊임없이 변주되는 디테일에 집중했다. 어깨 라인에 컷아웃 디테일을 더한 판초부터 지퍼로 변형할 수 있는 치마바지, 셔츠와 슬리브리스 톱을 결합한 톱, 보디수트 이너와 시스루 톱의 조화, 모듈식 주얼리 등이 그 예다. 착용자가 관습에 갇히지 않고 더욱 다양한 페르소나를 갖길 바란다는 디자이너의 의도를 섬세히 반영한 룩의 향연이었다.

지난 6월 16일부터 19일까지, 4일간 펼쳐진 피티 워모 108은 ‘바이크’라는 주제로 이 거대한 패션 월드의 보이지 않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온전히 나의 힘으로 페달을 밟고, 속도를 조절하고, 궤적을 제어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장치, 발명된 그 순간부터 나와 우리라는 작은 세계부터 다양한 문화의 교류까지 끊임없이 연결 고리의 역할을 수행해온 자전거처럼 말이다. 어쩌면 피티 워모는 이 행사를 주최해온 지난 54년간 패션과 패션을 잇는 자전거 역할을 했는지도 모른다. 패션에 애정을 가진 이들을 소통하게 하고, 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선보일 수 있는 가장 동시대적인 자리를 꾸준히 만들어왔으니 말이다. 이곳 피렌체의 피티 워모의 요새 안에서 사흘을 보내며 패션이라는 이름 아래 간직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을 그 어느 때보다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