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신념 하나로 불구덩이에 뛰어든 한 사람의 이야기.
사실은 그의 앞과 뒤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이야기.
일인극 <프리마 파시>에 뛰어든 세 배우 이자람, 김신록, 차지연이 붙잡고 있는 것들.

김신록 레더 트렌치코트와 팬츠 모두 Loewe, 이어링 mi0, 링 Poery.
차지연 아우터 DOUCAN, 이너 톱과 팬츠 모두 YCH.

이자람 Lee Ja Ram
90페이지에 달하는 <프리마 파시>의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을 받았나?
1막을 읽을 때는 재밌다, 좋다, 잘 쓰였다, 무조건 해야겠다. 그러다가 2막까지 다 읽고 나서는 무게가 어마어마하다, 하려면 잘해야 되겠구나, 내가 자격은 있나? 그럼에도 하고 싶다. 그리고선 ‘일단 고’.
무엇이 ‘일단 고’를 외치게 만든 건가?
작가 수지 밀러가 그린 ‘테사’는 길이 험준한 걸 알고도 몸이 부서져라 뛰어가는, 기꺼이 자기 한 몸 던지는 사람이다. 다만 혼자가 아닌 채로. 대본을 읽으며 울림이 아주 컸던 문장이 있다. “내 앞에 다녀간 모든 여자들을 봐. 그리고 내 뒤에 오게 될 여자들을 봐.” 그러니까 ‘테사’는 자신의 앞뒤로 이어지는 끈을 쥔 채로 불구덩이 속에 있는 자신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 그리고 자식의 자식까지 이어질 무언가를 잡고 있는 지금의 자신이 나아가는 방식을 전하는 이야기. 이런 유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럼 <프리마 파시>라는 불구덩이에 뛰어든 배우는 무엇을 잡고 있는지 묻고 싶다.
어쩔 수 없이, 결국은 나를 붙잡고 싸우는 일인 것 같다. 나라는 사람이 살면서 지금까지 쌓아온 것, 그로 인해 나에게 따라 붙는 일종의 호평들이 있지 않나. 이를테면 괜찮은 사람이라거나 단단한 사람이라거나. 그게 나를 방어하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모든 작업이 그렇지만, 특히 일인극이나 판소리처럼 무대에서 혼자 하나의 이야기를 뚫고 가야 하는 장르는 그 방어기제를 까고 뒤집어서 들어가는 일인 것 같다. <프리마 파시>의 테사는 누구보다 법을 꿰뚫고 있던 변호사에서 어느 날 성폭행 피해자가 되어 진실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런 변호사, 여성, 한 인간을 만나기 위해선 적당히 외면하며 안전한 길 위에 있던 나라는 사람을 깨고 열어봐야만 한다. 나 자신을 직면하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새로이 건져 올려야만 테사로서 잘 서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모르겠다. 두렵다. 추상적으로 멋있게 말했지만 실은 들어가기 싫고, 바닥 치기 싫고, 그 괴로움을 겪기 싫고, 나는 아니었으면 좋겠고, 그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렇지만 들어왔으니 가야만 하는 나와의 분투.
공연 한 달 전의 마음이 그렇다면, 당일엔 어떤 마음일까? 첫 공연 하는 날 무대에 오르기 직전을 상상해보자.
도망가고 싶을 것 같은데.(웃음) 그런데 나는 항상 그랬다. 단 한 번도 떨리지 않은 적이 없고, 단 한 번도 뒤돌아서 나가고 싶지 않은 적이 없다. 상상하니까 벌써 괴롭다. 내가 진짜 할 수 있을까? 판소리도 아니고, 잠시 나왔다 들어가는 역할도 아닌데.
무려 일인극이다.
그런데 신기한 건 무대에 오르는 순간 탁 하고 스위치가 켜지는 느낌이 든다. 관객을 보면 두려움, 괴로움, 떨림 이런 게 삽시간에 사라진다. 그래서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을 삭제하고, 바로 무대면 좋을 텐데 싶다.(웃음)
김신록 배우와 나눈 인터뷰 ‘배우가 만난 배우’에서 “내 무대는 결국 내가 홀로 만드는 일”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땐 그런 생각을 하던 시기였다. <억척가>를 멈추고 <노인과 바다>를 만들기 전 치열한 시간 속에서 ‘결국 혼자잖아’라는 생각에 잠식될 때.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일인극을 하면서도 혼자라 느끼지 않는다. 같이 무대에 서진 않지만, 같은 인물을 파고드는 동료 (김)신록과 (차)지연이 있고, 제작사 식구들과 각 파트별 스태프까지. 나는 지금 그들에게 기대어 테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무대에 올라가면 관객이 그들의 역할을 해줄 테고. 그래서 외로울 게 없다.
이자람, 김신록, 차지연. 같은 역할의 캐스트 라인업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각기 다른 방식의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이다. 관객으로선 그래서 더 흥미롭고 기대된다. 각자의 테사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고.
진짜 너무 다르다. 신록이 굉장히 이성적으로 텍스트를 이해한다면, 지연은 완전히 본능적으로 만난다. 나는 그 둘이 섞인 버전, 약간 물 타 놓은 듯.(웃음) 두 배우의 테사를 보면, 참 자기답게 잘한다 싶다. 너무 매력적이다. 그래서 내 것도 밖에서 보고 싶다. 나의 테사엔 내가 얼마큼 묻어나는지 궁금하다. 참 신기하다.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 오히려 잘 모였다 싶고. 서로가 서로에게서 보고 배울 게 많다.
이 작품을 어떤 이에게 보여주고 싶나? 누구에게든 보여줄 수 있다면, <프리마 파시>를 선사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물론 여성 관객이 보면 연대의 힘을 얻을 수 있을 거다. 그렇지만 더불어 세대와 성별의 구분 없이 훨씬 다양한 사람들이 보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 작품은 단순히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만들어진 서사가 아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자기 덫에 스스로 걸려 넘어질 때가 있지 않나. 무엇이 발목을 잡아 넘어뜨렸을 때, 다시 딛고 일어서는 한 인간의 이야기다. 막막한 삶 앞에서 그걸 뚫고 나아가는 여정의 이야기이고.
테사를 연기하면서 계속해서 상기하는 부분이 있다면? 스스로 어떤 말을 되뇌는 중인가?
들어가되 젖어 들지 말라고 계속 말하고 있다.
굉장히 미묘하고 어려운 지점인 것 같다.
맞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빠져들지 않고, 명확하게 보고 나와 거의 건조된 상태의 테사로 무대에 서야 이야기가 관객에게 잘 닿을 거라고 생각한다. 젖어 드는 건 관객의 몫이다.

김신록 Kim Shin Rock
인터뷰를 하는 오늘로부터 첫 공연까지 약 한 달의 시간이 남았다. 준비 과정 중 어떤 단계를 지나는 중인가?
산에서 길을 헤맬 때 ‘아, 여기구나!’ 하는 순간을 제일 조심해야 한다고 하지 않나. 불과 직전에 ‘여기구나’ 했다가 ‘이 산이 아닌가벼’가 된.(웃음) 전체적으로 쌓은 것을 허물고 다시 해보는 단계인 것 같다. 연습실에 가무대 같은 게 들어오면서 실제적, 물리적으로 경험해보는 중인데, 그러고 나면 내가 맞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이 작동하지 않거나, 내 사고가 되게 편의적이었다거나, 이런 것들을 알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굳히기에 돌입하는 게 아니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늘 이 시간이 무척 어렵다. 이미 있는 미약한 거라도 굳히면서, 거기에 새로운 것을 추가해가면서 해야 안정적일 것 같은데, 그렇게 되지는 않더라. 끝까지 쌓고 허물고, 쌓고 허물다 무대를 만나게 될 것 같다.
여태 쌓아놓은 걸 미련 없이 허무는 일이 가능한가? 나라면 쉽지 않을 것 같다.
허물어도 그것의 조각들이 남아 있어서 완전히 사라지진 않는다. 물론 이를 경험적으로 이미 앎에도 놓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한번 ‘이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면 빛이 완전히 사라져서 붙들고 있을 수가 없다. 보내줘야 한다. 그 대신 걔가 어떤 씨앗은 남겨둔다. 그러면 떠나간 것들의 씨앗을 모아 다시 조합하고 배치해서 싹을 틔우는 거지. 그러니까 빨리 연습실로 가야 한다.(웃음)
지금 이렇게 배우를 붙들고 있어도 되나 싶은데.
아니다. 이런 대화를 하는 시간에도 아이디어를 얻는 것 같다.
승소만을 좇던 변호사에서 성폭행 피해자로 스스로 증언대에 오르게 된 인물, ‘테사’의 외로운 싸움. <프리마 파시>를 설명하는 간결한 문장 안에 어떤 시선과 생각이 담겨 있는지 궁금하다.
아주 훌륭한 대본이다. 구조가 선명하고 정교해 처음엔 ‘이렇게 하라는 작품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읽다 보니 엄청나게 많은 레이어가 담긴 작품이었다. 평면적으로는 ‘한 여자가 야심만만하게 살다가 성폭행 사건을 겪고 완전히 무너져서 새로운 깨달음에 다다르는 이야기’라 설명할 수 있지만, 이것이 진짜로 어떤 일인지 감지 할 수밖에 없는 말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후반부에 테사가 굉장히 새로운 관점의 발언을 하는 순간이 있다. 그게 단순히 ‘가해자들, 정신 차려라’라는 맥락이 아니라, 어떻게 발화되고 찾아지느냐에 따라서 새로운 세계까지 나아갈 수 있는 주요한 말이다. 한데 거기까지 못 나가면 ‘이 사회, 여성들에게 가혹했어’라는 식으로 끝나기 쉬운 작품이라 배우로서 고민이 많다.
파고들수록 더 깊이 빠지게 되는 작품일 것 같다. 어디까지 파고드느냐가 배우의 주요 한 과제일 것 같고.
처음 읽을 땐 젠더적 쟁점이 직접적으로 나열된 말들이 여전히 강력하고 유효하다고 믿으면서도 동시에 뭔가 찜찜한 마음이 있었다. ‘정말 이건가? 이걸로 해결이 되나?’ 싶고. 그렇다고 ‘우리 모두 용서하고 사랑해야 한다’로 갈 수도 없는 문제고.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그걸 넘어서 어떤 세계를 상상하기를 바라는 텍스트구나, 그 세계에 대한 냄새를 이 작가가 맡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상상이라는 게 막연한 이야기라기보다 잠재적 실제라고 해야 할까? 어떤 유의 상상은 정말 바라는 세계를 불러오기도 한다는 것을 나도, 관객도 무대 위에서 감각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파고드는 중인데…. ‘대사나 외워라’ 이런 마음과(웃음) 진짜 중요한 게 무엇인지 찾고자 하는 마음이 경합하고 있다. 어쨌든 <프리마 파시>가 가고자 하는 데까지 가야 하고, 가고 싶다. 그래야 지금 시대에 유의미한 이야기로 존재할 수 있을 것 같다.
듣는 것만으로도 고되고 어려운 작품에 도전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이 배우를 기꺼이 감내하고 무대에 오르게 만든 건가?
그래서 호되게 당하고 있긴 한데.(웃음) 예전에 조승우 선배님의 <햄릿>을 보고 너무 놀란 기억이 있다. “연기에는 정답도 없고, 잘하고 못하는 것도 없다.” 늘 이렇게 말하고 믿었는데, 정말 ‘잘’하시더라. 진폭이 엄청 난 거다. 뮤지컬의 한 장면인 양 “아버지!” 하고 외치다가, 어떤 순간은 영화 액션 신 찍는 것처럼 실제로 몸을 구사하고, 또 어떤 순간은 드라마처럼 상황을 전개시키고. 다양한 매체를 두루 잘 경험하고 알아온 배우가 무기를 막 돌려쓰면서 <햄릿>이라는 작품을 통해 무엇인가를 전달하는데, 나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더라. 내가 가진 무기를 점검하고, 잘 사용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세계를 아주 유려하게 표현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 거다. 그리고 <프리마 파시>가 내게 그런 도전과 훈련이 가능한, 되게 좋은 작품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관객으로서 <프리마 파시>가 흥미로운 지점은 일인극이라는 점, 그리고 이자람, 김신록, 차지연이라는 캐스트 라인업이다. 각기 다른 영역에서 내공을 축적한 세 배우가 어떤 식으로 자신만의 테사를 선보일지 기대가 크다.
판소리, 뮤지컬, 영화와 드라마. 3명이 완전히 다른 매체에서 오지 않았나. 그게 <프리마 파시>의 세계관과도 잘 맞는다. 캐스트가 여럿이어도, 보통은 비슷하게 가져가는 지점이 꽤 많다. 그런데 이 작품이 하고자 하는 얘기 중 하나가 모든 것이 매끈한 공통성의 세계에 ‘그것이 가능한가? 유효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고, 그로 인해 같은 역할을 맡았음에도 우리에게 허용되는 면이 넓어지고 있다. 우리도 처음에는 ‘말이나 동선을 더 맞춰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조심스러웠는데, 연출이나 제작 팀이 논의 과정에서 ‘차라리 조명을 넓게 써서 배우들에게 자유를 주자’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 덕분에 배우들은 자기만의 방법론으로 텍스트와 만나는 중이다. 두 배우가 진짜 멋있다. 어떤 부분은 존경스러울 정도로. 그렇다고 나는 그들을 따라 할 수 없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자신을 마주 보게 된다. 저들이 있기 때문에 ‘너는 누구니? 너는 무엇을 가지고 있니?’ 묻게 되고, 오롯이 나의 역량과 경험과 이론으로 뚫어낼 수밖에 없다.
첫 공연 하는 날 무대에 오르기 직전을 상상해보자. 어떤 마음일 것 같나?
대학원에 다닐 때 교수님이 하신 말이 떠오른다. “그래도 막은 오릅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섭겠나. 그럼에도 암전이 되면 무대에 올라가 설 수밖에 없다. 다만 그래야 한다는 사실이 주는 단단한 힘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무대에 서는 시간을 좋아한다.
조금 이른 질문일 수도 있겠다. <프리마 파시>를 함으로써 무엇을 얻었나?
대본을 새롭게 보려는 눈과 힘. 어떤 것을 깊이, 오래, 온전히, 온 힘을 다해 들여다보는 훈련의 시간.
그리고 무수한 질문들도. 작품을 하면서 이토록 많은 질문을 남기는 배우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맞다. 질문만이 남았다, 질문 많이.(웃음)

차지연 Cha Ji Yeon
배우로서 스스로를 ‘불나방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정이 얼마나 고되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이게 맞다. 내가 가야 하는 방향이다’ 싶으면 나는 그냥 달려든다. 지금 이 시기에, 그 작품이 나에게 온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이유를 알고 싶어서라도 뛰어든다.
<프리마 파시>에도 같은 마음으로 뛰어든 건가?
맞다. 몇 년 전에 한 관계자를 통해 “<프리마 파시>라는 작품이 있는데, 너와 잘 어울릴 것 같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이 작품이 한국에서 초연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쇼노트에 직접 연락을 했다. 너무 하고 싶다고. 나의 눈과 소리, 몸짓으로 이 이야기를 감당해내고 싶다고. 문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노크를 한 거다.(웃음)
‘테사’에게도 비슷한 모습이 있다. 험하고 고된 싸움 앞에서 ‘무언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진 순간, 가열하게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알면 알수록 테사와 내가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더 잘해내고 싶다. 내가 가진 힘을 통해 테사의 이야기가 더 빛을 발했으면 좋겠고. 2막에서 테사가 처절하게 무너지고, 부서지고, 쓰러지는데, 그 부분을 할 때마다 나라는 사람도 같이 무너지는 것만 같고 엄청난 소진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정확히 도달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부서져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가장 마음에 남는 테사의 말은 무엇인가?
<프리마 파시>라는 작품을 관통하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내 앞에 다녀간 모든 여자들을 봐. 그리고 내 뒤에 올 여자들을 봐.” 나를 포함해 세 배우 모두 사랑하는 대사다. 테사는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을 깨닫고, 그래서 자신의 투쟁이 변화를 만들기 어려울 거라는 걸 짐작하게 된다. 그럼에도 뛰어들게 되는 동력에 대한 말이다. 폭발적인 충돌로 우주가 확장되듯이, 이 모든 것은 나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훨씬 더 넓고 깊은 세계를 그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말이기도 하고. 어쩌면 이건 범우주적인 세계를 가늠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캐스트 라인업이 굉장히 흥미롭다. 이자람의 테사, 김신록의 테사와 다른 차지연의 테사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신록 배우는 어떤 부분에서든 가감 없이 대범하게 시도한다. 반대로 자람 언니는 무척 차분해 보이지만, 그 안을 뒤흔드는 소용돌이가 느껴진다. 나는 그 소용돌이를 다 드러내는 편이고.(웃음) 아마 나의 테사는 그래서 좀 강렬할 것 같다. 나의 승부사적 기질과 매서운 모습, 반대로 부끄러워하는 모습, 그리고 슬픔과 절망. 그런 것들을 보다 솔직하게 표현하려 한다. 셋이 워낙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유일한 공통점이라면, 치열하게 무대에서 투쟁한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치열한 투쟁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어떤 작품에서든 진심으로, 치열하게 사력을 다하는건 차지연의 무대에서 빠지지 않는 힘이다.
“진심만으로 모든 걸 다 표현할 수 없어. 그것에는 한계가 있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내가 무대에 설 수 있는 이유는 매 작품, 모든 순간을 진실되게 만났고, 진심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게 무대 위에서 가장 강력하게 발휘되는 나의 무기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고통스럽기도 하고, 지독하게 외롭기도 하지만 진심을 다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나 싶다. 그래서 20년간 무대에 올랐지만, ‘이 정도면 됐지, 나도 이제는 좀 여유를 갖자’ 이런 마음을 가질 수가 없다. 다 했다 싶어도 그 안에서 찾아 낼 게 분명히 있고, 나는 또 그걸 찾아내야만 하는 사람이다.
첫 공연 하는 날 무대에 오르기 직전을 상상해보자. 어떤 마음일 것 같나?
무슨 일이 있어도 간다. 끝까지 간다. 내 모든 것을 다 열고, 가장 솔직하게. 그렇게 무대에 올라 나의 모든 부분이 테사가 되길 바란다. 내 손이 어디를 짚고 있으며, 눈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고, 목소리는 어떻게 내고, 걸음은 어떠하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주 세밀한 부분에서조차 테사로 기능하기 위해 나를 다 내어줄 거다.
무대를 마친 후를 떠올려보면? 이야기를 끝낸 후 테사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이제 다 끝났어. 넌 무너지지 않았어. 멋져.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도 들린다.
맞다. <프리마 파시>의 막이 내렸을 때, 내가 듣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