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여 년간 인간의 발길이 끊기자 DMZ는 생물 다양성이 되살아난 거대한 동식물의 서식지로 변모했다.
이 역설에 주목한 <DMZ OPEN 전시: UNDO DMZ(언두 디엠지)>는 인간과 비인간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생태 공간으로서의 DMZ를 상상하며, 경계의 땅에서 시작될 회복의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한반도의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DMZ(비무장지대)는 다양한 역설을 품은 장소다. 비무장지대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완전무장한 병력과 감시초소가 배치되어 있고, 분단의 잔재지만 이곳을 흐르는 강과 산맥은 남북을 물리적으로 잇는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역설은 70여 년간 민간인의 출입이 제한되면서 황폐하던 땅에 희귀 생물과 멸종위기종이 찾아오며 생명력이 깃든 생태의 보고로 거듭났다는 점일 것이다. 2012년 철원의 DMZ 접경 지역에서 열린 첫 전시를 시작으로 어느덧 13년째 이어져온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가 올해 주목하는 주제도 바로 이러한 역설, 인간의 부재가 만든 비무장지대의 생태 풍경이다.

사진: 이의록. 경기도 및 작가 제공
파주 일대에서 지난 8월 11일 개막한 <DMZ OPEN 전시: UNDO DMZ(언두 디엠지)>를 찾아 그 풍경을 직접 목도했다. 풍요로운 생태 공간으로서 DMZ가 지닌 가능성을 10인의 작가가 저마다 자기만의 언어로 상상해 한 데 모은 자리였다. 전시는 출입 통제선 안쪽에 자리한 세 공간에서 펼쳐졌다. 50년간 미군 기지로 사용된 갤러리그리브스, 통제구역 내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조성한 통일촌 마을, 실향민들이 고향이 그리울 때마다 찾아오는 임진각 평화누리. DMZ를 거쳐간 이들의 기억과 역사를 겹겹이 품은 상징적 공간을 배경으로 설치, 영상, 조각, 사운드, 사진 등 다양한 매체로 구현한 작업물을 차례로 눈에 담았다. 작품 이외에 다른 요소가 감상에 개입할 틈이 없는 전통적인 화이트 큐브와 달리, 이 전시에서는 장소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선선한 바람과 흙냄새, 세월의 흔적이 밴 창고와 들판 역시 감상의 층위를 더해준다.

협업 제작: 짚풀 공예 명인, 이충경. 사진: 아인아 아카이브.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및 작가 제공
전시의 시작점인 갤러리그리브스에 들어서자마자 새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작가 홍영인은 사운드 설치 작품 ‘우연한 낙원’에서 처음 DMZ에서 두루미를 마주한 경험을 바탕으로 쓴 독백을 직접 낭독하고, 그 음성을 두루미의 울음소리로 변환해 공간 전체에 울려 퍼지도록 했다. 두루미와 작가의 목소리가 교차하는 가운데, 바닥에는 눈 덮인 들판의 두루미를 의인화해 만든 여덟 켤레의 신발이 하얀 모래 위에 놓여 있었다(‘학의 눈밭’). 해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 멸종위기종인 두루미를 오래도록 관찰해온 작가는 DMZ를 전쟁의 상흔이 아니라 “우연히 생겨난 낙원”이라 부르며, 이곳에서 다른 종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일이 수많은 비인간 존재와의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는 관점을 작업 안에 담았다.

사진: 이의록, 경기도 및 작가 제공.
이 영상 작업은 자이언트스텝의 기술 협찬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음악: 윤이상, 오보에 독주곡 ‘피리’, 녹음: 하인츠 홀리거 1977년 9월 17일, ©국제윤이상협회, 2005, CD
IYG 004. 악보: 보테앤복/ 부지앤훅스, 베를린(2025 신판). 영상 작품 출처: 김범, 〈“노란비명” 그리기〉, 2012.
싱글 채널 비디오, 31분 6초, 작가 제공
비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는 작가 양혜규의 영상 작업으로 이어졌다. 통일촌 수매 창고로 들어서자 정중앙에 자리한 거대한 스크린이 먼저 시선을 붙잡았다. ‘황색 춤’은 전쟁 이후의 강원도 철원이라는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꿀벌 ‘봉희’의 시점에서 바라본 인간세계를 그린 애니메이션이다. 기후 변화로 생존을 위협받는 꿀벌을 연구해온 작가는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벌인 황색비 논쟁에 주목했다. 전장에서 관측된 노란 물질을 두고 미국 정부는 소련 세력이 생화학 무기를 동원한 증거라 주장했고, 일부 과학자들이 이를 벌의 집단 배설물이라 반박하며 벌어진 논쟁이다. “노란 비는 전쟁 무기가 아니다. 황색비는 그냥 자연의 일부다. 우리의 배설이다.” 스크린에서 퍼져 나오는 꿀벌 봉희의 내레이션을 듣는 동안, 전쟁의 역사 속에서 정치적 갈등에 매몰된 인류가 얼마나 왜곡된 관점으로 자연을 이해해왔는지 새삼 실감했다.

마지막 동선은 임진각 평화누리였다. 탁 트인 지평선을 배경으로, 원성원의 대형 프린트 ‘황금털을 가진 멧돼지’ 앞에 섰다. 민통선 내부의 일상적인 풍경 위로 철책 너머 북한 서쪽 바다와 DMZ의 들판을 콜라주해 하나의 파노라마로 구성한 이 작품은, 지장보살이 황금 털을 가진 멧돼지로 환생해 스스로 사냥꾼의 화살을 맞고 원한의 고리를 끊었다는 신라 시대 석대암 설화를 모티프로 삼았다. “남한과 북한의 상황도 어쩌면 이 설화와 비슷하지 않을까.” 작품 앞에서 이렇게 말문을 연 작가는 “세대를 거듭하며 깊어진 남북 간의 깊은 감정의 골을 누군가 먼저 매듭지어주길, 끝내 두 땅이 용서와 화합을 이뤄내는 순간이 도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작업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전시 감상의 막바지에 이르러 전시 제목에 담긴 ‘언두(undo)’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본다. 멈춰 선 시간을 되감고, 묶인 매듭을 풀고, 닫힌 문을 여는 일. 이는 새의 울음에 귀를 기울이고, 인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연의 의도를 서둘러 단정하지 않으며, 비인간 존재가 언제든 돌아와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남겨두는 방식으로 가능할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던 DMZ에 생명의 숨결이 되살아나는 순간을, 그 안에서 인간과 비인간 존재가 서로의 숨을 섞으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풍경을 먼저 만나고 온 듯하다. 드넓게 펼쳐진 비무장지대에서 그 가능성과 다가올 미래를 목격했다.
DMZ OPEN 전시: UNDO DMZ(언두 디엠지)
주최·주관 경기도
기간 8월 11일~10월 19일(갤러리그리브스, 파주 통일촌 마을), 8월 11일~11월 5일(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위치 파주 통일촌 마을, 갤러리그리브스,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