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키아프 서울의 성장은 ‘얼마나 커지는지’가 아닌,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로 전환되었다.
전환의 시점에서 제22대 한국화랑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성훈 회장의 과제이자 목표는 분명하다.
키아프 서울이 지속적으로 존재의 이유를 갖는 플랫폼이 되는 것.

제22대 한국화랑협회 회장으로 취임하며 ‘키아프 서울의 자생력과 경쟁력 강화’를 주요 과제로 언급하셨습니다. 이는 확장에서 질적 내실로의 전환을 선언한 올해 키아프 서울의 기조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키아프 서울이 ‘지속 가능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였습니다. 단순히 매년 열리는 아트 페어를 넘어, 한국 미술의 정체성과 잠재력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무대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기인한 거죠. 지금까지 키아프 서울은 수치적으로 매우 성공적인 성장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흐름 속에서, 이제는 외형적 확장보다는 ‘왜 이 페어가 필요한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가 중요한 시기가 된 거죠. 외형적인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한국 미술 시장이 키아프 서울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깊이 있는 프로그램과 신뢰받는 운영 구조를 만드는 것이 지금 저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이자 목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취임 후 가장 먼저 하신 일이 키아프 서울의 성장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방법 모색이었을 것 같습니다.
가장 시급했던 건 협회의 운영 구조를 안정화하고, 다양한 의견이 유기적으로 소통될 수 있는 이사진 구성이었습니다. 각 세대와 지역을 대표하는 갤러리들이 균형 있게 협회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조를 재정비한 것이죠. 이는 협회가 보다 유연하고 미래지향적인 조직으로 변화해가는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중장기적 관점에서 화랑협회와 키아프 서울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한국 미술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국 미술 시장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한 전략적 방향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고요. 구체적으로는 키아프 서울이 단순히 작품을 사고파는 장을 넘어 ‘예술을 경험하고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써 어떤 콘텐츠와 구조를 갖춰야 하는지, 대중에게 예술의 가치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합니다. 지금의 논의는 향후 키아프 서울의 기획과 운영, 협회 사업 전반에 걸쳐 점진적으로 반영해나갈 것입니다.
올해의 주제는 ‘공진’입니다. 아트 페어에서 일으킬 수 있는 공진, 공명의 힘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공진’은 단지 소리의 울림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서로의 파장을 인식하고 그 인식을 통해 공명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미술 시장은 갤러리, 작가, 컬렉터, 기관, 대중이 서로 연결되며 공존하는 생태계입니다. 각자의 진동이 단절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때, 예술은 더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며 확장될 수 있습니다. 아트 페어에선 단기적인 거래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인 관계와 감응이 일어나는 것이 곧 공진 현상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힘이라 생각하고요.
전 세계 20여 개국, 175개 갤러리가 참여해, 작년보다 수는 줄었지만 그만큼 구성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에 집중하였습니다. 매해 갤러리 선정에 신중을 기하지만, 올해는 유독 더 큰 공을 들였다고요.
매년 그렇지만 올해는 유독 특정 작가의 작업 방향성이나 갤러리의 기획 의도를 두고 논의하는 데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어요. 논의 과정의 기준점은 ‘이 부스가 왜 지금, 서울에서 소개되어야 하는가’였습니다. 규모나 유명세보다는, 자신만의 작가군과 철학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해온 갤러리를 우선시한 것이죠. 관람객이 작품 하나하나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갤러리와 작가가 자신들의 예술적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 올해의 목표 중 하나인데, 그러기 위해 갤러리 선정과 구성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죠.
수치적인 확장보다 내실을 기하는 데에 집중하는 지금, 키아프 서울이 생각하는 성장의 의미는 이전과 달라졌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죠. 이제부터는 부스 수나 판매 성과보다는, 해외 주요 기관·컬렉터들과의 지속적인 관계 구축, 그리고 국내 작가와 갤러리들이 실질적으로 국제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연결 고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곧 성장이 될 겁니다. 아시아 미술 시장을 대표하는 플랫폼으로서 세계적인 아트 페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도 서울만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독립적인 아트 페어로 굳건히 자리하는 것이 장기적인 목표고요. 우리가 생각하는 성장의 끝은 하나의 고정된 지점이라기보다 글로벌 미술 생태계 안에서 키아프 서울이 지속적으로 존재의 이유를 갖는 플랫폼이 되는 것, 그리고 키아프 서울 내에서 한국 미술이 더 넓은 맥락으로 연결되고 해석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속 가능한 아트 페어가 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모든 것은 신뢰에서 비롯된다 생각해요. 갤러리는 작가와 작품을 믿고 출품하고, 페어는 선정한 갤러리를 믿고 장을 꾸리며, 컬렉터는 페어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구매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전시 기획과 운영이 단발적인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큐레이션과 네트워킹을 강화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올해 키아프 서울에서 관람객이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부분, 딱 한 가지만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특별전을 주목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한국과 일본의 젊은 큐레이터가 함께 기획한 공동 전시를 마련했습니다. ‘수집과 진열’이라는 주제로 미디어아트와 설치 작업을 중심으로 구성한 이번 특별전은 아트 페어에서 흔히 접하기 어려운 형식과 주제를 다루며 새로운 감각을 선사할 거라는 확신이 듭니다. 더불어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지닌 두 큐레이터의 협업은 동시대 예술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시도로, 관람객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길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금 내적으로 가장 크게 공진하고, 공명하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지금 제 마음에 가장 크게 울리는 주제는 ‘다음 세대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입니다. 미술 시장이 지속 가능하려면 신진 작가와 젊은 컬렉터, 새로운 관람층이 반드시 유입되어야 해요. 그들에게 미술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일상과 호흡할 수 있는 영역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따라서 키아프 서울 역시 앞으로도 더 다양한 콘텐츠와 프로그램, 그리고 보다 유연한 시도를 통해 예술의 대중성과 문화적 확산을 함께 추구하고자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진’의 출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