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럭셔리를 논하는 브랜드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반 발짝 앞서 나아가는 이들이 있다. 오랜 시간 예술과 조우하며 쌓아온 유산이 브랜드의 품격을 증명하는 경우가 그렇다. 개인적으로 향수의 세계에서 그런 이름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겔랑을 선택하겠다. 1853년, 창립자 피에르 파스칼 겔랑은 나폴레옹 3세와 외제니 황후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오 드 코롱 임페리얼’을 헌정했다. 황실을 상징하는 벌 문양 69개를 정성스레 새긴 이 향수는 겔랑의 아이코닉 보틀인 ‘비 보틀(Bee Bottle)’의 기원이 되었다. 이후 벌은 오직 겔랑만의 시그니처가 되었고, 예술과 장인정신을 입은 ‘익셉셔널 피스(Exceptional Piece)’ 시리즈를 통해 매해 새롭게 재해석되고 있다. 올해의 협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텍스타일 및 페이퍼 아티스트 루시 투레(Lucie Touré)와 함께했다. 이를 통해 탄생한 보틀은 사랑과 축복의 메시지를 담은 붉은 꽃과 황금빛 하트, 이를 감싸는 세 송이 미니어처 플라워가 어우러져 사랑을 약속하는 부케를 떠올리게 한다. 전 세계 단 1천7백30개 한정으로 선보이는 이 향수는, 향은 언젠가 사라질지라도 진귀한 피스가 지닌 아우라는 영원하다고 믿는 이들의 품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내게 이런 작품은 평생 환상 속에나 존재하는 꿈일지 모르지만, 촬영을 핑계로 잠시나마 감상할 수 있었으니 행운이라 해야 할까. 언젠가 내 공간도 이토록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채워지기를 꿈꾸며, 지금은 그 자태를 마음껏 즐기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본다.
<마리끌레르> 뷰티 마켓 디렉터 김경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