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진가 알렉 소스(Alec Soth)는 미국 전역의 예술대학을 찾아 예술가로서 첫걸음을 내딛는 학생들의 삶과 태도를 프레임에 담았다. 뚜렷한 목적도,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캠퍼스를 거닐던 작가는 그들이 품은 취약성과 열정을 거울 삼아 스스로의 내면을 마주했다. 젊은 예술가들에게 조언을 건네는 대신, 그들을 통해 예술의 의미를 다시 묻는 한 작가의 기록이 여기 있다.

<Advice for Young Artists>는 팬데믹 이후 2년간 미국 전역의 예술대학 25곳을 찾아 학생들의 모습을 기록한 프로젝트다. 어떤 계기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나?
미시시피강과 나이아가라폭포를 따라 여행하며 만난 사람들과 풍경을 기록한 <Sleeping by the Mississippi>와 <Niagara>처럼 특정 장소를 기반으로 한 작업을 오래도록 이어오면서 다른 방식으로 피사체와 관계 맺을 수 있는 작업에 갈증을 느끼던 시기였다. 때마침 한 패션 매거진의 의뢰를 받아 화보를 찍으며 여러 실험을 해 보게 됐고, 그 과정이 퍽 즐거웠다. 이 흐름을 개인 작업으로도 이어가고자 인물 섭외를 위해 예술대학을 찾아 갔는데, 처음 구상한 주제보다도 공간 자체가 주는 활기와 들뜬 감각에 더 마음이 이끌려 계획을 바꾸게 됐다
작업의 방향성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고민들을 거쳤나?
가장 먼저 캠퍼스에 어떻게 출입할 수 있을지 방법을 고민하다 학부생들에게 수업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교내에서 작업을 이어갈 기회를 얻었다. 일종의 교환 방식이었던 셈이다. 당시 내 안에는 “오늘날 예술가로 산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예술가라면?” 같은 질문이 자리했다. 이 질문을 품은 채 학생들의 생생한 에너지를 포착하고 싶다는 마음에만 집중해 프로젝트를 이어나갔다. 이 프로젝트가 결국 어디로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지만, 뚜렷한 목적 없이 그저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나아가려 했다.

학생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작업 방식이나 태도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나?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의 내면에는 늘 불안과 날것의 감각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그 감각의 혼재가 이상하리만치 아름답게 느껴졌다. 예술에 대한 열정을 유치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진지하게 마주하면서도, 세상을 방어적으로 대하지 않고 열려 있는 태도가 인상 깊었다. 학생들과 교류하며 새삼 깨달은 건 왜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창작을 지속하는 일이 얼마나 취약한 동시에 용기 있는 선택인가 하는 점이었다.
학생들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가까워졌는지 궁금하다. 그 과정에서 중요하게 여긴 원칙이 있었나?
스스로를 ‘방문 작가’라 소개하는 일만은 피하려 했다. 가끔씩 카메라를 들고 캠퍼스를 어슬렁거리면 학생들이 다가와 말을 걸곤 했는데, 그럴 땐 그냥 학생인 척하기도 했다.(웃음) 이런 태도가 학생들과 거리를 좁히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직접 찍은 정물 사진과 자화상도 눈에 띈다. 개인 작업은 어떤 계기로 병행하게 됐나?
한 수업에서 학생들이 돌아가며 작업을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특별할 것 없이 전형적인 자화상을 가져온 한 학생이 자신 있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태도에 깊이 감명받았다. 그날 이후 나 역시 본격적으로 내 모습을 기록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벽에 붙은 파리처럼 학생들을 조용히 지켜보는 관찰자의 위치에 머물 생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작업을 통해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실제로 대부분의 시간은 정물을 이리저리 만져보거나 새로운 장비를 실험하며 홀로 보내곤 했다. 놀라운 건 학생들의 생기 어린 시선을 빌려 피사체를 바라보니 평범한 사물들조차 감정적으로 크게 와닿았다는 사실이다.

기존에 선보인 다큐멘터리 연작들에 비해, 이번 작업에서는 촬영 방식이나 책을 엮는 방식에서 다른 형태의 접근을 시도한 듯하다. 익숙한 작업 방식을 벗어나며 새롭게 느낀 점이 있다면?
형식적 제약을 과감히 내려놓았다. 초상과 정물, 메모와 단편을 자유롭게 엮어 책의 흐름을 구성하는 방식이 오히려 해방감을 안겨줬다. 촬영할 때도 완벽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애쓰지 않았고, 사진집을 엮는 과정에서도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서사를 부여하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쌓인 사진들을 모아보니, 어느새 작업의 성격이 내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한 일기에 가까워져 있었다.

프로젝트에 임하며 예술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인 순간을 떠올려보기도 했나?
20대 초반, 모든 게 불확실하고 절박했던 시절이 자주 떠올랐다. 단순히 지나간 시간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랫동안 내 안에 결여되어 있던 순수한 열정을 다시 마주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정물 사진을 찍는 동안에는 놀라울 만큼 강렬한 몰입의 순간이 찾아왔다. 학교 구석구석을 헤집고 다니며 미완의 상태로 남겨진 조각상, 말라비틀어진 과일 등을 집어 들고 이런저런 실험을 해가며 마음껏 기록했다. 마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시절처럼,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 눈앞의 대상과 나만 남은 듯한 감각이 오랜만에 되살아났다.

이 작업에는 작가로서 여전히 자신의 정체성을 탐색하는 내밀한 속마음도 담겨 있는 듯하다. 프로젝트를 통해 당신 안에 어떤 변화가 일었는지 궁금하다.
오랜 시간 사진가로 살아오며 모든 것에 지나치게 익숙해져 카메라를 드는 일조차 무의미한 반복처럼 느껴지던 시기가 있었다.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내 작업에 대해 느끼는 익숙함과 피로감, 심지어 냉소에 가까운 감정을 이겨내야 했다. 이 프로젝트가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겸허한 마음으로, 맑은 시야를 견지한 채 작가로서 계속해서 무언가를 궁금해할 동기를 제공해준 셈이다.
오랜 시간 예술가로서 분투하는 과정에서 방향을 잃거나 조언이 필요한 순간이 있었을 것 같다. 그 시기를 헤쳐가며 마음에 품은 조언이 있나?
조언이 필요한 순간마다 주로 책에 기댔다. 그 안에는 해답이 아닌 관점을 제안하는 예술가들의 목소리가 담 겨 있었다. 특히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오래 곁에 두었다. 시인이 되고자 했던 청년 프란츠 카푸스의 질문에 릴케가 담담히, 존중 어린 태도로 답해주는 열 통의 편지 안에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을 바라보라는 권유가 담겨 있다. 유독 기억에 남는 문장이 있다. “네게 주어진 고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라.” 젊은 창작자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조언이 아닐까 싶다.

<Advice for Young Artists>라는 제목은 중견 예술가가 젊은 예술가에게 건네는 실용적 조언을 기대하게 만든다. 완성된 결과물은 이런 기대와 다소 거리가 있는 듯한데, 제목에는 어떤 의도를 담고자 했나?
농담과 자조의 의미를 섞어 지은 제목이지만, 동시에 내 진심이 담겨 있기도 하다. 책 중간중간에 “네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뭐야?(What do you want, really?)” “인내하라(Be patient.)” 같은 짤막한 문장이 적힌 포스트잇 메모들이 흩어져 있다. 그 문장들은 학생들과 대화하는 도중에, 혹은 작업자로서 위기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을 때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이다. 내가 믿는 ‘좋은 조언’이란 이런 것이다. 정해진 규범을 따르라고 지시하는 말이 아니라, 각자의 내면을 조용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열린 질문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업이 지루한 강의처럼 느껴지지 않길 바란다. 그보다는 예술대학 교정을 거닐며 생각이 자유롭게 흩어지는, 조금은 산만한 오후 같은 느낌이길 바란다. 답보다 질문을 더 많이 남긴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무언가를 결론지었다기보다는 더 많은 질문을 안고 돌아온 듯하다.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지금, 당신만의 예술을 어떤 방식으로 지속하고 확장해나가는 중인가?
이 작업은 내게 일종의 ‘초기화 버튼’ 같은 것이었다. 서툴고, 확신이 없는 상태로도 꾸준히 창작을 이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예술이란 결국 경력이나 직업이 아니라 하나의 ‘상태’임을 다시 깨닫는 계기가 됐다. 예술과 함께 살아가고, 예술을 통해 살아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금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전히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프로젝트가 당신에게 남긴 질문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떻게 사라져버린 하늘을 애도할 수 있을까? 별을 잊는다는 것은, 한때 시간과 공간과 신화를 구성했던 근원을 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기억과 문화 속에서 잊힌 존재를 되살리기 위해 사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여전히 이 질문들에 대해 뚜렷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럴 필요 또한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이 질문들과 오래도록 관계를 맺는 일이자 정해진 답안에 쉽게 안주하지 않는 태도일 것이다. 경계에 머무르고, 불확실성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유를 지속시키는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로부터 새로운 관점이 태어나고, 이해가 고정되지 않은 채 살아 있는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