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들어낸 제도 아래 형성되고 해석된 언어, 역사, 자연.
갈라 포라스-김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인위적 개념’이 지닌 한계에 주목한다.
시대의 관점, 공간의 맥락을 벗어날 때 비로소 발견할 수 있는 대상의 무한한 의미에 대하여.

갈라포라스김 국제갤러리 전시 갤러리 exhibition kukje gallery gala porras-kim
사진: MIKE VITELLI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아가면 자연스레 따르게 되는 규칙이 있다.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공간을 안내된 동선에 맞춰 관람할 것, 각 전시실이 무엇을 기준으로 나뉘어 있는지 확인할 것, 작품을 보다 깊이 감상하고 싶다면 월 라벨의 설명을 참고할 것. 하지만 이러한 기관의 보존, 수집과 분류, 해설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일까? 이 질문은 콜롬비아-한국계 미술가 갈라 포라스-김(Gala Porras-Kim)이 꾸준히 던지는 화두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드로잉, 조각, 설치 등 다양한 형태의 작업을 이어가며 언어와 역사 등이 사회적·정치적 맥락 아래 형성되는 방식을 탐색해왔다. 남한과 북한의 국보를 번호순으로 정리해 국가의 상태가 문화재 선정에 반영되는 양상을 보여주는 ‘국보 530점(530 National Treasures)’, 고창의 고인돌을 고인(故人), 세계문화유산 기구, 자연의 관점으로 그려낸 ‘세월이 남긴 고색의 무게(The weight of a patina of time)’를 비롯한 그의 작품은 인위적인 제도가 지닌 한계를 알린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9월 2일부터 10월 26일까지 국제갤러리 서울에서 열리는 개인전 <자연 형태를 담는 조건(Conditions for holding a natural form)>에서도 엿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미술관 등의 전시에 이어 또 한번 한국 관람객을 만날 작가가 이번에 주목한 개념은 ‘자연’. 곰팡이 포자의 증식, 습기로 인한 물방울 자국, 반사된 햇빛을 작업 재료로 사용한 바 있는 그는 다가오는 전시에서도 자연의 요소를 다루는 신작들을 선보인다. ‘인간이 자연에 의미를 부여하는 관습’을 시각적으로 탐구한 이번 개인전 준비를 마무리하며, 작가가 본인의 예술적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마리끌레르 코리아>에 전해왔다.

Gala Porras-Kim, ‘The weight of a patina of time’, Graphite, color pencil and encaustic on paper,
228.6×182.8cm each, 2023.
Courtesy of the artist and Commonwealth and Council

개인전 <자연 형태를 담는 조건>을 통해 오랜만에 서울을 찾아올 예정입니다. 전시 제목에 등장하는 ‘자연’은 갈라 포라스-김이 꾸준히 다뤄온 개념이죠. 작가로서 자연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사람들이 자연물을 수집하는 다양한 이유에 관심을 가져왔어요. 수집을 통해 자연에서 유래한 대상의 의미를 정하고, 이를 우리 삶과 관련된 기능으로 활용하는 일이 대상을 재정의하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게 자연의 물질 자체에 내재된 정의라기보다 인간의 기대와 욕망을 드러낸다고 느껴요. 이에 대한 탐구의 일환인 이번 국제갤러리 개인전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를 하며 의미를 부여하는 관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돌을 비롯한 자연의 요소를 소재로 한 신작들을 전시할 예정이에요.

수석(壽石) 수집가가 보유한 돌을 전시하며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나누고, 수석을 그린 드로잉도 나란히 선보인다는 소식이 흥미롭더군요. 이 외에 어떤 작품들을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자연을 조직하고 분류하는 다양한 기준을 다루는 작품들을 두 개의 공간에 나눠 전시합니다. 첫 번째 방에는 전시 공간의 습도를 기록한 이미지들이 있어요. 전시가 열리는 동안 습도계로 측정한 수치를 모아서 시각화한 작업이에요. 전시실의 환경은 보통 엄격하게 유지되지만, 이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습도의 변화는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 방은 자연과 관련한 기존의 규칙들로부터 영감 받아 ‘돌의 범주화’를 표현한 드로잉을 선보여요.

Gala Porras-Kim, ‘6 Balanced stones’, Colored pencil and Flashe on paper, 152.4×182.9cm, 2025.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Photographed by Gala Porras-Kim Studio
Gala Porras-Kim, ‘Signal (Museum of Contemporary Art, Denver 03/08/24-09/01/24)’,
Graphite on gessoed panel, 182.9×182.9cm, 2024.
Courtesy of the artist and Kukje Gallery. Photographed by Chunho An

돌과 습도뿐 아니라 햇빛, 곰팡이, 빗방울 등 자연 요소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인 바 있죠. 이러한 작업은 주로 무엇에서 출발하나요?

자연을 매개로 한 작업은 대체로 전시 기관과 그곳의 규칙들을 살피면서 시작됩니다. 박물관 등 기성 기관들은 자연의 요소를 전시실에 들일 때 철저한 보존 규칙을 따라요. 이러한 제약을 작업의 재료로 삼아 자연이 특정한 조건 안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탐구하고자 합니다.

환경이 철저하게 관리되는 전시실은 종종 성역처럼 간주되지만, 그 안에서의 보존 행위는 기관의 제도하에 이뤄어진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게 진정한 보존이 아닌 변형이나 왜곡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죠. 제도는 보존뿐만 아니라 수집에도 영향을 미쳐요. 유물 등 작품을 수집하는 기관은 ‘물질의 역사’를 담아내는 저장소 역할을 하며 우리가 과거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규제합니다. 이러한 기관의 컬렉션은 대부분 ‘체계는 객관적이다’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요. 그 사고의 틀은 현대의 문화적 대상을 이해하는 데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어요.

Gala Porras-Kim, ‘Precipitation for an arid landscape’, Copal, dust from the Peabody Museum storage,
institutional structure for rainwater and rainwater, Dimensions variable, 2021~.
Courtesy of the artist and Fundaçao Bienal de São Paulo.
Photographed by Levi Fanan
Gala Porras-Kim, ‘Sights beyond the grave’, Graphite and colour pencil on paper and document, 150×277.5cm, 2022.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sworks. Photographed by Andy Keate

“역사적 자료는 세대마다 다른 틀로 짜여 있고, 이러한 재구성 방식을 통해 특정 시기의 문명이 지닌 태도를 엿볼 수 있다”라고 말한 게 떠오르네요. 어떤 과정을 거쳐 당도한 생각인가요?

역사적 자료의 과거 형태와 동시대적 해석 사이의 관계에 꾸준히 주목해왔어요. 동일한 대상일지라도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아주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더군요. 우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는 수많은 관념을 상속받았고, 이를 오늘날의 세계에 조화롭게 끼워 맞추려고 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며 시대의 맥락에 맞는 새로운 분류법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봐요.

특정한 시공간의 맥락 아래 수행되는 보존, 수집과 분류는 ‘온전히 옳다’고 볼 수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과정에서 주관이 개입할 가능성도 크고요.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은 작가, 큐레이터, 작품 설치가나 보존가, 관람객 등 감상의 주체마다 다르기 마련이에요. 한데 그 관점이 생명이 없는 주체 뒤에 숨어 단일하고 권위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요. 이는 다양한 해석을 허용하지 않고, 비판적 사고를 억제하죠. 작품에 담긴 화두를 ‘이미 정립된 것’으로 간주하게 한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지닐 수 있다고 봅니다.

그 위험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제도가 포괄하지 못하는 대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이런 생각을 해볼 수 있죠. 땀에 젖은 사람이 전시실에 들어와 습도가 높아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땅에 묻혀 곰팡이에 뒤덮였다가 발견된 사물을 전시 공간으로 들여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대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작은 파편은 무엇으로 분류해야 좋을까요? 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느 순간 제도가 지닌 ‘실용성’의 경계를 넘어서게 돼요. 그때부터 기관은 더 이상 경직되지 않은, 보다 유연하고 흥미로운 공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Gala Porras-Kim, ‘202 mineral objects at Carnegie Museum of Art or at Carnegie Museum of Natural History’,
Color pencil and Flashe on paper, 243.8×182.8cm each, 2025.
Courtesy of Gala Porras-Kim Studio. Photographed by Paul Salveson

전시 기관이 갖는 한계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왔지만, 그렇다고 기관의 행보를 완전히 부정하거나 비판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본인의 작업을 선보일 기관에 편지를 보내며 긴밀히 협력해왔다고요. 그 과정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나요?

기관의 제도에 반하는 제안은 되도록 하고 싶지 않아요. 기존과 유사한 방법론을 따르면서도, 비실용적인 경로를 통해 작업에서 다룰 대상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이 방식은 작품에 담긴 대상의 기능을 확장하고, 다른 존재들과의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해요. 기관이 통상적으로 배제하는 존재, 이를테면 습기와 곰팡이, 작품 속 대상의 창조자, 영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도 이러한 접근에 도움이 됩니다. 그들이 주요한 관람객이라면 기관의 관심사가 어떻게 바뀌고, 어떤 제도가 새롭게 만들어질지 상상해보는 거죠.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구성된다”라고 말한 적이 있죠. 이 문장에서도 알 수 있듯, 그동안 인간 중심적 관념을 뒤집는 작업을 지속해왔습니다. 그래서인지 작품이 인간과 자연, 현재와 과거, 삶과 죽음 사이의 대화를 이끌어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이러한 범인류적, 범세대적 소통을 다루며 깊이 깨달은 것이 있다면요?

세상에는 수많은 이해 관계자가 서로 얽혀 있습니다. 어떤 대상이 ‘누구’ 혹은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여러 형태의 관계 중 인간이 인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맥락 안에서 대상의 의미를 파악할 때, 보다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봐요. 그 대상이 고대의 사람, 박테리아, 비가시적 힘 등 무엇이든지요.

하지만 무수하고 다양한 관계를 통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나와 다른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요.

맞아요. 어떤 대상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상의 주체성에 대해 질문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이전에 알지 못했던 다양한 주체성들에 최대한 열린 마음을 갖는 거죠. 작업 초기에 연 개인전 제목이 <I Want to Prepare to Learn Something I Don’t Know>였는데, ‘모르는 것을 배우기 위해 준비하고 싶다’는 그 의미는 작가로서의 제 태도와 맞닿아 있어요. 이 배움의 과정이 나중에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 정해두지 않은 채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대상에 본질적인 특성이 있다고 단정 짓기보다는 ‘무한한 가능성 중 하나’로서 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작업을 선호해요.

어떤 대상이 ‘누구’ 혹은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지, 여러 형태의 관계 중 인간이 인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맥락 안에서 대상의 의미를 파악할 때,
보다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봐요.

Gala Porras-Kim, ‘Recital of the Granodiorite stela of Hor and Suty at the British Museum’,
Graphite on paper and sound, Music composed and interpreted by Egyptologist Heidi Köpp-Junk,
4 min. 7 sec., 207×174cm, 2022.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sworks.
Photographed by Andy Keate

그러한 작업을 하며 여러 매체를 사용해왔죠. 흑연이나 색연필로 그린 드로잉, 조각,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형태의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매체를 선택하는 주요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우선, 드로잉은 언제나 제 작업의 주된 매체입니다. 드로잉의 민주적 특성, 즉 누구든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에요. 다른 형태의 작업을 할 땐 작품의 ‘개념적 구조’를 가장 잘 지지해줄 수 있는 매체를 사용하려고 해요. 최근에는 ‘제도’를 하나의 매체로 대하는 데 몰두하고 있어요. 법 또는 정책이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는지를 탐구하고, 특정한 시스템 안에서 작품을 만들어보려고 시도하는 중입니다.

작품 활동을 통해 사회적·정치적 맥락을 탐구하며 고착화된 관습을 흔들기 위해서는 치열한 사유의 시간을 거쳐야 할 듯합니다. 그 과정에서 직면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제가 처한 상황이나 삶이 작업의 핵심을 간섭하거나 좌우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대한 도전 과제예요. 개인적인 바람이나 필요를 따르기보다는 각 작업이 지닌 성격과 동기를 파악하고 존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습니다. 그게 제 역할이자 작가의 사유를 전달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작업을 지속하며 ‘예술적 실천’이 지닌 가능성을 실감하기도 하죠?

그렇죠. 물론 예술계 내부에도 일정한 관습이 존재하지만(웃음), 이를 차치하면 작가들은 관습에 크게 구속되지 않습니다. 특정한 방식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고, 만물의 사이에서 보다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죠. 그 덕분에 사람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맞닥뜨린 제약으로 인해 해결책을 찾지 못한 질문들을 대신 던질 수 있어요.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 그게 예술이 가진 힘이라고 믿습니다.

Gala Porras-Kim, ‘Forecasting Signal, and Signal [CAAC 02/23-09/23]’,
Burlap, liquid graphite, ink, ambient water, panel, Dimensions variable, 2021~.
Courtesy of the artist and Centro Andaluz de Arte Contemporaneo.
Photographed by Pepe Morón

갈라 포라스-김 개인전
<자연 형태를 담는 조건(Conditions for holding a natural form)>

기간 2025년 9월 2일~10월 26일
장소 국제갤러리 서울 K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