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 CHANEL 31 LE ROUGE MATTE(트렁떼 엉 르 루쥬 마뜨) #루쥬 꾸띄리에르. 3.3g, 21만7천원대.
LOUIS VUITTON LV × TM 아트라프 레브. 100ml, 55만원대.
LOEWE PERFUMES 왁스 센티드 캔들 홀더 #토마토 리프. 330g, 22만6천원.

뷰티의 본질은 효능이기 때문에 제품의 미관보다는 기능적인 부분을 중시하는 편이다.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이 목격했고, 패키지 때문에 괜히 더 비싼 값을 치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2년 전 부산에서 샤넬과 함께하는 촬영을 준비하며 31 LE ROUGE(트렁떼 엉 르 루쥬)를 처음 만났다. 이 립스틱을 처음 보고 그 우아함에 매료된 순간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각진 면으로 이루어진 스퀘어 케이스가 마치 유리와 거울로 겹겹이 둘러싸인 미로를 보는 느낌이랄까? 이 아름답게 복잡한 오브제는 파리 캉봉가 31번지에 자리한 전설적인 아르데코풍 계단을 따라 늘어선 거울에서 영감 받아 다면적 오브제를 구현하기 위해 샤넬의 향수병에 사용하는 소재를 활용했다. 그 덕분에 탄생한 유리와 메탈의 유려한 조합은 한 손에 쏙 들어오지만 퍽 묵직한 느낌이 묘한 안정감을 준다. 이 립스틱은 단순히 아름다운 물건을 넘어 샤넬의 헤리티지를 손바닥 위 오브제로 재창조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렇게 립스틱 하나에도 상징을 불어넣는 브랜드의 태도를 보면, 괜스레 반성하게 된다. ‘무언가를 계속 생산해내는 이 업에서 본질을 놓지 말아야지’ 하는 유의 성찰과 더불어 알 수 없는 포부도 생긴다. 여러모로 나에게도 유의미한 립스틱임이 틀림없다.

<마리끌레르> 뷰티 비주얼 디렉터 김상은

 

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를 꼽자면 다양성에 대한 수용적 태도다. 개인적인 관점을 담아내는 그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무라카미 다카시를 가장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끝까지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는 요즘. 그는 마이너 문화로 분류되던 아니메 감성을 현대미술 한가운데에 펼쳐내며, 오히려 그 색을 뚜렷이 새기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금 경외심을 느낀다. 그 당당함에 공감한 루이 비통은 2003년부터 그와의 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2025년 1월에 출시한 ‘루이 비통 × 무라카미 리-에디션’은 그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향수 라인까지 무라카미의 감각이 확장되며 뷰티 카테고리에도 그의 세계관이 스며들었다는 점. 그중 LV × TM 아트라프 레브는 루이 비통의 시그니처 퍼퓸 보틀 위에 무라카미의 시그니처와 같은 슈퍼 플랫 플라워를 피워내며, 마치 백일몽과 현실 사이 환상의 정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인상을 남겼다. 작약과 코코아 노트로 완성된 향기는 정원의 공기까지 함께 담아낸 듯하다. 시각과 후각 모두를 예술의 한 장면으로 승화한 이 향수는 존재만으로도 아트 피스가 된다. 현실의 무게에 휘둘리며 중심을 잃을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우고 꿈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존재, 앞으로도 그런 향으로 곁에 있어주길.

<마리끌레르> 뷰티 에디터 현정환

 

아트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와 장인정신을 온전히 지켜온 브랜드 로에베. 1864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가죽 공방 장인들이 모여 그 역사를 시작한 로에베는 뛰어난 가죽 세공 기술로 스페인 왕실의 공식 납품처로 지정되며 수공예의 가치를 이어왔다. 단순히 고급 재료를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 땀 한 땀 예술 작품을 빚듯 섬세한 연구와 깊은 통찰을 더해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어온 것. 2016년에는 로에베 재단 ‘크래프트 프라이즈’를 창설하면서 아트 앤 크래프트 하우스로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다. 프래그런스 라인은 더 간결하고 회화적인 컬러 팔레트로 새롭게 재탄생했는데, 보틀과 패키지조차 오브제처럼 느껴질 만큼 완결적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향은 식물과 채소 등 부드럽고 편안한 노트로 풀어냈고, 이는 평소 자연주의 인테리어를 즐기는 나로서는 더욱 끌릴 수밖에 없는 매력이었다. 최근에는 공간에 작은 변화를 주고 싶어 로에베의 감성을 담은 왁스 센티드 캔들 홀더를 들였다. 집 인테리어를 대대적으로 바꾸기는 부담스럽지만, 향 하나만으로도 공간의 분위기가 확 달라질 수 있으니까. 강렬한 토마토 레드 컬러가 집 안에 온기를 더하고 클래식한 촛대 디자인은 고풍스러운 조각상을 연상시켜, 이 제품 하나만으로도 공간을 아트 뮤지엄처럼 꾸밀 수 있는 아이템임이 분명하다.

<마리끌레르> 뷰티 에디터 송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