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수집한다는 것은 곧 삶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중국과 대만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두 컬렉터의 공간에서, 작품이 삶에 가져다주는 분명한 변화를 목격했다.

Murakami Takashi, ‘Ensō: Memento Mori Blue’, Acrylic on canvas, 100×100cm, 2015

BRYANT CHAO

대만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컬렉터 브라이언트 차오는 전통적인 순수미술이 아닌 색다른 경로로 미술 세계에 눈을 떴다. 미술품뿐만 아니라 스니커즈, 시계, 아트 토이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수집을 통해 예술이 일상에 스며드는 기쁨을 경험하며, 이제는 그 기쁨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생각이다.

왼쪽 | Buff Monster, Untitled, Acrylic on canvas, 200×200cm, 2020
오른쪽 | Jean Prouvé, ‘Aluminum Shutter’, Aluminum, 280×180×10.5cm, 1962

컬렉팅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대학 시절 힙합과 스트리트 문화에 푹 빠져 있었다. 당시 캘리포니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던 스니커즈 문화나 그래피티 같은 거리 예술의 자유분방한 표현 양식에 매료되면서, 자연스럽게 팝아트 작품과 아트 토이를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스니커즈나 아트 토이처럼 대중문화에서 비롯된 ‘하이프 컬처(hype culture)’로 컬렉팅 세계에 입문한 셈이다. 이후 회화나 조각같은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컬렉션을 확장한 동기는 무엇이었나?

본격적으로 컬렉팅을 시작한 2014년은 하이프 컬처와 순수미술의 경계가 빠르게 희미해지던 시기였다. 카우스(KAWS)와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작가들이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으면서 하이프 컬처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동시대 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았고, 주요 미술 기관이나 경매사도 이를 ‘진짜 예술’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첫 소장품 역시 두 작가의 작품이었다. 당시 애정을 쏟던 스트리트 문화의 미학을 그대로 담아내면서도, 초보 컬렉터에게도 직관적으로 와닿는 작업들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미술 세계에 발을 들인 뒤 점차 회화와 조각 같은 전통적인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관심을 넓혀 나갔다.

George Condo, ‘Lord Gorilla’, Oil on canvas, 39.4×47cm, 2002

이후 컬렉션의 방향은 어떻게 변화했나? 지금까지의 컬렉션을 하나로 이어주는 공통점이 있다면?

초반에는 팝아트와 구상 작품에 마음이 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 나아가 근대미술까지 아우르게 됐다. 겉으로는 일관성이 없어 보일 수 있지만, 내게는 인생의 여러 시기를 시각적으로 기록한 연대기와도 같다. 학생 시절부터 수집을 시작했기에 성격과 미적 취향이 변화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컬렉션에 반영된 셈이다. 컬렉션은 결국 수집가의 본질을 담은 자화상이라 본다.

컬렉팅을 위해 종종 서울을 찾는다고 들었다. 최근 주목하고 있는 작가나 작업이 있다면?

국제 무대에서 한국 작가들과 컬렉터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음을 실감한다. 주요 아트 페어 현장에서도 한국 컬렉터들을 자주 만나고, 여러 전시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특히 서울에서 직접 본 작가 이배와 이불의 작업이 무척 강렬했다. 이배는 간결한 색채 안에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고, 이불의 조각 작업은 거칠고 위압적인 조형으로 우리 안에 내재하는 부조리와 모순을 떠올리게 한다. 두 작가 모두 관람객의 해석과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회화 | Louise Bonnet, Untitled, Unique, Acrylic on canvas, 101.6×76.2cm, 2016
조각 | Banksy, ‘Flower Bomber’, Bronze, Edition

“작품을 단순히 투자 대상으로서만 바라보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작품을 선택할 때 따르는 기준이 있나?

컬렉팅은 결코 저렴한 취미가 아니다. 그래서 투자를 목적으로 삼지 않더라도 작품을 구입하기 전에는 작가가 살아온 배경이나 경매 기록 등을 살피며 꼼꼼히 조사한다. 그런 뒤에 마지막에는 결국 마음이 이끄는대로 선택한다. 수집 과정에서 고수하는 원칙은 단 하나다. 작품의 가치가 오를 거라는 기대만으로 구매를 결정하지 않는 것. 진심으로 사랑하는 작품이어야만 설령 시장 가치가 떨어져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아트 퍼니처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고 들었다. 전통적인 미술 작품을 수집할 때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예술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우리와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아트 퍼니처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상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예술이기 때문이다. 장 푸르베(Jean Prouvé)의 알루미늄 패널처럼 생활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는 작품들은 순전히 감상에 초점을 둔 작품을 소장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위부터 순서대로 | Kaws, ‘Wooden Pinocchio’, Ed. 100, 39×19×18cm, 2018
Daniel Arsham, ‘Crystalized Pikachu’, Ed.500, 34×19.5×15.5cm, 2020
Javier Calleja, ‘Missing the Blue Sky’, Ed. 200, 32.5×16×16cm, 2017

최근에는 아트 퍼니처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고 들었다. 전통적인 미술 작품을 수집할 때와는 어떤 차이가 있나?

예술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가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우리와 조화를 이루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아트 퍼니처를 수집하기 시작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일상에서 직접 활용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예술이기 때문이다. 장 푸르베(Jean Prouvé)의 알루미늄 패널처럼 생활 공간에서 함께 호흡하는 작품들은 순전히 감상에 초점을 둔 작품을 소장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집에서 가장 애정하는 공간은 어디인가?

시기마다 작품이나 가구의 배치를 바꿔가며 새로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을 즐기는데, 요즘은 거실에 누워 브라운(Braun)의 빈티지 스테레오로 바이닐을 틀고, 벽에 걸린 그림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을 비우는 시간이 큰 위안이 된다.

개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컬렉팅 과정을 공유해오고 있다. 이곳에서 다루는 콘텐츠가 컬렉팅 활동과는 어떻게 연결되나?

미술 작품뿐만 아니라 자동차, 시계 등 내가 애정하는 수집품들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시작한 채널이다. 자동차, 시계 컬렉팅에 비해 미술 컬렉팅은 상대적으로 애호가 커뮤니티의 규모가 작은 편이다. 종종 다른 콘텐츠로 내 채널을 접한 이들이 미술 컬렉팅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순간에 큰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도 내가 경험한 수집의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컬렉팅 문화가 널리 퍼지는 데 작게나마 힘을 보탤 생각이다.

벽면 회화 | Zhao Zhao, ‘Constellation’, Embroidery on silk, 230×140cm, 2018
앞쪽 테이블 조각 | Kaws×Robert Lazzarini, ‘Slanted Companion’, Ed.1000, 2010

컬렉팅이 삶에 가져다준 분명한 변화가 있다면?

인생을 바꾸어놓은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면서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아왔고, 무엇보다 생활 공간을 예술로 채울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이라 느낀다. 이런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어 현재 ‘브라이언트 살롱’이라는 공간을 준비 중이다. 갤러리도 상점도 아닌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공간으로, 미술, 가구, 음악 등 애정하는 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곳이다. 편한 의자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아무런 방해 없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혼자일 때는 고요를, 함께일 때는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이제 막 컬렉팅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건네고 싶나?

먼저 미술사를 공부하길 권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장르가 어떻게 변화해왔고, 각 시대를 빛낸 거장들은 누구인지부터 익히는 것이 좋은 작품을 판별하는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줄 것이다. 또한 서두르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미술 시장을 지켜보며 배워나가다 보면, 언젠가 좋은 작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만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과정을 인내하며 즐기는 것이야말로 컬렉팅의 진정한 기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