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품은 빛을 겹쳐 하나의 세계를 빚어내는 일.
<마리끌레르> BIFF 에디션에 함께한 11인의 배우와 감독이
영화 안에 머물며 각자의 마음속을 환히 밝혀준, 기억 속에 찬란히 빛나던 장면들을 전해왔다.
배우 이병헌

<레드: 더 레전드>를 촬영하던 당시에 극 중에서 제가 모는 프라이빗 제트 안에 쓸 소품으로 실제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현장에 가져갔어요. 브루스 윌리스가 제트를 훔치고 나서 그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장면에서 사진이 딱 클로즈업되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격이 밀려오더라고요. 아버지는 제가 네 살 때부터 저를 극장에 자주 데리고 다니셨고, 당신의 꿈도 영화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영화 마니아셨어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사진으로나마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고, 심지어 엔딩 크레디트에 아버지 성함이 남겨진 장면을 보는데… 제게는 그게 참 영화 같은 순간이었어요.
배우 한예리

제가 영화 안팎에서 가장 좋아하는 건 현장이에요. 현장에 모인 수많은 배우와 스태프들이 한 편의 영화를 함께 만들어가면서 각자의 생각을 치열하게 나누고 펼쳐낼 때, 그렇게 제가 맡은 인물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고 느낄 때 큰 기쁨을 느껴요. 그 과정이 제게 굉장히 중요하고 소중해요.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제가 영화의 세계에서 계속 살아가고, 영화를 오래도록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감독 민규동


<파과> 마지막 장면의 촬영을 끝내고 이혜영 배우에게 달려가서 껴안고 막 울었어요.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지 30년 만에 처음 울었거든요. 한창 울다 고개를 드니, 모든 걸 다 쏟아부은 후에도 여전히 영화 속 캐릭터로 살아 있는 것 같은 배우의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컷 사인 이후에도 배우가 여전히 영화 속 인물로 존재하는 그 모습을 마주하는데, 그게 너무나 신비롭게 다가왔어요.
감독 우민호

<하얼빈>을 찍을 때 배우, 스태프들이랑 몽골로 향했습니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촬영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를 실감했어요. 육체의 한계를 느꼈는데, 그와 동시에 정신은 고양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 우리 독립군이 드넓은 타지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말을 타고 달릴 때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한계를 극복하면서 목숨 걸고 싸우던 독립군의 마음을, 그 깨어 있는 정신을 현장의 모두가 비슷하게나마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제가 지금껏 영화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느꼈던 감정이자 영화로운 기억입니다.
배우 최현욱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저라는 사람을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현장에 가면 늘 주위를 잘 둘러보려고 해요. 많이 느끼려 하고요. 새로운 현장, 새로운 캐릭터를 마주하면 저 자신이 변화하기도 하는데, 그게 제게는 가장 ‘영화로운’ 경험 아닌가 싶어요.
배우 이유미

처음으로 오디션을 보러 간 날이 떠올라요. 떨리는 마음에 실수를 많이 한 것 같아 망쳤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온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그 경험 덕분에 지금의 제가 배우의 삶을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한번 해보고 재미없거나 지치면 포기했을 법도 한데, 미래를 알았다는 듯이 잘 견뎌준 어린 시절의 그 순간이 영화로운 것 같아요.
감독 윤가은


현장에서 한 장면, 한 장면에 집중하는 마음이 제일 큰데, 아주 가끔 ‘우리가 다 같이 어떤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있네’ 이런 생각이 스칠 때가 있어요. 마치 하늘 위에서 현장을 내려다보고 다시 내려오는 것 같달까요. 이토록 많은 사람이 한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 무언가가 벌어질 거라고, 어떤 기적이 만들어질 거라고 기대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에 잠시 빠졌다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가 제게는 영화로운 순간인 것 같아요.
감독 변성현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을 마치고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때였어요. 극장 상영이 마무리된 뒤였는데, 영화를 진심으로 아껴준 관객들이 ‘불한당원’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직접 상영관을 대관해 상영회를 연달아 이어가게 된 거예요. 관객과의 대화(GV) 자리에 참여해 환호와 응원을 보내주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는데, 신기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어요. 영화 하길 잘했다 싶더라고요. 그분들이 여전히 촬영 현장을 찾아와 제 영화를 응원해주곤 하는데, 그런 순간들이 제가 영화를 계속 해나갈 수 있는 힘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배우 전소니


첫 촬영 날, 현장에 가면 많은 분이 저를 작품 속 인물의 이름으로 불러줘요.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기로 한 스태프들 사이에, 저를 믿고 역할을 맡겨주신 감독님 앞에 그 인물로서 서는 순간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그때 평소처럼 지레 겁먹지 않는, 용기 있는 제 모습이 나오는 것 같아요. 스스로도 낯선 저 자신을 마주하는 현장에서의 매일매일, 매분 매초가 영화롭게 느껴져요.
배우 조우진

작품마다 무수히 찬란한 경험을 해온 터라 어느 한 장면을 콕 집어 이야기하기 참 어려운데요. 그럼에도 이번 작품인 <보스> 현장을 떠올려보면, 오랜 시간 동경해왔고 언젠가 현장에서 꼭 만나고 싶었던 배우, 감독, 스태프들과 좋은 시너지를 내면서 협업하는 순간순간이 모두 영화로웠던 것 같아요. 현장에서 모니터링을 하다 보면 ‘다 같이 애쓴 보람이 있구나’ 하고 실감하게 되는 장면들이 있어요. 모두의 노력으로 끌어낸 장면들을 들여다보면서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을 때, 그 순간이 가장 영화롭다고 느껴요.
배우 이제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순간에 가장 행복해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으로서 최근 어떤 작품을 보던 순간이 떠올라요. 많은 사람이 애정하는 시리즈가 영화로 개봉한 건데, 사실 저는 작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처음에는 전사를 모른 채 보려니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는 거지?’ 싶어서 적응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때 극장을 채운 수많은 관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이야기에 엄청나게 몰입하는데, 그 모습에 저도 모르게 동요하게 되더라고요. 결국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땐 저 역시 그 시리즈의 오랜 팬인 것처럼 뜨겁게 열광하게 됐어요. 극장이란 공간의 힘이 그런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