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들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 ‘키아프 하이라이트(Kiaf HIGHLIGHTS)’.
고유한 정체성과 독창성에 동시대적 맥락을 더하며,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그려가는 올해의 세미 파이널리스트 10인을 만났다.

MOONASSI
Everydaymooonday
무나씨(1980, 한국)는 홍익대학교 동양화과 졸업 후 2010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먹과 검은색 아크릴로 시간과 장소에 대한 구체적인 단서가 없는 내면 풍경과 감정의 지형 속 인물들을 그려낸다. 서울, 파리, 홍콩, 싱가포르, 오슬로 등 국내외에서 개인전 10여 회, 단체전 30여 회를 가졌다.


새로운 작품의 실마리는 어떻게 얻나?
주로 운동을 하다가 머릿속이 조금 비워지면 오늘, 어제, 요즘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새롭게 경험한 감정은 없는지 살핀다. 그 짧은 생각들을 일기로 정리해두고, 그렇게 모인 일기에서 그림 소재가 될 만한 것을 찾아 스케치를 한다. 그래서 빈 화면 앞에서 그다지 고민하지 않고 작업을 시작한다.
오랫동안 먹과 한지를 주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먹은 소나무나 기름을 태운 그을음으로 만들어지고, 그것의 접착성을 높이는 아교는 동물 뼈에서 추출한다. 먹은 돌로 만든 벼루에 갈아 물에 풀어 사용하고, 종이는 닥나무 껍질을 삶아 만든다. 나무, 물, 돌처럼 자연의 근원적인 재료로 작업한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검은색은 무나씨의 상징 중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완벽한 검정은 표현하기 어렵다던데, 당신에게 완벽한 검정, 혹은 검은색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완벽한 검정에 집착하지는 않는다. 다만 표현을 위해 조금 더 밝거나 어두운 색이 필요할 따름이다. 먹이라는 재료의 근원적인 성격처럼, 내게 검정은 각기 다른 색을 띠는 모든 존재의 근원적인 색이다. 대상의 색을 제거해 서로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하거나, 그것에 대한 편견을 갖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검은색은 마치 어두운 밤처럼, 서로 다른 존재를 흐릿하게 포용할 수 있는 색이라고 생각한다.

관계와 감정을 담담하게 표현하는 작품을 선보이는 당신이 최근 일상에서 주목하는 감정은 무엇인가?
‘미안함’. 그 감정이 해소될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해방감에 관심이 있다. 이 세계를 움직이는 여러 감정 중에서 미안함이 얼마나 큰 힘을 가졌는지 알고 싶고, 그 너머에 어떤 감정들이 섞여 있는지도 분석해보고 싶다.
올해 키아프에서 선보일 작품은?
네 폭의 큰 병풍 작업과 부채꼴 종이에 그린 그림을 전시할 예정이다. 병풍 작업은 예전에도 제작해본 적이 있는데, 최근 호암미술관에서 본 겸재 정선의 그림에 감명받아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병풍 형태를 택했다.
무나씨의 ‘무나’는 ‘내가 없다’라는 뜻이라고 알고 있다. 이 이름을 처음 지은 계기를 다시 돌아본다면?
그림보다 글쓰기에 더 관심이 있었을 때 만든 이름이다. 어떤 글을 쓰든 꼭 ‘나는’으로 시작하는 것이 지겹게 느껴졌고, ‘나’와 관계없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에 ‘무나’라는 필명을 짓게 되었다. 불교의 ‘무아’에서 차용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결국 이 세상에 ‘나’와 무관한 이야기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작가로서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늘 하는 대답인데, 오래도록 작업을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다. 그러려면 작업이 오래도록 훌륭하게 여겨져야 할 테고, 훌륭한 작업을 선보이기 위해서는 전시마다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나’가 없는 세계에서도, 작품들이 관객과 오래도록 공명하며 살아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