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들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 ‘키아프 하이라이트(Kiaf HIGHLIGHTS)’.
고유한 정체성과 독창성에 동시대적 맥락을 더하며,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그려가는 올해의 세미 파이널리스트 10인을 만났다.

JUNGIN KIM
La Heen Gallery
김정인(1991, 한국)은 목원대학교 서양화를 전공한 후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사회적, 심리적 균열과 보이지 않는 권력 구조에 반응하는 회화적 전술을 탐구하며 직관과 해석 사이의 유예 지대를 그린다. 성곡미술관과 SeMA 창고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한 점의 작품 안에 다양한 파편과 레이어가 존재한다는 점이 인상 깊다.
내 작품에서 파편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담고 있는 기억의 조각들이다. 화면 위에 레이어를 이루는 조각들은 조형적 의미보다는 내용과 관련이 있다. 그 내용은 무언가를 뚜렷이 기억해내고 싶은 마음과 기억이 뚜렷해지는 과정을 드러내면서도, 오히려 모호해지고자 하는 의도를 포함한다. 내면을 표출하는 동시에, 이를 감추려는 양가적인 부분이 공존하는 것이다. 두 감정을 즉각적인 판단으로 그리고 버무려내며 작업하고 있다.
작업은 대체로 어떤 과정을 거쳐 전개되나?
주변 대상과 풍경을 지속적으로 바라보며 얻은 다양한 연상에서 출발한다. 어릴 때부터 동네 산책을 좋아했는데, 그러다 보니 자주 걷던 경로에서 사라진 것들을 빨리 인지하게 됐다. 특히 길가의 나무들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내가 기억하던 모습을 더듬고, 뽑혀나간 나무에 ‘나’를 대입해보곤 했다. 물론 모든 걸 선명하게 기억하기는 어렵다. 초반에는 기억의 파편들이 서로를 붙잡고 있는 형식으로 화면 위에 일종의 연대를 만들어냈다면, 요즘은 ‘흐릿한 상태’와 ‘기억이 뚜렷해지는 순간’들을 그리는 데 흥미를 느낀다. 흐릿한 기억이 뚜렷해지는 과정에 관심을 갖고,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이미지의 단편을 표현하고자 한다.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본인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체감할 때도 있나?
그림의 목적이 변하진 않지만, 그리는 행위 안에서 관심사가 종종 바뀐다. 이를테면 초반에는 기억의 부스러기들을 모아 이미지의 군집을 만들어 실체를 감춘 권력과 대치하도록 하는 데 주력했는데, 작업을 지속할수록 ‘모호성’이 가미된 표현에 관심이 생겼다. 그리면서 마주하는 우연적 효과들이 자아내는 긴장감을 즐기고, 이를 통해 강화되는 모호성에 흥미를 느낀다.
‘획일화에 대한 저항’이 작업을 추동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획일화에 대한 저항은 학교와 군대, 또래 집단 사이를 이동하는 과정에서 느낀 스트레스와 어느 순간부터 생겨난 ‘반감’에서 기인했다. 다소 단순했던 당시의 반감은 사회 시스템을 비롯한 모든 것을 관장하는 권력에 저항하는 태도를 이끌어냈고, 이에 상응하는 미술적 실천에 대해 지속적으로 고민하게 했다. ‘반감’이 세상을 바라보는 나름의 축이 된 셈이다. 물론 반감의 농도에는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나는 뾰족하고 날 선 저항이 아닌, 얼핏 변변치 못한 것처럼 보여도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저항을 지향한다. 끊임없이 진보해온 권력에 반응할 수 있는, 예측하기 힘든 저항책을 만들고 싶다.
올해 키아프에서 어떤 작품을 선보이나?
외형상 상이해 보이는 두 종류의 회화를 함께 선보인다. 하나는 구상적인 형태가 도드라지는 작업, 다른 하나는 추상성이 강한 작업이다. 두 작업은 각각 다른 언어로 읽힐 수 있지만, 동일한 사고를 거쳐 제작되었으며 ‘감각과 판단의 유예’를 다룬다는 지점에서 서로 맞닿아 있다. 출품작 모두 ‘모호성의 강화’라는 키워드를 공유하며, 열린 감각과 다층적 사고를 이끌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