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가장 주목해야 할 작가들을 선정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 ‘키아프 하이라이트(Kiaf HIGHLIGHTS)’.
고유한 정체성과 독창성에 동시대적 맥락을 더하며,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그려가는 올해의 세미 파이널리스트 10인을 만났다.

EUNSI JO

GalleryMEME

조은시(1999, 한국)는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를 전공한 후 동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지난 8월 갤러리밈 개인전을 포함해 4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단체전을 가졌다. 2023년 ‘알마낙:50 컨템포러리아티스트 인 코리아’, 2025년 ‘서울문화재단 청년예술지원’ 작가로 선정된 바 있다.

조은시, ‘하드보일드’, Oil on panel, 25×70cm, 2025
조은시, ‘말썽쟁이’, Oil on panel, 80×120×30cm, 2023

올해 키아프에서 선보일 작품을 소개한다면?

이번에 전시하는 작업들은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힘의 분산, 다수 중 일부, 작은 것들이 모여 이룬 커다란 하나 등을 다룬다. 이를테면 ‘땅위 형제’, ‘땅속 형제’는 키보드의 형태에서 영감받은 시리즈로 0부터 9까지의 숫자를 나타내는 화면 분할을 통해 기수와 서수, 확률에 대한 사유를 담았다. ‘땅위 형제’에는 한 둥지에 담긴 10개의 알을 병렬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순서대로 0~9개의 무늬가 그려져 있다. 마치 첫째부터 아홉째까지 나열된 형제처럼 보이지만, 알의 무늬(기수)와 태어난 순서(서수)는 동일한 것이 아닐 수 있음을 나타내고 싶었다. 한편 ‘땅속 형제’에서는 10개의 콩을 그렸다. 콩들은 싹이 트거나, 말라
비틀어지는 등 다양한 결말을 맞이한다. 땅속에 심은 콩들이 전부 자라나지 않고, 심은 순서대로 자라나는 것도 아님을 표현하고자 했다.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각각 특정한 상징을 내포한다고 볼 수 있나?

그렇다. 내 작업의 모든 요소는 저마다 의미를 가진다. 일례로, 나는 자연 요소들의 관계를 가족관계로 치환해 작품 안에 풀어내곤 한다. 그 중 땅 위의 돌과 지층의 관계를 먼 조상과 후손의 관계로 바라본 작품이 있다. 돌과 자갈이 쌓이고 쌓여 지층을 이루는데, 이들이 한 화면에 담긴 모습이 마치 비극적인 사건처럼 느껴져 ‘하드보일드’라는 제목을 붙였다. 한편 ‘말썽쟁이’에서는 자연과 인간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고,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에 대한 인간의 대응 방식을 탐구해 이미지의 병렬로 표현했다. 작품 속 삼각형은 산을 상징하는데, 이를 구조물의 다리 형태로 다시 한 번 등장시키며 화면의 확장을 도모한 작품이다.

조은시, ‘중심 연구’, Oil on canvas, stainless steel, variable installation, 2024

패널, 행어, 그네 등을 활용한 가변 설치를 시도해온 점도 흥미롭다.

내용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싶다는 고민에서 비롯한 형식적 시도라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심 연구’는 행어에 걸어둔 캔버스 천의 양끝에 추를 달아 무게의 균형을 이룬 시리즈인데, 작품의 앞·뒷면에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질량을 가진 것들’을 그렸다. ‘관성적 태도’의 경우 해와 달이 앞뒤에 그려진 그림을 그네에 앉힌 작업으로 조수간만의 차, 해와 달의 반복을 관성적인 태도로 바라보고자 한 작품이다.

작업 외에는 어떤 활동에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편인가? 그 시간이 작업에 미치는 영향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어린 시절부터 게임이 취미였다. 친가 쪽이 게임과 인연이 깊은데, 프로그래머인 아버지가 두세 살 무렵부터 온갖 게임을 경험하게 해주셨다. 그게 내가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 이를테면 분할된 화면이나 크롭트 오브제 등에 영향을 미친 듯하다. 이는 닮음과 불가항력과 관련한 작업 전반의 주제와도 이어졌다. 최근에는 자전거를 타고 길을 가다가 재미있는 현상이나 장면들을 발견하면 메모해둔 후 작업으로 풀어내곤 한다.

당신이 최근에 관심을 가진 대상은 무엇인가?

서로 닮은 것들, 가족관계, 중력이나 조수간만을 비롯한 자연현상에 꾸준한 흥미를 가져왔다. 최근에는 속담이나 버릇 같은 관습적인 것들에 관심이 간다.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종 구분법, 단위와 묶음에 대한 연구도 더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