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어디로든. 거칠 것 없는. 배우 천우희의 확장



사진가가 이전에 촬영해본 적이 있다고 하기에 미팅할 때 물었거든요. 천우희 배우 실제로 만나면 어때요? 하고요.
궁금하다. 무슨 말을 들었어요?
“되게 열려 있어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아니다,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란 뜻일까요?(웃음)
거리낌이 없다는 뜻에서요. 좀 독특한 포즈를 제안해도 오케이, 얼굴의 어느 면을 찍어도 오케이라면서요.
일하면서 제 얼굴을 워낙 많이 봤으니까 저도 알죠. 어느 부분이 부각되면 좋고, 단점을 보완하려면 어떤 각도는 지양해야 한다는 걸요. 그렇지만 되도록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요. 오늘처럼 화보를 찍을 때도, 작품에 임할 때도 그 생각이 저를 좀 가두는 것 같아서요. 거리낌이 완전히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어진 틀 안에선 최대한 자유롭게 이것저것 해보려는 편이에요.
대중이 인식하는 이미지의 간극이 굉장히 큰 배우인데, 역시 거리낌 없는 성정에서 발현된 게 아닌가 싶어요. 누군가는 단단하고 강한 사람일 것 같다고 하고, 또 한편에서는 귀엽고 말랑한 사람일 거라 생각하죠.
그건 작품 덕분이 아닐까요?(웃음) 그런데 저 스스로도 좀 왔다 갔다 해요. 예전에는 단단해 보인다고 하면 ‘그게 맞지’ 했는데, 어느 순간의 저를 보면 되게 유약한 사람이에요. 그럴 땐 실은 그렇지 않음을 어필하고 싶기도 하고요. 가까이에서 저를 오래 봐온 사람들도 의견이 분분해요. 드라마 <멜로가 체질> 할 때 “이제야 본연의 네 모습이 나와서 좋아”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또 다른 친구는 영화 <앵커>를 보고 “네가 가진 묵직함이 드러나서 좋아”라는 거예요. 과연 나의 본모습은 무엇인가?(웃음) 아마 다 내재된 제 모습일 거예요. 배우로선 그게 더 좋다 싶고요.
새 드라마 <마이 유스> 예고편을 봤는데, 해사하게 웃는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멜로에 맞춘 미소를.(웃음)
이 작품에선 어떤 모습을 발견 혹은 발현하게 될 것 같아요?
글쎄요. 사랑 안에 여러 마음이 있잖아요. <마이 유스>에선 그중 그리움이 가장 크게 그려질 것 같아요. 그때의 우리, 그 시절의 내가 그리워지는 순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아닌가 싶어요. 사실 이번 작품에 출연하기까지 두려움이 좀 있었어요. 나라는 사람이 과연 이런 멜로가 가능할까 싶었거든요.
그럼에도 선택하게 된 건···.
이번에는 좀 달랐어요. 좀 전에 나눈 이야기와 연결되는 말일 수도 있는데요. <멜로가 체질>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제가 유니크하긴 한데, 좀 다가가기 어렵고 독특한 배우로 인식되는 데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어떤 작품을 해야 대중 에 한 발짝 가까워질 수 있을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이번 드라마가 하나의 답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또 ‘나로선 부족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부분에 접근했을 때 의외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으니까, 한번 경험해보자는 생각도 있었고요.
감독님께 ‘성제연’이라는 인물로 왜 나를 생각했는지 물어보기도 했나요?
그 질문을 작품마다 하는데, 대부분 비슷한 답이 돌아와요. “천우희에게서 새로운 얼굴을 끄집어내고 싶다.”(웃음) 늘 그 말을 믿고 도전하고요. 그럼 정말 꺼내주시기도 하고, 어떨 땐 제가 자유롭게 해석하도록 맡겨주시기도 해요. 이번엔 글쎄요, 반반이었던 것 같아요. 이 드라마가 클래식한 멜로의 성향을 지니면서도 캐릭터의 특성이 좀 독특하거든요. 감독님께서 제연이라는 캐릭터가 좀 더 생명력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저에게 맡기고 싶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 이해가 잘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연기하는 내내 그 부분을 놓치지 않으려 했어요.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을 연출한 조현탁 감독님이 한 말이 생각나네요. “천우희 배우가 연기하면 갑자기 진짜가 된다.”
그래서 제가 사기꾼 역할을 많이 맡나 봐요.(웃음) 결국 영화든 드라마든 만들어진 이야기 안에 머무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저는 모든 것을 진짜라 믿고 연기해요. 진짜여야만 하고요. 관객을 몰입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은 배우의 진심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작품을 하든 이 믿음은 놓치지 않고 싶어요.






그런데 제연이 지닌 독특한 면은 무엇인가요?
예고편이나 소개 글에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부분인데요. 재회의 로맨스가 따르는 공식이 있잖아요. 그 공식 안에서 흥미로운 템포를 만들기 위해 제연에게 부여된 특성이 있어요.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스포일러 가 될 수 있어서(웃음). 제연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아유, 진짜 난제였어요. 아하핫. 기승전결에서 ‘기승전’이 함축된 말을 하는데, 그걸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한 거죠. 과하지 않고, 말만 지나치게 부각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그저 흘러가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시선을 작품으로 넓혀보면, <마이 유스>는 많이 웃게 되는 이야기일까요, 혹은 많이 울게 되는 이야기인가요?
각자의 사랑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떤 시기를 지나고 있는지에 따라서 되게 다르게 느껴질 것 같아요. 사랑 자체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서도 다를 테고요. 사랑이라는 게 울다가도 웃고, 웃다가도 울게 되는 거니까요.
연기를 하면서는 어땠어요? 제연으로 살며 어떤 감정이 자주 들었어요?
멜로라는 장르 가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 게, 과거의 저를 하나씩 들춰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촬영 끝내고 돌아보면서 든 감정이 고마움이에요. 결국 제연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네가 있어서 그때의 내가 반짝일 수 있었어’ 아닐까 싶어요.
과거의 나를 들춰본다는 말이요. 그게 멜로라는 장르가 오래 사랑받아온 이유 중 하나 이지 않나 싶어요. 누구에게나 사랑의 시절이 있었고, 그 시절의 반짝이던 마음들을 다시금 떠올려볼 수 있다는 점에서요.
개인적으로 즐겨 보지 않는 장르이기도 하고, 연기 할 때도 비교적 흥미가 덜 생기는 부분이었거든요. 그런데 연기를 하다 보니 멜로가 진짜 매력적이구나 싶어요. 저는 작품을 대할 때 특정한 인물이나 상황이 아니라 전체를 보려 하는 편이에요. 작품 자체를 아우르는 의미에 집중하는 거죠. 그런데 멜로는 내 감정, 내 상황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이 세상에 우리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요. 그 순간에 빠 지는 과정이 꽤 흥미롭더라고요. 지금은 기회가 온다면 계속하고 싶어요. 사랑의 형태가 참 다양하잖아요. 어쩌면 가장 무수한 표현이 가능한 장르일지도 모르겠어요.
한 인터뷰에서 “작품을 해나가는 게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느낌이 드는 것 같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계단의 형태도 매우 다양하잖아요.
<마이 유스>는 어떤 모양이었어요? 징검다리 같달까요? 뭔가 툭툭 끊기는 것 같은데 그래도 다 연결되어 있는 느낌. 모르겠어요. 봐야지 알 것 같은데요.(웃음)
보고 싶게 만드는 답인데요.(웃음) 인터뷰를 잘 못해서 어려워한다고 들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데요.
잘 못해요. 지금도 얘기하면서 ‘역시…’ 했는데요. 다만 예전처럼 어려워하진 않아요. 전에는 문학적으로 유려하게 말하는 분들을 보면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하지? 너무 멋지다’ 하며 부러워했는데, 이제는 나에게는 이 방식이 더 잘 맞겠다는 생각을 해요. 최근에 김창완 선배님의 에세이를 읽었어요. 굉장히 쉽고 친절한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모든 이야기가 마음을 팍 찌르더라고요. 아, 훌륭한 말솜씨가 아니라 나의 생각을 올곧게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하겠구나 싶더라고요. 기술적으로 말을 잘하는 건 내려놨어요.
촬영은 3월에 마쳤다고요. 이후엔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여행도 안 가고 운동만 했어요. (동석한 매니지먼트 홍보팀 담당자가 “거의 태릉인의 삶이었어요”라는 말을 덧붙였다.) 거기까지 해봤다가 탈이 나서 약 2주간 누워 있는 상황입니다.(웃음)
어느 정도로 수련을 한 건가요. 스쿠버다이빙부터 크로스핏, 복싱, 발레 등에 도전해본 적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어요.
맞아요. 다 해봐요. 스스로 항상 부족한 점이라고 생각하는 게 체력이거든요. 그래서 늘 노력해보는 거예요. 한계점을 넘는 정도로 노력하면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어쩌면 연기도 그런 부분일 거예요. 다른 분들도 같은 노력을 하고 계실 터라 얘기하는 게 민망하긴 한데요. 매번 스스로를 계속 깨부수고, 그래서 계속 더 나가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작품을 선택할 때도 회피할 수 있는 캐릭터, 아니면 작업하기에 뭔가 난감한 것들을 오히려 더 함으로써 한 걸음 더 가봤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이렇게 배우로서 가능한 일들을 일상에서도 경험해보고 싶어서 ‘이겨내보리라!’ 하며 도전했는데,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정도를 무시하면 안 된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3개월 정도 가열하게 운동하다가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구나, 그냥 받아들여야 한다’ 하며 쉬고 있어요.(웃음) 잘 회복해서 또 체력을 올려봐야죠.
강한 체력을 갖게 되면 무엇을 하고 싶어요?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운동도 하고, 여가 활동도 열심히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매일 그렇게 살아도 지치지 않는 삶을 살아보고 싶어요. 무엇보다 탐험을 꿈꾸고 있어요. 지난해에 여행이 아니라 거의 미션으로, 12일 동안 몽골에 다녀왔거든요. 예상대로 무척 힘들었지만, 엄청 진한 경험이 남더라고요. 오지를 좀 다녀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