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오히려 ‘어떤 사람이다’ 하고 명료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보다는 덜 유연한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요.”
배우 박성훈의 의연한 마음, 그 고요한 초상.


선글라스 Carven, 첼시 부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징어 게임 시즌 3>가 공개된 지 5주가 지났어요. 그곳에 머물렀던 시간이 실감이 나나요?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은 작품이잖아요. <오징어 게임>이라는 큰 꿈을 잠시 꾸고 깨어난 느낌이 들어요.
세계적인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배우로서 본인 안에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제 안에서 어떤 변화가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저를 바라봐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고, 시선이 달라졌음을 느껴요. 글로벌 프로젝트이다 보니 해외에 갈 일이 많았는데, 그 자리에서 저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을 만나는 일이 새롭고, 감사한 일을 자주 경험했어요. 하지만 정작 일상생활은 크게 변화가 없어요. 지금은 새로운 작품을 촬영하며 맡은 역할을 잘해내야 한다는 마음뿐인데요. 달라진 게 있다면 SNS 계정의 팔로워가 조금 많이 늘었다 정도.(웃음)
시리즈 공개 후 이타적이고 배려심 많은 ‘현주’로 사랑받았죠. 이번 시즌 최고의 캐릭터로 현주를 꼽는 이들도 많고요. 배우는 캐릭터를 빌려 세상을 바라볼 때, 본래의 나라면 보지 못하던 세계를 보게 되는 경험도 할 것 같습니다.
캐릭터와 작품을 만날 때마다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성장하는 것 같아요. 나와 똑같은, 완벽히 일치하는 캐릭터는 없잖아요. 나와는 다른 인물을 정확히 이해하고 깊이 공감해야 표현이 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이해의 그릇이 조금씩 넓어져요. 20대 초반 때만 해도 “저 사람 왜 저래, 왜 저렇게 화를 내” 하며 의아해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수용하는 폭이 넓어졌어요.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과정에서 오히려 더 복잡하고 어렵게 다가오진 않는가 봅니다.
‘나는 누구일까’ 하고 자문했을 때, 저조차도 답하기가 복잡하고 어려우니까요. 배우의 한자에서 배우 배(俳) 자를 보면 사람 인(人)과 아닐 비(非)가 합쳐져 있거든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인데, 왜 그런지 생각해보면, 어느 순간 저조차도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고 정의하기 어려워요. 특정 역할을 맡을 때마다 일상생활 속 내 성향도 영향을 받거든요. 이 캐릭터를 만났을 때의 나와 또 다른 저 역할을 맡았을 때의 내가 달라서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규정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근래 작품들을 찍으면서 ‘나는 어떤 사람이지?’ 하고 자문한 적이 많았어요. 어떤 현장에서는 저를 굉장히 수다스러운 사람으로, 또 다른 현
장에서는 과묵한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나는 어떤 사람이지?’라는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상황이 본인을 공허로 이끌지는 않나요?
글쎄요. 근데 오히려 어떤 사람이다 하고 명료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보다는 덜 유연한 배우가 되지 않았을까요.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하는 거죠.
연기를 시작한 20대 때 느낀 기쁨이나 슬픔과 고민이 지금과 달랐다고 느끼나요?
어느 날은 확신을 가지고 연기하다가도 어떤 날에는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문이 생길 때도 있어요.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용감했던 것 같아요.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했던 거겠죠. 지금은 너무 많이 알아버렸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이 일을 해나갈수록 인지도가 쌓이잖아요. 보는 분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거나 기대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서기도 해요. 그런 욕심 없이 그저 용감하게 부딪치던 때도 있었는데 말이죠. 그럼에도 배우는 죽을 때까지 배우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쉽게 낙담하기보다 지금도 배우고 있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고 믿으려 해요.
연기하며 얻는 변하지 않는 기쁨은 뭐예요?
현장에서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 한 장면을 위해 숨을 죽이고 집중해 세공해간다는, 고도의 몰입의 순간을 만날 때가 있거든요. 그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아주 크죠.
그건 그냥 피부로 오는 감각인가요?
맞아요. 그냥 와요. 왜 공연을 관람할 때 관객이 숨을 죽이고 본다고들 하잖아요. 그 순간이 진공상태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드라마나 영화 현장에서도 ‘레디’ 하는 소리에 사방이 일제히 고요해지면서 공기의 밀도가 달라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때 소름이 쫙 돋으면서 그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배우는 그 진공상태를 뚫는 사람이고요.
그게 묘미죠. 배우라는 직업의.
무엇이 계속 배우로 살아가게 한다는 자각도 있나요?
시작은 열등감이었던 것 같아요. 전 잘하는 게 없었어요. 노래를 잘하거나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고, 운동도 공부도 썩 잘하지 않았어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으로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도 ‘나는 연기를 못해, 더 잘하고 싶다’ 하는 열등감이 동력이 되어 나를 성장하게 한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 열등감은 여전히 있어요. 아주 잠깐은 썩 잘하네 하는 순간도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워낙 많으니까요. 그들을 보며 더 열심히 하게 됐고요. 근데 지금은 연기라는 행위를 너무 사랑하게 됐어요. 뭐 하나 잘하는 거 없고 소극적이던 사람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서보고, 실제로는 소심해서 화도 못 내면서 극 안에서는 화도 내보고, 심하게 가난하던 시절에 재벌 연기도 하면서.(웃음) 그런 순간들 덕분에 많은 것이 채워지지 않았나 싶어요.
가까운 미래를 그려보기도 해요?
눈앞의 목표를 자주 세우는 편이에요. 연극 할 때는 아르바이트 안 하고 연극만 하며 먹고살기 같은 목표가 있었고요. 그 이후에는 오디션 보지 않고 연극 무대에 서는 배우가 되길 바랐어요. 그러다 조금 더 비중 있는 역할을 맡으면 좋겠다 싶었고요. 또 어머니께 용돈을 조금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며 작은 목표들을 자주 설정하고 성취감을 느껴왔어요.
작은 목표를 세우던 사람에게 <오징어 게임>은 너무나 큰 일이었겠네요.
예전에 부산국제영화제에 관객으로 간 적이 있어요. 너무 재미있게 놀다 왔죠. 그래서 영화 <지옥만세>를 찍으면서 임오정 감독님께 “우리 내년에 이 영화로 부산국제영화제에 꼭 가요” 했거든요. 근데 정말 초청 받은 거예요. 목표를 세우면 이뤄진다고 믿게 된 거죠.(웃음) 부산에 모여서 함께 촬영한 배우들, 감독님에게 제 이야기를 하면서 각자 목표를 하나씩 이야기하자고 했거든요. 제가 그 자리에서 ‘<오징어 게임 시즌 2> 출연하기’라고 말했어요. 당시에는 진짜 허무맹랑한 바람이었거든요.(웃음) 아는 사람이 있다거나, 캐스팅될 법한 사건도 없었고요. 근데 정말 그게 이뤄진 거예요. 느닷없이. 나중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이 크게 놀랐고, 축하도 많이 받았어요.
데뷔와 동시에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반대의 경우여서 좋은 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오징어 게임 시즌 2> 출연이 누구보다 기뻤을 테니까요.
맞아요. 더디더라도 서서히 성장하고 발전하는 게 저한테는 맞아요. 왜 인간이 받는 큰 저주 중 하나가 초년의 성공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더디게 가야 탑도 더 견고히 쌓고 덜 흔들릴 것 같아요.
20대에 더디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견고해지는 과정이라고 인식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과정에 있을 때는 그게 잘 보이지 않으니까요.
어떤 사람들은 제게 어떻게 그 어려운 시간을 견뎠느냐고 물어보기도 하지만 저는 그때 그 시간을 즐겼어요. 연극 할 때 제 바람은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 연극만으로 생활이 가능한 거였어요. 돈은 부족했지만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TV에 나오는 배우들을 부러워하지도 않았고요. 그저 동료 배우들과 그날그날 연기 이야기 하고 부딪히고 이겨내면서 연극 한 편 무대에 올리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그날 공연을 잘 마치고 동료들과 밥 먹는 거만으도 행복했거든요.
오히려 지나온 그 시간이 지금의 박성훈을 잡아주고 있는 걸 수도 있겠어요.
그렇죠. 얼마나 감사해요. 햇빛 잘 들고 따뜻한 물 잘 나오는 집에 살고, 먹고 싶은 걸 사 먹을 수 있는 지금, 연기로 돈을 벌 수 있는 지금이 너무 황홀하고 감사하죠.
종종 그 처음의 마음을 좀 떠올리기도 해요?
매일 집에 들어갈 때마다요. 영화 <기생충>에 나올 법한 지하방에서 7년 정도 살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집에 들어설 때마다 놀라요. ‘여기가 내 집이라니!’ 하면서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