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부산의 열흘이 관객과 영화인의 활기로 가득할 수 있었던 근간에는 프로그래머들의 열정과 헌신이 분명히 자리한다. 세계의 기쁨과 아픔에 다가가고, 강단 있는 패기로 무장하고, 일상 또는 시대에 필요한 사유를 전하는 작품들을 폭넓게 살피며 영화의 본질에 대해 부단히 고민해온 사람들. 올해도 풍성한 라인업을 준비한 7인의 프로그래머가 개인적인 애정을 담아 추천작 5편을 전해왔다. 서른 번째 영화 축제의 스크린 너머로, 저마다의 감상이 극장을 다채롭게 채워주기를 기대하며.
Korean Cinema
정한석 집행위원장
올해의 경향 이번에 부산을 찾는 한국 상업영화가 전부 흥미롭다. 특히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선정된 <굿뉴스>와 ‘한국영화의 오늘 : 스페셜 프리미어’로 상영하는 5편이 눈길을 끈다. 중저 규모 예산으로 만든 영화를 중심으로 선보이는 ‘한국영화의 오늘 : 파노라마 섹션’의 다양성도 주목받기를 바란다.
영화계 화두 AI 영화의 부상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물론 영화란 언제나 기술 옆에 있었기에 이러한 발전을 인지하고 때로는 받아들여야 하지만, 세심하고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창작이란 인간의 한계와 제약 속에서 일어나는 행위라는 점에서 더 큰 감동을 전하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프로그래머의 일과 삶 과거 영화 애호가와 평론가로 지내던 날들과 달리, 프로그래머로 활동하다 보면 업무와 연관된 작품에 집중해야 한다. 그래서 영화제가 끝난 이후 몇 달 동안은 해외의 고전영화 등 일과 관련 없는 작품을 일부러 찾아 보는 편이다. 영화 관람이 내게 오래도록 좋은 경험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영화를 통한 만남 최근 몇 년간 한국 신인 감독들이 패기와 도발의 기운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좋은 영화란 대체로 이상하고, 이미지에 대한 감각이 제멋대로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영화를 만난다면 프로그래머로서도, 관객으로서도 무척 반가울 것 같다. 자신만의 고집스러운 독창성으로 빛나는 작품들을 기다린다.

한창록 <충충충>
영화의 주인공이 페데리코 펠리니의 <길>에서 앤서니 퀸이 연기한 잠파노를 연상시키며 기이한 감동을 안긴다. 거칠고 순진하며 무식하지만, 절절한 순애보를 지닌 인물이다.

유재인 <지우러 가는 길>
두 여고생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배우 심수빈이 윤지를, 이지원이 경선을 연기한다. 두 신인 배우의 연기가 훌륭하고 서로 간의 호흡도 참 좋다.

박찬욱 <어쩔수가없다>
이병헌이 뛰어난 배우인 건 말할 것도 없지만, 그가 코미디의 귀재라는 사실은 더더욱 회자되어야 한다. 그는 <어쩔수가없다>에서도 심난한 드라마 속 코믹한 몸짓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김진유 <흐르는 여정>
수십 년 전 김혜옥 선생을 어떤 계기로 만나뵌 적이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 느낌을 이 영화에서 다시 한번 고스란히 받아 놀라웠다.

정용기 <완벽한 집>
‘선이 굵다’는 느낌이 단번에 드는 배우가 있다. 이 영화에서 배종옥이라는 대배우를 상대하는 장규리 배우를 마주한 순간, 그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