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나온 발자취를 기념하며 어느 때보다 성대한 축제의 막을 올린다.
아시아 전역에서 도착한 다채로운 신작과 세계적인 거장들의 수작, 한국 영화의 확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크린을 수놓는다. 올해 부산은 다시 한번 영화의 힘으로 도시를 환히 밝힌다.
거장들의 귀환
WRITER 이윤영(시네마토그래프 대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는 많은 영화 팬이 가장 먼저 눈 여겨볼 섹션은 단연 ‘아이콘’일 것이다. 반가운 이름으로 가득한 이 섹션은 지난해보다 무려 16편이 늘어난 총 33편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그중 시선을 사로잡는 작품은 라두 주데 감독의 <드라큘라>다. 제목만 보면 단순히 고전을 각색한 작품이라 예상하기 쉽지만, 라두 주데답게 전형적인 재해석과 거리가 먼 폭탄 같은 작품을 내놓았다. AI 생성 이미지에 종교, 정치, 젠더 등 루마니아의 사회문제를 뒤섞어 폭로하듯 제시하는 이 영화가 국내 관객에게 어떤 감상을 이끌어낼지 기대를 모은다. 또 다른 이름은 라슬로 네메스다. 그는 홀로 코스트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사울의 아들>의 감독으로, 2018년 <선셋> 이후 7년 만의 신작 <나의 이름은>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또 다른 감독으로는 실뱅 쇼메가 있다. 섬세하면서도 풍부한 감정을 담아 큰 울림을 선사해온 그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 이후 12년 만에 장편 애니메이션 <마르셀의 멋진 인생>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향수 어린 감정을 느껴본 관객이라면 이번 신작이 다시금 잊지 못할 경험으로 각인될 것이다.

거의 매년 부산을 찾는 반가운 감독들의 신작도 여럿 볼 수 있다. 먼저 필리핀의 거장 라브 디아즈 감독의 신작 <마젤란>은 오래도록 흑백 작업을 고수해온 그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컬러 영화다. 강렬한 색감을 지닌, 다소 이질적인 이 작품은 그의 필모그래피에 새로운 변곡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다르덴 형제의 <엄마의 시간>은 청소년 미혼모의 이야기를 다루며, 미혼모가 겪는 고립과 생존의 문제를 감독 특유의 리얼리즘으로 밀착해 그려낸다. 대만 슬로 시네마의 거장 차이밍량의 신작 <집으로>는 감독이 오래도록 이어온 ‘행자’ 연작이 아닌 완전히 다른 방향을 모색한 작품이라 밝힌 만큼, 그의 새로운 세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문학을 대담하게 영화로 끌어온 두 작품, <프란츠 카프카>와 <프랑수아 오종의 이방인>이 동시에 눈에 밟힌다. 독일의 노장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이 연출한 <프란츠 카프카>는 카프카의 삶을 조명한 전기영화이고,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연출한 <프랑수아 오종의 이방인>은 알베르 카뮈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과감한 시도가 돋보이는 영화다. 문학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조차 친숙한 작가와 작품을 스크린에 옮겨온 두 감독의 해석이 영화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 표현될지 주목 된다.

마지막으로, 많은 관객이 고대했을 세계적 감독들의 신작이 한자리에 모인다. 미셸 프랑코 감독의 <드림스>,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누벨바그>,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미러 NO.3>는 동시대 작가주의 영화의 최전선을 보여준다. 쥘리아 뒤쿠르노, 캐스린 비글로, 요르고스 란티모스처럼 장르와 형식을 과감히 실험하는 감독들의 이름도 눈길을 끈다. 또한 올리비에 아사야스는 <크렘린의 마법사>, 요아킴 트리에는 <센티멘탈 밸류>, 켈리 라이카트는 <마스터마인드>, 코고나다는 <빅 볼드 뷰티풀> 등 현재 영화계를 이끄는 주요 감독들 역시 신작을 들고 부산을 찾는다. 짐 자무쉬, 노아 바움백, 폴 그린그래스 등 노련한 감독들의 귀환도 반갑다. 여기에 흘리뉘르 파울마손의 <사랑이 지나간 자리>, 카를라 시몬의 <로메리아> 같은 유럽 신예 감독들의 작품까지 더해지며, 아이콘 섹션은 그야 말로 지금 세계 영화의 지형을 한눈에 펼쳐 보이는 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