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나온 발자취를 기념하며 어느 때보다 성대한 축제의 막을 올린다.
아시아 전역에서 도착한 다채로운 신작과 세계적인 거장들의 수작, 한국 영화의 확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크린을 수놓는다. 올해 부산은 다시 한번 영화의 힘으로 도시를 환히 밝힌다.
확장된 시선, 마주하는 세계
WRITER 임유청(영화 도서 전문 편집자)
색다른 시선을 제시하며 영화의 지평을 확장하는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는 와이드 앵글 섹션. 올해는 한국 단편 경쟁 부문에서 반가운 이름들이 눈에 띈다. 아이돌 성범죄 사건과 감독 자신의 K-팝 팬덤 정체성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 <성덕>을 연출한 오세연 감독의 새로운 단편 <이상현상>에서는 시인 김복희, 황인찬의 시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으로 활약 한다. 성장하는 동시대 여성 서사를 지켜보는 즐거움도 크다. 파트너를 잃은 아티스틱 스위밍 선수의 상실감을 인상적인 수중 장면으로 그려낸 김은서 감독의 <백파이크>, 맞선 자리에 나간 여성의 ‘아주아주 이상한’ 상상을 빌려 여성 섹슈얼리티를 탐구한 송희숙 감독의 <베리 베리 스트레인지 러브>, 곧 보육원에서 나가 자립해야 하는 소녀가 배우의 꿈을 위해 ‘소원을 이뤄주는 굴다리’를 찾는 이야기인 이나경 감독의 <빛 속으로> 등이 있다. 장르적 재미도 기대할 만하다. 스톱 모션과 타임랩스를 활용한 이유현 감독의 애니메이션 <꽃 사진을 찍는 남자>, SF 판타지와 청춘의 아련함이 만나는 임진환 감독의 <사라지는 세계>, 층간 소음 이라는 공포로 시작되는 최지혜 감독의 <노이즈 캔슬링> 등이 기대를 모은다.

아시아 단편 경쟁 부문에서는 여성과 퀴어, 생태와 공동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문제의식이 각 지역에서 발현되고 소화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내 이름은 리아나> <바다에 없는 섬> <골짜기에서> 세 작품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고자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사회를 비추는 <카린지의 비극>과 <열매>, 커밍아웃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마음이 열리는 시간>도 주목할 만하다. <갇힌 공간 너머>와 <매복>은 각각 인도네시아와 요르단의 공간을 개인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에서 통찰한다.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는 특별한 인물을 중심에 두고 그들의 삶의 방식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는 작품들이 포진해 있다. 최정단 감독은 시대의 인문학자 김우창의 집을 배경으로 21년간 그의 삶과 사유를 기록한 영화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로 관객과 만난다. 고효주 감독의 <이어달리기>는 ‘파란 바지의 의인’으로 불리는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동수 씨와 가족들의 트라우마를 그리며, 왕민철 감독의 <단지, 우리가 잠시 머 무는 곳>은 곰 농장을 생추어리로 바꾸려는 ‘프로젝트 문 베어’ 팀을 이끄는 1990년대생 여성 4인의 이야기다. 키르기스스탄 공직자 부패 문제를 파헤치다 체코의 언론사 사무실에 갇혀 살게 된 부부의 싸움을 당사자의 시선으로 전하는 <패닉 버튼>, 중국의 사회문제로 떠오른 방치 아동 문제를 짚어내며 열다섯 살 소년 아디의 성장을 그린 <바이마 소년>, 팔레스타인의 영화관 ‘시네마 예닌’의 마지막 영사기사를 조명한 <나의 친애하는 후세인>도 흥미롭다. 태백 광산의 마지막 광부들의 이야기 <이슬이 온다>, 오사카 재일 조선인 집단 거주지의 기억을 말하는 <이카이노 전기>, 동남아시아의 볼룸 신을 다룬 범아시아 퀴어영화 <10점 만점에 10점>도 지나치기 어려운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서도 주목할 만한 작품을 대거 소개한다. 먼저 마민지 감독의 <착지연습>은 예술계 성폭력 피해자, 생존자, 연대자들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모임 ‘상-여자 착지술’을 결성하고 운영하는 과정을 담았다. 부동산 투기가 빚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감독 자신의 가족사를 통해 들여다본 <버블 패밀리> 를 연출한 마민지 감독의 신작으로, 감독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학살과 폭력의 한가운데에서 생겨나는 비극의 후일담을 전하는 영화도 있다. <영혼을 손에 품고 걷는다>는 유배된 이란 감독 세피데 파르시와 가자 지구의 사진작가 파트마 하수나가 평화에 대한 희망을 나누며 이어간 우정의 기록이자, 전쟁이 앗아간 수많은 목숨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