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나온 발자취를 기념하며 어느 때보다 성대한 축제의 막을 올린다.
아시아 전역에서 도착한 다채로운 신작과 세계적인 거장들의 수작, 한국 영화의 확장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한자리에 모여 스크린을 수놓는다. 올해 부산은 다시 한번 영화의 힘으로 도시를 환히 밝힌다.
주먹의 영화, 투쟁의 초상
WRITER 차한비(영화 기자)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는 살아 있는 이탈리아 영화사의 얼굴이자 여전히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거장 마르코 벨로키오의 특별전을 마련한다. 1965년 데뷔작 〈호주머니 속의 주먹>으로 영화계에 등장한 감독은 이후 60년 넘는 세월 동안 권력과 부정에 맞서는 작품들을 내놓으며 독자적인 영화 언어를 구축해왔다. 가톨릭과 가족제도, 파시즘과 마피아, 교육과 종교 같은 권위적 체계를 해부하고 저항하는 인물들을 그려온 그의 영화는 언제나 시대와 정면으로 맞붙는 서사였다. 이번 특별전은 그 궤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야심찬 기획으로, 청춘의 분노부터 역사적 비극,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개인의 투쟁까지 폭넓게 그려낸 8편의 작품이 ‘주먹의 영화’라는 이름 아래 요동치는 얼굴을 내민다.

그 출발점은 올해로 개봉 60주년을 맞은 <호주머니 속의 주먹>이다. 벨로키오는 이 데뷔작에서 가톨릭적 권위와 가족제도의 금기를 가차 없이 깨뜨렸다. 신성시되던 종교의 도덕률을 무너뜨리고, 병들고 불안한 청년이 폭력으로 치닫는 과정을 통해 가족의 해체를 그린 서사는 당시 이탈리아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다. 상영 중지 움직임까지 일어났지만, 작품에 새겨진 급진성은 이탈리아 영화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혔다. 이후 1980년작 <허공으로의 도약>에서는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남매의 정신적 혼란을 추적하며 다시 한 번 대담한 가족극을 완성했고, 레이몽 라디게의 소설을 각색한 <육체의 악마>를 통해서는 청춘의 욕망과 시대의 상처를 결합한 에로틱 정치극으로 파시즘의 잔재를 들춰냈다.
단순한 사회 비판을 넘어 인간 내면의 균열을 깊이 응시하던 감독은 2000년대 이후 이탈리아 현대사의 격랑으로 시선을 옮겼다. <굿모닝, 나잇>은 1978년 이탈리아 총리 알도 모로가 무장 조직에 납치된 사건을 테러리스트의 시선에서 재구성하며, 개인의 신념과 국가 권력이 충돌하는 순간을 서정적 몽타주로 구현했다. 이어 <승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재자이자 파시즘의 창시자로 불리는 베니토 무솔리니의 숨겨진 연인 이다 달세르의 비극을 통해 파시즘의 역사를 여성 서사로 재해석해 풀어냈다. 시대의 절망과 개인의 울분이 겹쳐지는 이 작품은 역사극이자 멜로드라마로, 정치와 개인을 연결하는 마르코 벨로키오의 고유한 시각을 살펴볼 수 있다.

최근작에서는 감독의 개인적 영역이 한층 두드러진다. <마르크스 캔 웨이트>는 스물아홉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쌍둥이 형제 카밀로의 존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자전적 다큐멘터리다. 벨로키오는 형제의 흔적을 뒤쫓으며 자신의 60년 영화 인생을 가족사와 교차시키고, 창작의 근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고백한다. 그런가 하면 <익스테리어, 나잇>에서는 다시 알도 모로 납치 사건으로 돌아간다. TV 시리즈 형식으로 알도 모로의 이야기를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하고, 다양한 시각과 견해를 중첩하며 국가적 비극의 진실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이는 마르코 벨로키오가 꾸준히 천착해온 주제의 연장이자 감독이 여전히 동시대적 감각을 잃지 않고 형식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음을 입증한다.

이번 특별기획의 하이라이트는 신작 <뽀르또벨로>다. 실존 인물 엔조 토르토라의 삶을 따라가는 이 영화는 국민적 사랑을 받던 TV 프로그램 진행자가 마피아 연루 혐의로 하루아침에 몰락한 실화를 다룬다. 부당한 체포와 재판, 유죄판결에 이어 뒤늦은 무죄판결에 다다르는 사법 투쟁기이자 한 인간의 내면을 파괴하는 거대한 힘에 관한 고발서다. 언론과 법 그리고 마피아가 얽힌 이탈리아 사회의 복잡한 현실을 예리하게 포 착하며, 권력과 제도의 폭력이 낳은 비극을 진중한 필치로 기록한 영화다. 결국 이번 특별기획은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억압과 불의에 저항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호주머니 속의 주먹>의 알레산드로 에서 <승리>의 이다 달세르, <뽀르또벨로>의 토르토라에 이르기까지 벨로키오의 인물들은 언제나 체제와 맞서 싸운다. 때로는 파괴적이고 고통스럽지만, 그 투쟁의 여정은 곧 이탈리아 현대사의 초상이다. 60년이 넘는 영화 여정 속에서 마르코 벨로키오는 여전히 주먹을 단단히 움켜쥔 채 묻는다. 정의는 누구를 위한 것이며, 저항하는 힘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