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뛰어난 작품성과 독창적 시선을 지닌 영화와 감독을 소개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비전’ 섹션이 올해 보다 넓고 다양한 세계를 마련했다. 한국 영화를 넘어 아시아 영화로 확장된 2025년 비전 섹션에는 총 23편의 선정작, 24인의 감독이 함께한다.
모두가 위기라 말하는 시기에도 어디선가 새로운 영화가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음을,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는 이들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근사한 영화가 부산에서 열흘간 관객과 만난다. 바라는 대로, 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끝내 나의 영화를 완성한 감독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내 영화의 일면에 대해 물었다.
이광국, <단잠>
3년 전 자살한 남편의 기일이 다시 다가온다. 인선은 이번 기일 전에 남편의 유골을 뿌려주기로 결심하고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하는 딸 수연을 동해시의 집으로 부른다. 아직 아빠를 보내줄 준비가 되지 않은 수연은 인선의 결정에 반대하고, 고향 마을을 돌아다니며 아빠를 추억한다.

영화의 시작
첫 영화를 만들 때부터 자살이라는 소재가 직간접적으로 내 영화에 들어와 있었다. 의식적으로 계속 다루려 한 것은 아닌데,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 같다. 하루 평균 4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다양한 이유로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있는 현실과 함께 그 빈자리에 허망하고 비통하게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망자와의 온전한 이별조차 결코 쉽지 않은 자살 유가족이 이상하고 지독하며 잔인한 편견 속에서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다. 그들의 깨어지고 흩어진 조각들을 조금씩 모아서 함께 생각해보고자 <단잠>을 만들었다.
영화 속 언어
남편을 잃고 자살 유가족이 된 인선이 딸 수연에게 “아빠… 사람들한테 차라리 자살이라고 말하지 말 걸 그랬나?”라고 힘없이 묻는다. 수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텅 빈 눈으로 엄마를 바라본다. 이야기의 조각들을 찾아다닐 때 처음 떠오른 대사다. 이 대사를 통해 칼날 위에 서 있는 것만 같은 인선과 수연의 여러 모습이 조금씩 그려지기 시작했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영화를 준비하고 완성하기까지 모든 날이 즐거움과 두려움의 연속이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거나 후반 작업을 할 때보다 현장에서 일하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모든 변수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아슬아슬하게 조각을 맞추어가야 하는데, 어려움이 크지만 그만큼 생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배우들은 물론이고, 여러 파트의 조화와 고도의 집중을 필요로 하는 롱테이크 장면을 찍을 때의 긴장된 순간을 좋아한다. 모든 인물이 캐릭터를 떠나 촉촉한 온기를 가진 사람으로 담길 수 있기를 바라며 선택한 모든 과정이 즐거움과 두려움을 함께 안기는 것 같다.
영화로의 인도자
다섯 살 무렵 처음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는데, 크리스토퍼 리브 주연의 <슈퍼맨>이었다. 한 번 더 보겠다고 울면서 누나에게 고집을 부리는 나를 보고 계단에 앉아 영화를 다시 보게 해준 극장 직원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처음 만나는 강렬한 환상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홍상수 감독을 만났다. 그가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 시간들을 지나 지금 운 좋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다만 나를 영화의 세계로 이끈 것이 <슈퍼맨>인지 홍상수 감독인지는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
나에게 영화는
모르겠다. 막연히 어떤 사람을 계속 찾아 다니는 느낌이 든다. 보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고, 빌려준 물건을 받아야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무언가를 돌려주어야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고해성사를 하듯 온전히 무언가를 털어놓으며 그 앞에서 마음껏 울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고, 한바탕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주먹을 휘두르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을 찾는 건지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를 애타게 찾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 사람을 언젠가는 꼭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샤흐람 모크리, <흑토끼 백토끼>
이란의 고전영화를 리메이크하는 한 감독이 있다. 그의 현장에 오디션을 보겠다며 한 여성이 등장한다. 한편 또 다른 한 여성은 부유한 남자와 결혼했지만 감옥 같은 일상에 지쳐간다.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세 사람은 어떤 사건으로 얽혀 있다.

영화의 시작
이 영화의 기반이 되는 특정한 순간 하나를 언급하긴 어렵다. 아이디어는 단편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차곡차곡 쌓이다 한 편의 영화로 응결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 순간을 짚자면, 인간의 삶보다 훨씬 더 오래 존재해온 사물들과의 만남을 언급하고 싶다. 과연 이 사물들은 이전 주인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미 떠나간 이들에게 여전히 애착이나 헌신의 마음을 품고 있을까? 이 질문에서 영화가 시작되었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부분은 토끼 에피소드다. 그 순간에는 영화의 논리가 혼돈 속으로 무너져 내린다. 지금 돌이켜보면 일종의 순수하고 억제되지 않은 광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 장면을 더 사랑한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이 과정은 두려움으로 시작되었다. 타지키스탄이라는 낯선 나라에서 영화를 만든다는 두려움. 다른 문화 속에서 사는 협업자에게 다소 실험적으로 보일 수 있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설득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시네마 문화의 차이에서 가장 큰 기쁨을 발견했다.
영화로의 인도자
어린 시절의 나는 배우를 꿈꿨다. 알랭 들롱의 영화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미후네 도시로와 브루스 리의 기량을 존경하게 되었다. 물론 어린 시절에 본 애니메이션들도 나의 일부로 남아 있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나에게 “더 많은 영화를 만들어라. 망설이지 마라. 작품과 작품 사이에 그렇게 긴 공백을 두지 마라”.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는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만든 모든 영화는 내가 사랑한 작품들이었으며, 그 안에는 언제나 나 자신이 담겨 있었다. 나는 영화에 대한 사랑이 아닌 다른 이유로 영화를 만든 적이 없다.
손경수, <아코디언 도어>
어릴 적 미아가 됐을 때 자신에게 글 쓰는 재능을 주는 존재가 찾아왔다고 믿는 문학 소년 지수. 친구라고는 과학 괴짜 종윤뿐인데, 어느 날 축구 소녀 현주가 전학 온다. 그 무렵부터 지수는 이상한 꿈을 꾸게 된다.

영화의 시작
영화와 계속 멀어지던 무렵, 누군가 내 단편영화에 대한 감상을 들려주었다. 그 말을 듣는데 단편영화를 만들던 몇 년 전 내가 순간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나와 지금의 비루한 내가 과연 같은 인물인가, 이 질문으로 영화 <아코디언 도어>를 시작했다.
영화 속 언어
“어차피 평범해질 운명이었다.” 어느 분야에서건 한 번쯤 날아올라보았을 모두에게 닿을 수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가장 순수하고 가장 멀리 보던, 그 건방지던 시기가 영화를 통해 상기되었으면 좋겠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지수의 교무실 독백 장면. 중요한 장면을 초반에, 그것도 롱테이크로 찍게 되어 부담감이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다. 그런데 문우진 배우가 연기를 시작한 순간 나를 포함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숨을 죽이며 지켜볼 정도로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배우들을 더 믿으며 촬영할 수 있었다. 문우진, 이재인, 옥지영 배우의 연기를 감상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영화를 만들면서 후회하고 싶지 않다는 열망이 워낙 강해 솔직히 즐거운 기억은 거의 없다. 장편영화를 찍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 기다린 탓인 것 같은데, 그래서 매 순간 긴장한 채로 최선의 선택을 했고, 흙밭에서 구르듯 처절하게 연출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나는 편이라 김진형 촬영 감독과 박서영 스크립터가 정신 차리라며 멱살을 잡은 채 끌고 가준 적이 많다.
영화로의 인도자
이번 영화에 함께한 김진형 촬영감독이 대학교 1년 선배다. 성적에 맞춰 영화과에 왔을 뿐인 나를 영화 세계로 초대하며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퍼니 게임>을 추천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영화란 ‘프레임’을 가지고 하는 거라는 사실을 배웠다. 무서운 장면 없이도 너무나 무서운, 머리를 퍽 맞은 것 같은 작품이었다. 지금은 오즈 야스지로와 에드워드 양 감독을 좋아한다. 진실의 순간은 어떤 이유와 논리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나에게 영화는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마법’ 같다. 나에겐 황홀경을 주지만, 영화 밖 사람들(<해리 포터>에서는 머글)이 보기엔 “그래서 뭐 하는 건데” 싶은. 영화인끼리는 서로 누가 대단하다며 치켜세우다가도, 가족 행사에 가서는 잔소리에 방어하려고 나를 설명하는 말이 길어질 때면 더욱 <해리 포터> 속 상황 같다고 느낀다.
레자 라하디안, <판쿠의 시간>
임신한 젊은 여성 사르티카는 도시를 떠나 해안가의 작은 마을에 당도한다. 그녀는 작은 커피숍에 정착하게 되었지만, 주인은 그에게 남성 손님의 무릎에 앉아 커피 내리는 일을 시킨다. 고단한 삶 속에서도 사르티카는 아들을 보며 힘을 낸다.

영화의 시작
인도네시아의 판타라라는 지역에서 삶을 일구는 이들에게서 비롯된 영화다. 원래는 그곳에 다른 영화를 찍으러 갔는데, 사람들이 그저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고, 그 마음을 따라가는 시간이 <판쿠의 시간>으로 완성되었다.
영화 속 언어
“선택이라는 건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다. 사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이 영화가 경계 밖 사람들의 삶을 포착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애정을 느낀다. 사르티카를 포함한 인물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을 특별하게 여기거나 외면하지 않고 그저 거쳐야 할 일로 받아들인다. 그들을 보며 선택지가 있는 삶이란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깊이 깨닫게 됐다.
바라는 대로
솔직히 대부분의 장면이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게 영화의 아름다움이다. 언제나 마법이 스며들 여지를 주는 것.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도, 나는 그 장면의 본질을 잃지 않는 선에서 해결책을 찾아 앞으로 나아간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기쁨과 두려움은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최고의 조합이다. 두 감정이 교차하는 그 순간에야말로 가장 큰 해방감을 느낀다.
나에게 영화는
삶의 반영이다. 때로는 더 크게, 때로는 그 반대로 확장되기도 한다.
김진유, <흐르는 여정>
춘희는 병원과 가까운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한다. 이삿짐 중 그랜드피아노를 옮기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데, 8층에 사는 민준의 제안으로 피아노를 민준의 집에 두게 된다. 춘희는 먼저 떠난 남편이 남긴 각진 그랜저 차량과 피아노를 매일 닦는다.

영화의 시작
다큐멘터리 <류이치 사카모토: 코다> 속 사카모토 류이치가 지휘하는 장면을 보며 그의 손짓이 수어 통역사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농인의 사랑 이야기 혹은 진한 멜로드라마를 영화로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영화 속 언어
“삶이란 끊임없이 쌓이는 먼지를 닦아내는 것, 죽음이란 그저 먼지가 쌓이는 것.”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흐르는 여정>이 평소 멀게만 느껴지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첫째로 춘희와 민준이 아파트 복도에 나란히 서 있는 장면. 춘희와 민준의 뒤로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둘째는 춘희와 나경이 거실에 누워 감자 팩을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두 배우의 깊이를 볼 수 있을 거다. 셋째는 춘희, 민준, 성찬이 서로를 끌어안는 장면. 또 다른 가족의 탄생이라 생각한다.
바라는 대로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낙산사를 생각했는데 예상대로 섭외가 굉장히 어려웠다. 그래도 직접 찾아가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노력한 끝에 겨우 촬영 허가를 받았고, 그 덕분에 아름다운 장면을 영화에 담을 수 있었다. 영화가 바라는 대로 다 이루어진다면 참 행복하겠지만, 실은 현실에 부딪혀 결국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자 다짐하고 나아가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끝까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여러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마무리 짓고도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많았다. 물리적 시간과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두려움이었다. 완성해가는 과정에서 영화를 하려는 목적 혹은 동기가 흩어지고 흐려지는 경험을 하는 가운데, ‘이 영화를 꼭 완성해야 할까?’하는 고민도 있었다. 그래도 함께한 배우와 스태프들을 생각하면서 마무리하려고 노력했다. 즐거움은 첫 상영 날에 느끼고 싶다. 부디 첫 상영 날에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로의 인도자
<파이트 클럽> <라이언 일병 구하기> <포레스트 검프> <나 홀로 집에> <페어런트 트랩> 등 미국 영화를 좋아했다. 그러다 강릉씨네마떼끄란 곳을 알게 되면서 영화의 세계가 확장되었다. 그곳에서 앨프리드 히치콕, 오즈 야스지로, 왕가위, 허우샤오시엔, 에드워드 양, 켄 로치 등 아주 많은 감독의 작품을 보게 되었다. 어떤 한 작품이 아니라 아주 많은 영화들이 나를 영화의 세계로 안내해준 것 같다. 2005년부터 자원 활동가로 시작해 현재 집행위원장까지 맡고 있는 정동진독립영화제의 상영작 감독에게도 매해 영향을 받고 있다.
나에게 영화는
강릉 주문진이라는 바닷가 마을에서 나고 자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었던 건 영화 덕분이다. 내게 영화는 일방적으로 말을 거는 상대라고 할 수 있다. 영화가 좋다기보다는 영화가 나에게 말을 걸어주니 조금 다가가보자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영화한테 말을 걸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서른까지 해보고 안 되면 다른 일 찾자 했는데, 첫 장편 <나는보리>를 서른 언저리에 찍었다. 첫발을 내딛던 나에게는 잘 버텼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두 번째 장편 인 <흐르는 여정>을 마친 미래의 나에게도 같은 말을 남길 수밖에 없다.
호위딩, <AI엄마>
가까운 미래, 열여섯 소년 라마를 이해해주는 존재는 엄마뿐이다. 그런 엄마가 예고 없이 혼수상태에 빠지자 라마는 해커 친구의 도움으로 엄마의 온라인 흔적을 학습한 AI를 만들어낸다.

영화의 시작
늘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이번 작품은 한 소년이 스크린(혹은 거울) 속 에서 엄마와 대화하는 모습이 시작점이었다. 기나 S. 누르(Gina S. Noer)가 쓴 시나리오를 읽으며 그 안에 담긴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인간과 AI의 관계에 대한 통찰에 압도되었다. 더불어 이 영화는 가까운 미래와 자연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함께 보여준다. AI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자연이 지닌 의미를 환기한다는 점이 신선했다. 두 가지 모두 지금 우리에게 유효한 화두다.
영화 속 언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억은 앞으로 나아갈 때에만 가치가 있다.”
바라는 대로
준비 단계부터 오프닝 시퀀스가 이 영화의 핵심이라 생각했다. 영화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엄마라는 인물과 자연적 요소를 모두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대 지역에서 새벽의 ‘매직 아워’는 고작 5분 남짓 지속된다. 그 짧은 순간을 담는 게 가장 큰 도전이었다. 겨우 두 테이크를 찍기 위해 3일 동안 새벽 4시에 기상한 배우와 제작진 덕분에 원하는 장면을 담을 수 있었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내 영화 속 인물들이 그렇듯, 나 역시 제작 과정에서 온갖 감정을 거친다. 기쁨, 두려움, 초조함, 불안, 열등감, 확신, 의심, 스트레스, 욕심, 부정.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을 지나고 스크린에서 완성된 결과를 마주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영화 속 나의 영웅(주인공)처럼, 하나의 여정이 끝났다는 점에서.
영화로의 인도자
영화 리뷰를 쓰던 어린 시절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작품을 주로 다뤘고, 여전히 그의 영화를 즐겨 본다. 그의 영화 언어는 일본이라는 배경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갖고 있다. 감독으로서 늘 그런 감각을 닮고 싶다. 그가 만든 영화를 보며 스스로에게 ‘나라는 사람과 관계없이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인 나는 이런 이유로 지금까지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왔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언어인 영화로 세계와 소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