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속에서 세계를 응시하고, 불합리와 균열을 들여다보며,
심원의 차원으로 사유를 끝내 밀고 나가는 일, 작가 이불이 오랫동안 해온 것들.




1980년 후반, 이불은 등장했다. 허공에 몸을 매달고, 그로테스크한 조각을 두른 채로. 퍼포먼스와 설치, 조각을 경유해 그가 던진 질문은 한국 사회의 권력 구조와 인습적 가치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했으며, 이는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 강력한 균열을 만들어냈다. 시대의 격랑을 통과하며 이불의 시선은 점차 확장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그는 인간과 기계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사이보그의 형상과 무한히 증식하는 거울의 세계로 나아갔다.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열어줄 것처럼 보이는 기술의 완벽성이라는 신화에 의문을 제기하며 신체와 기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충돌하는 새로운 풍경을 그려냈다. 세계를 향한 질문은 여전히 서슬퍼렇지만, 이제 그것은 특정한 시공간의 현실을 넘어 인류 문명이 직면한 과제와 미래적 상상으로 확장되었다.
이 흐름의 한가운데서 탄생한 것이 건축적 조각 설치 연작 ‘몽그랑레시’(Mon grand récit, ‘나의 위대한 이야기’)다. 이 작업은 근대가 꿈꾸었던 거대한 서사―유토피아, 진보, 발전―를 눈앞에 펼쳐내면서 동시에 그것이 무너진 잔해를 함께 보여준다. 철골과 네온, 거울로 구축된 구조물은 도시의 미래를 닮았지만, 동시에 폐허의 잔해를 품는다. 기계 같기도, 미완의 건축물 같기도 한 풍경 속에서 관람객은 꿈과 좌절, 이상과 잔해가 얽혀 있는 불완전한 유토피아를 마주하게 된다.
그와의 인터뷰를 앞두고 새삼 작가 이력을 살폈다. 지난 시간들 속에서 빈번히 발견된 단어가 ‘처음’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는 늘 한국 현대미술의 처음으로 불려왔다. 1997년 한국인 최초의 뉴욕 현대미술관(MoMA) 개인전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한국인 최초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파사드 커미션의 주인공으로 초대돼 한국 작가 최초로 미술관 정문 외벽을 수놓았다. 그의 궤적은 단순한 최초의 갱신이 아니라, 동시대 예술의 경계를 확장해온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굵직한 프로젝트를 이어오던 그가 오는 9월, 한국을 찾는다. (작가는 내내 한국, 더 정확히는 고양의 작업실에 칩거해 있었음에도 이번 전시는 마치 오랜 부재 끝의 귀환처럼 느껴진다.) 리움미술관과 홍콩 M+가 공동 기획한 대규모 서베이 순회전 〈이불: 1998년 이후〉 개막을 불과 2주 앞두고, 작가를 만났다. 40여 년의 거대한 궤적 앞에서 그는 누구보다 가벼워 보였다. 대답 사이사이에 농담을 섞고, 때로는 긴 비유를 들며 대화를 이어갔다. 지나온 시간에 대해 감정을 실어 반추하기보다는 오직 지금, 이 순간에 시선을 두는 명료한 태도. 가장 날카롭게 벼려진 채로 작업을 대면하려는 모습에서, 평생을 일관되게 살아온 작가의 삶의 방식이 겹쳐 보였다.





오늘 고양시 일대에 홍수 경보가 났죠. 오는 길, 택시 창문 너머 멀리 물에 잠겨 있는 차량들을 보는데 1990년 여름, 홍수로 작가의 초기작 상당수가 소실됐던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작업실은 여기서도 멀지 않은 화전 인근이었지요?
맞아요. 도로가 이렇게까지 잠긴 건 그때 이후 오늘이 처음인 것 같아요. 화전을 지나 안쪽으로 더 들어간 곳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그때는 일대가 전부 논이었어요. 한강 둑이 무너지는 바람에 주변이 전부 물에 잠겼죠. 나도 급하니까 택시를 타고 작업실로 가는 데,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보이지 않더라고요. 사방은 온통 물뿐이고.
이후 슬프고 황망한 마음을 추스르고 홍수 현장을 자세히 기록하셨죠. 마지막에는 침수된 작품 모두를 모아 불태우며 축제를 열었고요. 직면한 비극을 작업으로 전환했던 모습마저 작가님답다고 느꼈습니다.
뭐, 작가가 그렇죠. 그래도 다행이죠. 어떻게 보면 굉장히 네거티브한 에너지인데 그걸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시도해보는 거죠.
오는 9월 4일부터 리움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이불: 1998년 이후> 를 2주 앞두고 있습니다. 약 150점이 모이는 대규모 전시죠.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작업의 큰 흐름을 볼 수 있는 전시일 거라 기대됩니다. 방대한 시간과 기록을 어떤 관점과 맥락 아래 정리하고자 했습니까.
2021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초기 10년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전시를 했기에, 이번에는 2000년 이후의 작업들을 중심으로 선보이려 했어요. 전시 타이틀이 1998년인 건 2000년 이후 작업의 단초가 될 만한 아이디어 스케치가 1998년에 있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그 시기를 언급한 것이고요. 그래서 정확히 말하면 회고전이라기보다는 ‘서베이’라는 표현이 더 맞아요. 전시에서도, 출판물에서도 그렇게 칭했습니다. 지난 30년 치의 작업을 추리기는 쉽지 않았어요. 어떤 서사적 구조를 가질 만큼 작품수가 많기 때문에 큰 주제와 맞닿는 작업들만 모으려 했습니다. 설치 연작인 ‘몽그랑레시 Mongrand récit’를 중심으로 ‘이건 반드시 한 번 묶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들을 선별했습니다.
과거 런던의 헤이워드, 베를린의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 전시 등 전시에 있어 공간의 맥락과 형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도 깊게 고민하는 편이지요. 이번 리움미술관 전시는 어떤 특수성을 염두하며 접근하고자 했나요?
리움미술관은 렘 쿨하스, 장 누벨, 마리오 보타 근대 건축의 거장들이 하나씩 설계를 맡아 완성한 곳이잖아요. 성격이 다른 근대 건축의 언어가 모여 있는 흥미로운 공간이니 처음에는 세 개의 건물 모두를 활용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각 장소마다 작품과 어떻게 연계할지 까지 고민했었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전시 규모가 너무 커지겠다 싶어, 블랙박스와 그라운드 갤러리 쪽으로 방향을 좁혔습니다. 블랙박스는 그 자체로 매우 특징적인 공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층을 오르내리는 구조가 있어서, 관람자가 사선으로 훑으며 내려가거나,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거나, 거대한 검정 구조물을 배경으로 보게 되는 등 다양한 관점과 시각이 생겨나는 곳입니다. 높낮이의 변화, 회전하는 동선 등은 단순한 건축 언어를 넘어 풍경처럼 작동합니다. 이런 특성을 고려해 전시장 내 벽을 세우지 않았어요. 벽을 세워 공간을 잘라내고, 벽 하나에 작품을 걸어 넣는 방식, 일종의 화이트 큐브처럼 주변을 지우고 작업 하나만 부각하는 방식은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제가 잘 쓰는 방식이기도 해요. 건물의 내부 구조와 특성을 살려, 작업들이 여러 층위로 겹쳐 모이면 조금만 이동해도 다른 작품이 보이고, 다른 각도에서는 또 다른 작품과 겹쳐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폴리우레탄, 포멕스, 합성 점토, 스테인리스스틸 및 알루미늄 막대, 아크릴 패널, 합판, 아크릴 물감, 바니시, 전기 배선, 조명, 280×440×300cm.
Lee Bul: From Me, Belongs to You Only 전시 전경, 모리미술관, 도쿄, 2012 ㈜하이트진로 소장

The Future is Already Here — it’s just not very evenly distributed 전시 전경 , 제20회 비엔날레, 2016
이번 전시의 중요 축인 ‘몽그랑레시’는 유토피아에 대한 열망과 그 실패들을 상상의 지형으로 구현하고, 재구성하는 설치 작업이지요. 작가가 25년째 지속하고 있는 주요 여정이고요. 그 시작을 어떻게 기억하나요?
오랫동안 이 주제로 들어오고 싶었어요. 실제 근현대사와 상상의 산물, 그리고 제 개인의 이야기를 더해 풀어내는 작업을요. 작업하고자 하는 마음은 훨씬 전부터 있었지만, 당시에는 내가 아직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세계에 대한 관점을 충분히 들여다봐야 했고, 내가 근대를 온전히 훑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내 안에서 이야기가 그만큼 쌓여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소설로 치면 초장편을 쓰겠다는 건데, 그 장대한 서사를 감당할 힘이 내게 있을까 하는 의심도 있었죠. 그러다 어느 시점을 지나며, 내게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습니다. 이 연작을 해온 지 25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동안은 국내에서 소개할 기회가 거의 없었어요. 해외에서 전시가 이뤄지면 국내로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한국에서는 선보일 기회가 적었죠. 그래서 아마 이번 전시의 작업들이 신작 위주가 아님에도 한국 관람객들에게는 꽤 낯설게 다가올 거예요.
시드니 비엔날레,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와 베를린 그로피우스 바우 미술관 전시, 아트바젤 홍콩 등 해외에서 볼 수 있었던 거대한 은빛 비행선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 역시 전시장 일부를 크게 채울 예정입니다. 시각적으로 굉장히 장대한 작품이죠. 일찍이 알루미늄, 거울, 크리스털, LED 등 반짝이는 재료들을 통해 압도적인 전시 경험을 선사해왔다는 점에서 재료를 선택하고 접근해온 과정이 궁금합니다. 빛의 다양한 속성 중 무엇에 주목해왔나요.
초기 작업에서는 위 재료들을 ‘대체품’으로써 자주 다뤘었습니다. 이후 거울과 크리스털 같은 소재들은 인더스트리얼 머티리얼 안으로 섞여 들어오면서, 단순히 반짝인다는 차원을 넘어 구조를 시각적으로 교란시키거나 작업의 주제와 연결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고요. 특정 재료와 성질에 천착하려 하려 한다기 보다 재료들이 공업적 맥락 속에서 다른 물성과 섞이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각적·구조적 변화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왔습니다. 다뤄지는 주제나 형태에 따라 재료들은 그 맥락을 달리 담아내잖아요. 거울의 경우, 공간 바닥 전체 혹은 벽에 설치해 착시 효과를 만들기도 하죠. 하지만 이 때 제가 다루고자 하는 것은 사물의 확장이나 실사와 환영의 경계 같은 의미가 아니에요. 거기에 반사되는 ‘상’ 자체, 특정한 대상을 언급하고 싶을 때 거울을 사용하는 겁니다. 또 장 누벨이 설계한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미술관의 경우 벽은 거의 없고, 전부 거울과 유리로만 이루어져 외부가 내부처럼 이어지는, 전시 난이도가 높은 곳으로 유명하거든요. 안에는 굵은 축의 기둥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보통 이 경우 가벽을 세우거나 작품을 따로 가두어 건축적 배경을 가리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반대로, 그 건축적 구조를 확장하거나 과잉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거울을 사용했었어요. 건축이 가진 언어와 그 속에 담긴 의도, 지시하는 것들과 제 작업의 다이얼로그를 강화하기 위해서였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배경음악 볼륨을 높였다가 대화가 시작될 때 음악을 줄이고 목소리를 키우면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잖아요. 이처럼 특정 기능을 위해 의도적으로 재료를 끌어오는 것이죠.
‘취약할 의향-메탈라이즈드 벌룬’은 1937년 독일 비행선 힌덴부르크호 폭발 사건에서 출발한 작업입니다. 이 작품을 두고 일전에 “폭발 사건 이후에도 인간이 기술에 새로운 비전을 실어 다시 새롭게 시도하고, 또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을 다루려 했다. 연약함, 취약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인간 운명에 대해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 있죠. 그 말을 들으며 작가님의 세계가 보다 포용적이고, 너그러워지고 있음이 느껴졌습니다.
제 작업 속에서 따뜻함까지 읽었다면 저로서는 다행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물어보거든요. ‘삶에 대한 태도가 너무 네거티브한 것 아니냐’고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 시선은 결코 그쪽에만 머물러 있지 않거든요. 직접 이야기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유머’도 내 작업과 일상에서 상당히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에요. 내 작업에서 유머를 발견해주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사실 오늘 직접 뵌 모습만으로도.(웃음)
그렇죠?(웃음) 저는 상당히 긍정적인 사람입니다. 여기서 ‘포지티브’ 하다는 건 단순히 무언가를 좋게만 본다는 뜻이 아니라,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 시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태도를 말해요. 사물의 다양한 성질, 양가적이거나 다층적인 특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간과하지 않으려는 태도죠. 그게 제가 생각하는 긍정성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빛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여러 방식이 있습니다. 빛은 그림자에 의해 드러나기도 하고, 그림자가 짙을수록 빛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저는 빛과 그림자 자체에 천착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빛과 그림자 사이의 관계와 역학, 그 상호작용에 관심이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실제 우리 삶과 세계가 그렇게 작동한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정확히 보려는 태도는 여러 이면을 보려는 시도로 이어집니다. 방향과 방법은 다양했지만, 작업의 큰 갈래가 있다면 권력 구조에 대한 재고를 유도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을 전복하고 교란하며 새롭게 쓰고자 했습니다. 거스르는 성향, 이면을 들추고야마는 기질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으신지요.
과거에는 많은 분들이 제가 늘 ‘어게인스트(against)’ 한다고, 무언가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 방식은 단순히 반항이나 전복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전복이나 교란은 그저 하나의 방법론일 뿐, 실체를 더 잘 보기 위한 접근이죠. 요즘은 일루전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런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권력 구조에 관심이 있는 건 사실이고, 제 작업 전반에 그 관심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비슷한 대상이라도 다른 관점이나 각도에서, 끊임없이 다른 요소와의 관계 속에서 바라보는 데 더 주목합니다. 그렇게 다루다 보면 어떤 이들에게는 ‘맞서는 것’처럼 보이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전복’처럼 보이는 거겠죠. 하지만 실제로 제가 ‘전복’이라는 키워드 자체에 관심 있는 건 아닙니다. 반대말에 초점을 두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가 어떤 것을 들여다보고 경험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만의 태도를 갖게 되잖아요. 제가 말하는 건 바로 그 태도 속에 이러한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겁니다.
그런 태도나 관점이 훈련된다고도 보나요?
훈련이 된다고 생각해요. 훈련을 해야만 그 태도를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이 태도는 습관적으로 반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매번 새로운 종류의 충돌과 에너지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을 예측하며 의식적으로 관점을 견지해야 하죠. 만약 그 태도를 잃게 된다면 제 작업의 동력도 함께 사라질 겁니다. 의문을 품고, 의심을 가지고, 경계를 살피는 것, 이런 것들이 제가 계속해서 관심을 두는 부분입니다.
같은 의미에서 연작 수가 많지 않다는 것, 재료나 장르 면에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 어려운 것 역시 앞서 언급한, 거스르는 성향이나 기질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기질적으로 뭔가 있겠죠. 저는 기본적으로, 나에게 쉬워지면 안 합니다. 어떤 작업을 무수히 디자인을 변경하며 쉽게 뽑아낼 수 있겠다 싶으면 작업을 멈춥니다. 그때부터는 작품이 가지고 있던 힘을 잃게 되거든요. 일종의 키치화 과정인데, 이를 굉장히 경계합니다. 제가 이 길을 선택하고 가는 이유가 단순히 ‘쉽게 잘해내기 위해서’는 아니잖아요. 관심 있는 주제를 가장 날 선, 긴장된 상태에서 작업을 하는 겁니다. 쉽게 다른 말로 하면 빨리 싫증을 느낀다.(웃음)
작가로서 가장 벼려있던 때를 이야기 할 때 1980년대 후반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 한국 미술에서는 아예 볼 수 없던 종류의 작품이었습니다. 미술계는 물론이고 동료들마저도 제 작품을 예술로 인 정하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제 작품을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몰랐기 때문에 거부할 수밖에 없었죠”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시는지요.
전기적 인터뷰를 하다 보면 초창기인 1980년대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처럼 단순히 말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모든 작가는 어떤 사건에서는 거부 당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서는 환대를 받기도 하기 때문이죠. 지금 와서 ‘거부 당했다’라는 표현을 쓰면 조금 무안하게 느껴집니다. 그보다는 ‘불합리하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도의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세계가, 인간이 얼마나 불합리한 존재인지 우리는 몸소 겪으면서 살아가고 있잖아요. 이런 맥락에서 표현을 조금 조정한다면, ‘거부했다’라는 표현에는 단순히 나와 타자만이 존재하지만 그게 아니거든요. 그런 관계가 아니에요. 훨씬 더 교묘하고 복잡한 방식으로 우리의 네트워크가 짜여 있고, 그 안에서는 절대 만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실들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하죠. 저는 그런 층위를 따라가며 훑어보고, 동시에 그 안에 있는 아주 연약한 지점들을 읽어내는 작업을 합니다. 바로 그 과정이 제가 관심을 두는 부분이에요.
작가를 계속 날 서게 하는 건 ‘세계’라는 것이죠.
그렇죠. 나를 포함한, 내가 속해 있는 이 세계.
미와 추, 강함과 허약함 등 소위 극단에 자리한 개념들을 하나의 작업 안에 엮어내는 것 역시 작가가 즐기는 방식 중 하나이죠. 이는 작가의 세계관과도 연결된다고 보십니까.
극단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때때로 다른 두 현상이 상당히 강하게 부딪히는 것처럼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그런 순간의 에너지를 좋아합니다. 흔히 ‘낙차 에너지’라고도 하죠. 조금 전 우리가 빛과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 떠오르는 일화가 하나 있어요. 영국 버밍엄에 전시 설치를 하러 갔을 때였어요. 점심을 먹으러 전시장 바로 아래 레스토랑의 야외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제가 그늘 속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레스토랑 직원이 “너는 버밍엄의 햇볕을 사랑하지 않니?” 하고 묻더군요. 그래서 “아니, 나는 버밍엄의 그림자도 사랑해”라고 답했어요. 그런 거예요. ‘빛 아니면 어둠’ 처럼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 그게 중요합니다.
작업을 완성하고 세상에 내놓는 주체는 ‘나’이지만, 때로 작업이 나를 만든다고, 만들어왔다고 느끼기도 하는지요.
저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작업이라는 게 무언가를 구상해서 ‘이 설계도대로 지으시오’ 하는 식으로만 이뤄지는 건 아니거든요. 조각은 그런 성격이 강한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실현되는 과정에서는 수많은 대면이 필요합니다. 대면하면서 계속 주고받게 되는 거죠. 회화의 경우는 이런 점이 더 극명하게 드러날 겁니다. 제작 기간이 짧으니 화가들은 훨씬 분명하게 그런 경험을 하게 되겠죠. 반면 조각가들은 비교적 인내심이 긴 편입니다. 장기적으로 실현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고, 거스를 수 없는 조건들을 고려해야 하니까요. 이를테면 중력 같은 것들이죠. 중력을 벗어나는 작업을 시도할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작업에서 중력을 거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면 그것은 강력한 조건으로 작용합니다. 그 과정에서 무수한 변경이 발생합니다. 참여하는 인원이 지나치게 많아질 수도 없습니다. 파트를 나눠 쪼개면 그것은 조각이 아니라 건축이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마도 중간에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구상을 실현시킬 수 있는 확률이 높지 않다는 걸 알기에, 실현 여부와 상관 없이 계속해서 구상을 멈추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실현을 시키든 못하든.
작업 행위 자체로부터 단련되고 수양되기도 하지요?
시행착오는 우리가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계기니까요. ‘이건 아무리 서둘러도 되는 일이 아니야, 그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돼, 다음 것을 쌓기 위해서는 밑바탕이 튼튼해야 돼’ 같은 것들이죠. 그런 시행착오를 끊임없이 대면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무언가가 형성됩니다. 지난 40여 년 동안 작업으로부터 그 어떤 영향도 받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작업에 대해 곱씹어보면, ‘작업은 나의 목숨이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의식적으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작업을 한다는 것이 어느 순간 내 삶, 내가 살아가는 방식으로 확실히 자리를 박았구나 하는 걸 느낄 때가 있습니다. 나는 작업실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사람이에요. 누군가는 농담처럼 ‘휴가 안 가냐’고 묻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욕구를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몸이 안 좋아서 못 일어날 때는 있지만, 그건 그냥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일 뿐이고요. 그런 날이 아니면 작업을 하든 안 하든, 저는 늘 가장 편안한 이곳, 작업실에 있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대 같은 곳이죠. 그래서 저의 관심은 ‘최대한 얼마나 빨리 그 무대에 오를 수 있는가’예요. 그곳에서는 오로지 나의 한계만이 문제인 거죠.
한계를 대면하는 일은 익숙해지나요?
익숙해진다고 해서 그게 ‘이지(easy)’ 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럴 땐 ‘아, 또 이러는구먼’ 하고 농담을 하죠. 아래층 작업실에 우리 팀들이 함께 있는데, 같이 있을 때는 농담도 많이 해요. ‘나의 뇌가 두부가 되어가는 것 같다’라는 식으로. (웃음) 작업을 하다 보면 한계를 대면하면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무언가를 쥐어짜듯 해야 하는 시점이 있고, 또 넘어져서 모든 것을 다 쓰러뜨리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때도 있죠. 그럴 때는 미련을 두지 말자,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요즘은 무엇을 유심히 보고 계신가요?
달력을 자주 봅니다.(웃음) 몇 가지 큰 주제를 정해두고 축을 잡아 다듬어 가는 중인데, 벌써 1년 넘게 고민해왔습니다. 내년과 후년에는, 제가 지금 다루려고 하는 주제들을 본격적으로 보여야 하는 일정이 연속적으로 잡혀 있어요. 오는 제안들을 보면 어떤 제안들은 내가 다루고 있는 주제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거나,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주제들을 어떤 식으로 얼개를 잡아 연결할지 고민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영역을 다루는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있는데, 막상 해보면 거기서 또 다른 지점들이 나오죠. 관점이라는 것이 그래서 중요한 것 같아요. 결국 무엇을 보더라도, 자신이 흥미로운 방식으로 보게 되어 있으니까요. 지금 가장 걱정되는 건, 그런 지점들을 충분히 발전시킬 시간이 있을지예요. 의심스러워. 이놈의 의심을 언제쯤 떨칠 수 있을지.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을수록 의심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보통은 나이가 들면 확신에 가까워진다고들 하잖아요. 세태나 연륜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렇고요. 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점점 더 의심이 많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수한 의심 중 왜 계속 작가로 살아가는 지에 대한 의심은 없었나요?
글쎄.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라는 질문은 안 해요. 그래서 의심이 는다고 이야기하나 봐요. 나이가 들어서 의심이 는다는 것이고, 어릴 때는 믿어 의심치 않았거든요. ‘나는 이 길을 간다’ 선언했고, 나는 ‘본 투 비’라고 확신했었어요. 젊은 나이에는 기대했던 것에 대해 크게 실망한 적이 있어서 이 업을 꺾어볼까 잠시 생각도 했지만, 그건 20대 때의 일이죠. 20대의 의심은 신중치 않고 어설펐기에 들었던 것이고요. ‘아, 이게 아니구나’라는 걸 알고 나서부터는 그냥 이 길을 달려온 것 같아요. 과거에 농담처럼 자주 했던 말이 ‘쏘아진 화살 같은 거다’예요. 날아가는 중이기 때문에 어딘가에 가서 떨어지거나 꽂히지 않는 이상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동시에 언제든 내 의지로 그만둘 수 있다고도 했어요. 지금의 나는 적어도 내 의지로 그만둘 것 같진 않아요. 인간의 숙명 같은 거대한 힘에 의해서 멈추게 될 수는 있으나 지금 굳이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싶어요. 그건 모든 인간이 동일하게 갖고 있는 컨디션이잖아요.
화살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나요?
변함없는 것 같아요. 지금 내가 날고 있는 중인가? 모르겠거든요. 날고 있다고 느껴야 멈출지 정할 텐데 그 감각이 분명하지 않아요. 내 존재의 속도를 조절해야겠다는 생각도 안 합니다. 어디로 꽂혀야겠다라는 목적도 없어요. 물론 작가들은 알게 모르게 저마다의 목적성이 있죠. 다만 내 경우에는 ‘반드시 끝내 이루고 말리라’ 식은 아니고, 관점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산다’는 그 움직임을 내가 느끼는가, 아니면 그것이 마치 서 있는 듯 자연스러워서 이게 멈춰지면 내가 좀 놀라려나? 같은 생각은 하죠.
맞아요. 자기가 움직이고 있고, 날아가고 있다는 걸 매 순간 자각하는 것도 좀 징그럽죠.
돈 거죠. 그건. (일동 웃음) 그거는 좀 돈 거야. 그런데 우리가 그런 언어를 많이 쓰잖아요. 실제로는 어떤 ‘성공’을 위해서 혹은 정해 놓은 목표를 위해서. 아주 의지가 강한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 일상 속에서 작은 목표들을 만들어 놓고 살아가죠. 산다는 걸 일종의 운동으로도 볼 수 있으니까요. 제겐 장기적인 목표는 없어요. 목표라기보다 바라는 건 있죠. 작업에 몰입하는 상태로 빨리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커요. 그렇지 못하면 주위를 빙빙 헤매고 안절부절못하게 되니 과정의 시간을 줄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작업 책상에 앉는 훈련을 10년 동안 했었어요. 작업 속으로 들어가 오직 작업과 나만 있는 세계에서 일종의 결투를 벌이는 것. 그 순간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지 아닌지조차 모를 때도 있고요. 다만 시간이 순식간에 흘러가버리는 경험들을 무척 좋아합니다. 잠깐 앉아서 뭔가 만지작거린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면 밤 10시가 훌쩍 지나가버린 걸 알게 될 때 같은. 요즘들 이야기하는 몰입이 바로 그런 건데, 그 시간이 정말 기가 막히거든요.
긴 시간 감사합니다. 마무리할까요. 요즘 또 그렇게 기쁜 순간들은 언제였나요?
많죠. 기쁜 순간들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나쁜 순간들도.(웃음) 아마 나의 좋은 성격 중에 하나는 뭔가를 그렇게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는 거? 그런 걸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