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뛰어난 작품성과 독창적 시선을 지닌 영화와 감독을 소개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비전’ 섹션이 올해 보다 넓고 다양한 세계를 마련했다.
한국 영화를 넘어 아시아 영화로 확장된 2025년 비전 섹션에는 총 23편의 선정작, 24인의 감독이 함께한다.

모두가 위기라 말하는 시기에도 어디선가 새로운 영화가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음을,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는 이들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근사한 영화가 부산에서 열흘간 관객과 만난다. 바라는 대로, 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끝내 나의 영화를 완성한 감독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내 영화의 일면에 대해 물었다.

에르케 주마크마토바 & 에밀 아타겔디에프 <쿠락>

폐쇄된 스튜디오에서 몰래 웹캠 모델로 일하던 메예림은 경찰관의 협박 대상이 된다. 한편 한 어머니는 자신의 딸이 마약에 취해 폭행당하는 사진과 영상이 유포된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로 큰 충격에 빠져 있다. 절망과 분노 속에서 그는 어떤 결심을 하게 된다. 키르기스스탄 여성 인권의 현재, 그리고 이를 뚫고 나아가는 여성들의 서사가 담긴 영화다.

<쿠락>
<쿠락>

영화의 시작

<쿠락>의 모든 사건은 실제에 기반하기 때문에, 이 영화의 아이디어에 직접적인 영감을 준 특정 사건을 꼽기는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결정적인 방아쇠가 된 하나의 사건이 있다. 2020년 초, 여성의 권리를 주제로 한 전시 <페미날레(Feminale)>에서 한 덴마크 여성 아티스트가 전시장 안을 벌거벗은 채 걸어간 일이 있었다. 이 퍼포먼스는 엄청난 스캔들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전시는 폐쇄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모두가 한목소리로 이 행위가 키르기스스탄 정신에 반하고, 민족적 전통과 관습을 어겼다고 주장했으며, 이와 동시에 페미니즘의 근간을 공격했다. 그때 나는 큰 분노를 느꼈다. 같은 해 말, 여성 인권 촉구 행진이 민족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경찰은 가해자를 체포하는 대신 참가자들을 체포했다. 반대로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행이나 살인 같은 흉악 범죄, 미성년자 집단 성폭행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지만, 이 같은 사건은 대중의 공분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일련의 사건을 마주하며 우리는 나라 전체가 깊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음을 인정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2024년 8월에 세상을 떠난 공동 연출자 에밀 아타겔디에프는 의도적으로 급진적이고 양보 없는 연출 방식을 선택했다. 우리의 맥락에서 현실은 그 자체로 너무 강렬해서 은유에 의지하는 것이 견딜 수 없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우리가 해석의 여지를 남길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러한 접근이야말로 우리에게는 가장 정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에밀과 함께 만든 우리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은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전체가 긴장감 속에서 거칠게 전개되다가,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일종의 카타르시스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때 노래가 시작되는데, 키르기스 음악 문화에서 특히 인기 있고 감동적인 노래다.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너는 나의 쓰이지 않은 노래, 너는 나의 밝혀지지 않은 비밀….” 나는 이 구절이 영화의 정신을 아주 정확하게 담아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촬영은 가장 힘들고, 가장 두렵고, 동시에 가장 즐거운 과정이다. 무언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끊임없는 두려움이 과정 자체에서 오는 끝없는 기쁨과 뒤섞여 그 경험을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최고의 촬영 팀이란 하나의 아이디어를 위해 다 함께 고통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감독은 모두 조금씩은 마조히스트적 면모를 갖고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 영화는

언제나 위험부담이 큰 도전이자 기꺼이 받아들이는 과제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반드시 정직하고, 인간적이며, 타협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의미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 관객을 성찰하게 만들고, 카타르시스와 감정적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로의 인도자

켄 로치, 다르덴 형제, 박찬욱, 마테오 가로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같은 영화인들. 그들이 만드는 작품의 핵심에는 공정하면서도 감정적인 현대 세계의 초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들의 영화는 사회적 불평등, 소외, 도덕적 딜레마, 인간의 취약성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과거와 미래의 나에게 같은 말을 하고 싶다. “잊지 마라, 너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김경래 <우아한 시체>

민주는 사랑하는 연인 벤과 3년째 만나고 있다. 어느 날, 민주는 자신이 벤의 아이를 갖게 되고, 그가 있는 나라로 떠날 결심을 한다. 그 후 그녀와 벤 사이에서 이란성쌍둥이 유진과 유하가 태어난다.

<우아한 시체>

영화의 시작

소설 <산소리>와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읽으며 써둔 짧은 메모. 그리고 지난해 여름, 개미가 잔뜩 꼬인 매미의 사체를 발견하고 냉장고에 넣어둔 일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영화 속 언어

벤의 대사. 민주가 벤을 만날 때부터 사랑에 빠질 때까지, 관객에게 벤의 말은 소리가 아닌 자막으로만 보인다. 벤의 목소리(말)는 오직 민주에게만 들린다. 이런 아이러니가 이 영화를 적절하게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바라는 대로

두 가지 바람이 있었다. 엔딩을 모른 채 영화를 찍기 시작하는 것과 두 명의 촬영감독이 번갈아 촬영하는 것. 영화를 만드는 태도와 방식에 변화를 줌으로써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낯선 방식임에도 흔쾌히 참여해준 김종수, 김진범 촬영감독에게 감사를 전한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영화를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즐겁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승민 작가와 흡연실이 있는 안국역 카페에서 아이디어를 나누며 같이 담배를 피울 때 특히 즐겁다. 반대로 촬영 스케줄이 조금씩 밀리기 시작하면 두려움이 몰려온다. 그렇지만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마주해야만 시나리오보다 더 나은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영화로의 인도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클로즈 업>. 매료된 이유에 대해선 나의 설명보다 직접 보며 경험할 것을 권한다. 같은 의미에서 홍상수 감독의 <소설가의 영화>도 언급하고 싶다.

신선 <미로>

영문은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 웃음을 잃었다. 영문에게 그날의 사고는 여전히 의문투성이다. 누구를 탓해서라도 출구를 찾고 싶었던 영문은 사설탐정 희미를 통해 진실에 다가가지만, 그간 애써 외면해온 진실은 또 다른 미로를 만들어낸다.

<미로>

영화의 시작

가끔 서점이나 도서관에 들러 무심코 마음이 닿는 책을 집어 들고, 무작위로 몇 장 읽어본다. 그중 하나가 노자의 <도덕경>이었고, 거기서 ‘이희미(夷希微)’라는 개념을 접하고 영감을 얻었다.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잡아도 잡을 수 없는 도의 본질을 영화로 옮겨보면 어떨까? 이 영화는 그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다.

영화 속 언어

영문이 희미를 찾아와 아내를 죽게 만든 남자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고 하자, 희미는 확인한 다음엔 어떻게 할 거냐고 되묻는다. 영문은 정말 그 남자가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을까? 생은 매 순간 결과를 얻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큰 흐름을 이어나가는 것일 텐데, 이를 모르는 영문에게 결론을 낼 수 없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나에게 영화는

한동안 영화가 전부인 양 살았는데, 요즘은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중요한 건 삶이고, 내 삶이 결국 영화를 지탱한다는 걸 깨달은 거다. 나의 일상이 또렷하고 건강해야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겠나.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나에게 “될 수 있으면 하지 마. 그렇지만 할 거라면 지금보단 마음의 준비를 더 단단히 해. 오래 힘들고, 가끔 좋을 거야. 그래도 그 가끔은 분명 가치 있는 일이야. 그러니 조금 더 힘내. 그리고 용기를 내”. 그리고 미래의 나에겐 “잘 웃지 못하지만, 웃는 얼굴로 보자. 내가 내게 바라는 건 그뿐이야”.

트리베니 라이 <모모의 모양>

비슈누는 델리에서 고향 마을로 돌아온다. 그곳에는 할머니와 엄마가 살고 있고, 곧이어 임신한 언니도 고향에 오게 된다. 비슈누는 전통을 따르길 바라는 가족의 기대와 자신이 바라는 삶 속에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다.

<모모의 모양>

영화의 시작

내면의 필요에서 비롯됐다. 큰 도시에서 학업을 마친 뒤 고향 마을로 돌아왔을 때, 앞으로 좇아야 할 방향과 목적에 대한 질문들에 휩싸였던 시절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가 내게 부여한 기대, 그리고 내가 스스로에게 부과한 기대의 무게를 자각하게 됐고, 심리적 압박이 어떻게 서서히 우리의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경험했다. 이 영화는 어떤 설명이나 해답을 내리려는 시도가 아니라, 무언가를 의심하고 갈망할 때처럼 연약한 순간들을 붙잡으려는 시도에서 시작됐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집안의 여성들이 모두 모이는 장면들을 가장 좋아한다. 그 장면에는 드물게 찾아오는 연대와 자유의 감각이 담겨 있다. 여성들이 남성의 시선이나 가부장적 기대에서 온전히 벗어나 그들 자신의 공간에서 서로 말하고, 웃고, 표현할 수 있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첫 촬영 날 촬영을 마치고 울었던 기억이 난다. 본격적으로 촬영을 시작하면 마냥 벅찬 기분이 들 거라 상상했는데, 마침내 출발선에 섰다는 중압감을 지나니 공허감이 밀려왔다. 기쁨과 두려움이 뗄 수없이 한꺼번에 찾아온 순간이었다. 제작 과정에서 내가 배운 건 인내하는 법이다. 영화는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나기에, 제한된 조건 속에서 감독으로서는 자신의 비전을 믿고 그것이 아주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을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인내야말로 이 여정에서 가장 진실한 감정이었다.

나에게 영화는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고, 내면을 탐구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내게 영화란 해답을 제시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연약함과 갈망,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질문들을 환기하는 일이다.

영화로의 인도자

처음으로 나를 영화의 세계로 이끈 건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이다. 그의 작품 <집시의 시간>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상상력과 힘에 압도되어 한동안 초현실적이고 마술적인 리얼리즘 요소들을 실험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사트야지트 레이, 오즈 야스지로,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을 접하며 조금씩 다른 길로 나아갔다. 그러다 누리 빌게 제일란의 영화를 만났고, 깊은 울림을 느꼈다. 그의 작업은 영화가 얼마나 친밀하면서도 동시에 철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삶을 정직하고 인내심 있게, 또 세심한 눈으로 관찰하는 법을 일러주었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모두에게 같은 말을 해주고 싶다. “인내하라(Be patient).” 처음 영화에 매료된 순간의 호기심을 지켜내고, 그것이 사라지게 내버려두지 마라. 성급히 모방하려 하지 말고, 삶과 사람, 침묵에 더 귀 기울여라. 영화를 만들며 느끼는 불확실성은 결코 네 약점이 아니다. 그저 탐색 과정의 일부이며, 바로 그 탐색이 네 시선과 서사를 형성해줄 것이다.

최승우 <겨울날들>

겨울날, 민우는 고향인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한다. 이곳에서 도현은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는 현장에서 일하고, 다연 역시 번화한 도심 속에서 자신의 일을 해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의 하루를 살아간다.

<겨울날들>

영화의 시작

첫 번째 영화 <지난 여름>은 ‘주어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농촌의 삶을 배경으로 삼았다. 그렇게 촬영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겨울날 도시의 인상은 정반대였다. 그래서 <지난 여름>에 반(反)하는 차갑고 날카로운 또 다른 현실을 영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속 언어

이번에는 어떤 말도 빌리지 않고 인위적으로 대사를 만들지도 않기로 했다. 말하지 않아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영화의 언어’ 중 하나라고 여겼다.

나에게 영화는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작품을 구상하는 시간은 삶에 큰 동력이 된다. 영화는 나를 살아가게 하고, 움직이게 한다.

영화로의 인도자

비전공자로 아무것도 모른 채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했던 때에 <밤 산책>과 <공원에서>를 만든 손구용 감독이 나를 영화의 세계로 안내했다. 그 세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만희,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차이밍량, 페드로 코스타 같은 거장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나에게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뜻을 믿고 그 길을 갈 것”. 미래의 나에게 “줍는 이가 길을 따라 걸으며, 수확하는 이가 남기고 간 흔적을 줍는다”.(시인 조아섕 뒤벨레의 말)

김덕중 <트루먼의 사랑>

이 영화는 ‘사랑의 시작’, ‘삼각관계’, ‘이별 후’라는 챕터별로 주인공이 바뀐다. 각 시점을 끌고 가는 세 인물은 자기 자신에게 고장 난 세계에서 살고 있는 특별한 사람, ‘트루먼’으로 정체화하고 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것은 ‘나를 의탁할 수 있는 딱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는 단순한 진실이다.

<트루먼의 사랑>

영화의 시작

누구나 이 세상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세상이 아주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기 시작할 때가 있지 않나? 그 시점부터 ‘그럼 나는 어떤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상황과 질문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영화 <트루먼 쇼> 의 설정을 가져왔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극 후반에 두 인물이 해안가 나무 그루터기 위에 앉아서 대화하는 모습을 롱숏으로 잡은 장면. 캄캄한 바다 너머 풍경과 두 인물의 차분한 대화가 꽤 매력적으로 담긴 것 같다. 바라는 대로 지하철 터널 같은 로케이션이 필요했는데, 안전 문제로 섭외가 어렵던 때였다. 그때 마침 시청역 지하에 용도를 알 수 없는 지하 통로를 발견했다는 뉴스 기사를 보게 되었고, 그곳에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건가 싶은 순간이었다.

나에게 영화는

무궁한 질문을 던져도 계속 선문답 같은 대답만 하는 토라진 도인 같다. 조금은 알 것 같다가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나에게는 성급하게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조언을, 미래의 나에게는 질문을 하고 싶다. 지금처럼 불규칙하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