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해 뛰어난 작품성과 독창적 시선을 지닌 영화와 감독을 소개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비전’ 섹션이 올해 보다 넓고 다양한 세계를 마련했다.
한국 영화를 넘어 아시아 영화로 확장된 2025년 비전 섹션에는 총 23편의 선정작, 24인의 감독이 함께한다.
모두가 위기라 말하는 시기에도 어디선가 새로운 영화가 끊임없이 탄생하고 있음을,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멈추지 않고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는 이들이 존재함을 증명하는
근사한 영화가 부산에서 열흘간 관객과 만난다. 바라는 대로, 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끝내 나의 영화를 완성한 감독들에게 가장 사랑하는 내 영화의 일면에 대해 물었다.
산주 수렌드란 <어느 겨울 밤>
사라와 아비는 큰 희망을 품고 델리에 도착한다. 하지만 아비가 전시회와 세미나 비용으로 사라의 돈을 써버렸고, 두 사람은 무일푼 상태가 된다. 혹독한 겨울밤을 거리에서 보낼 위기에 처한 사라와 아비에겐 서로의 존재와 그들의 친구 사이먼과 고피카, 그리고 노래가 있어 다행이다.


영화의 시작
이 영화는 내 친구에게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기반으로 한다. 친구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델리에서 일했는데, 하루는 퇴근 후 집에 돌아왔더니 집주인이 세상을 떠났고, 그의 시신이 친구의 침실에 놓여 있었다. 그리고 친구와 남자친구는 집을 비워달라는 말을 들었다. 겨울이었고, 친구들은 모두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고향으로 돌아간 상황이었다. 두 사람은 가진 돈도, 갈 곳도 없었다.
영화 속 언어
독일어에 ‘운하이마트(Unheimat)’라는 단어가 있다. ‘집 없음, 무주(無住)’라는 뜻인데, 영화의 정서와 깊이 맞닿아 있다. 이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거나 마치 집을 잃은 듯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예술의 기능을 설명하는 개념이며, 영화의 주제와도 닮아 있다.
바라는 대로
이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제작자들이 중도에 손을 떼기도 했고, 델리에서 적합한 촬영 장소를 찾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럼에도 스태프와 함께 끝까지 밀어붙였고, 결과적으로 모든 장면이 소중해졌다. 나는 ‘즉흥’ 또는 ‘확장’이라는 의미를 지닌 산스크리트어 ‘비스타르(visthaar)’라는 개념을 좋아한다. 각 장면을 섬세하게 대하면서 스스로 제 형태를 드러내고 확장하도록 맡기는 방식 말이다. 영화 속 많은 인물은 실제로 촬영하던 순간에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클라이맥스인 버스 정류장 신도 마찬가지다. 소나기를 피해 모여든 청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실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그 순간을 있는 그대로 촬영했다. 영화의 중요한 등장인물인 비도 그저 ‘우연히’ 내린 것이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이라면 이를 ‘은총(grace)’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7년 만에 영화를 다시 만들면서 무척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반드시 해내겠다는 마음이 있었고, 마침내 촬영을 시작했을 때 살아 있음을 느꼈다. 비록 여정은 길고 험난했지만, 동시에 짜릿하고 황홀한 경험이었다.
영화로의 인도자
FTII 푸네(인도 영화 TV 연구소)에서 나의 스승인 마니 카울 감독이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의 영화제작 스타일과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은 내가 세상을 완전히 다르게 바라보게 만들었다. 일본의 승려 도겐의 말을 인용하자면, “선(禪)을 공부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처음 선의 진리를 엿보면 산은 더 이상 산이 아니고, 물은 더 이상 물이 아니다. 깨달음을 얻으면 산은 다시 산이고 물은 다시 물이다”. 마니 카울의 시선을 통해 영화를 인식해온 내 경험을 대변하는 듯한 격언이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나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네티 네티(Neti Neti).” 산스크리트어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라는 뜻이다. 미리 정해진 관념에 갇히지 말고 열려 있으라는 뜻이다. 미래의 나에게는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탈리아 유바로바 <말리카>
열두 살 말리카는 이혼한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엄마는 새로운 연인과 재혼을 결심하고, 말리카는 자신의 양육권이 아빠에게 넘어가게 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말리카는 엄마의 재혼을 방해하는 것과 엄마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 사이에서 딜레마에 직면한다.

영화의 시작
공동 집필자이자 친구인 밀라나 미시에바(Milana Misieva)가 내게 어린 시절의 기억에 관해 들려준 적이 있다.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산길을 차로 달리며 있었던 일이다. 어머니가 무엇 때문인가 화가 나서 할머니와 말다툼을 벌였고, 차 안에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할아버지가 차를 멈춰 세웠다. 아무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는 조용히 트렁크에서 수박을 꺼내 자르더니 모두에게 한 조각씩 나눠 주었다. 그러자 말싸움이 가라앉았다. 가족들은 나란히 앉아 수박을 나눠 먹었고, 어린 밀라나는 차에서 흘러나오는 전통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따뜻함이 가득한 그 이야기를 들은 뒤, 나는 밀라나와 함께 삶의 심각한 문제들이 어린아이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말리카와 로자가 시골 방 침대 위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20초 정도 이어지는 장면이 있다. 벽 너머에서는 혼인이 성사된 뒤 남자들이 큰 소리로 기도를 하고 있다. 그 순간, 여성 주인공들의 연약한 세계가 로자의 새로운 세계와 맞닿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촬영 당시, 촬영감독 아이굴 누르불라토바와 나는 벽 뒤에서 실제로 기도가 울려 퍼지는 그 순간에 의도적으로 소녀들과 함께 방 안에 머물렀다. 사운드 엔지니어가 기도 소리를 담는 동안, 우리는 10분간 배우들이 귀 기울이며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을 촬영했다. 그러다 문득 두 주연배우인 이자벨라 캄피에바와 마레나 카르시에바가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 눈빛과 미소 속에는 마법 같은 힘과 깊이가 있었다. 지금도 자주 떠올려보는 선물 같은 순간이다.
바라는 대로
처음에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빈번했다. 적절한 촬영지를 찾지 못하거나, 장면이 뜻대로 풀리지 않거나. 그럴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고, 잔뜩 긴장한 채 커피를 들이켜며, 쉴 새 없이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그렇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모든 게 잘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실제로 결국 어떻게든 원하는 대로 흘러가곤 했다. 이번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운이 꽤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영화는
직업이고 일이지만, 그와 동시에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창구다. 영화에는 규율과 책임이 있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마법 같은 힘도 있다. 에너지, 인내, 믿음, 이 모든 것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것을 돌려주기도 한다. 때로는 사랑처럼, 때로는 도전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영화는 언제나 나 자신과 나누는 정직한 대화가 남는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나에게 “쉽지 않겠지만, 모든 게 잘 풀릴 것이고, 결과에 만족할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그럴 시간에 정형외과용 베개를 사서 베고 푹 자라”. 미래의 나에게 “즐기는 걸 잊지 마라. 큼직한 사건뿐만 아니라 커튼에 드리운 아침의 빛, 테이블 주위로 터져 나오는 친구들의 웃음소리, 방금 찍은 푸티지를 처음 확인하는 때 같은 고요한 순간까지 놓치지 말고 붙잡아라. 인생과 영화는 그런 단순하고 사소한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고, 바로 그것들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임정환 <관찰자의 일지>
영화감독과 시의원, 스파이, 여행자와 귀신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세계에서 자신과 타인의 경계를 넘나든다. 그러면서 여러 개의 삶과 함께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관찰한다.

영화의 시작
1980~1990년대, 나의 고향 대전은 한국의 대표적인 성장 도시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은 효용을 잃어갔다. 옛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수도 베오그라드를 여행하며 비슷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그곳에는 새로운 낙원을 기대하던 희망과 못다 이룬 욕심, 퇴색해버린 꿈들이 공존한다. 여전히 이 도시들은 성장하고 있을까? 성장 다음에는 정체 도시가 되고, 쇠퇴 도시가 되는 걸까? 문득 살아본 적 없는 그 ‘삶’을 영화의 재료로 삼고 싶어졌다.
영화 속 언어
“무서워도 보고 싶은 거예요.” 이는 살아본 적 없는 ‘삶’과 닿은 부분일 것이다. 실제로 경험할 자신이 없거나 이루지 못한 일일지라도, 영화 속에서는 기꺼이 발을 담그고 지켜보며 체험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태국 농카이의 샘 오어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촬영한 장면들. 이 호텔은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의 영화 <메콩 호텔>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하는 곳이다. 10여 년 전 영화 <메콩 호텔>에서 그곳의 어떤 삶을 보았고, 몇 차례 찾아가 그곳을 체험했으며, 마침내 좋아하는 사람들과 또 다른 영화의 장면으로 기록하게 되었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앞으로 더 많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것에 기꺼이 뛰어들었던 많은 영화 속 인물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다. 그들의 두려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곤경과 실패가 나에겐 꿈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앞날의 내가 두려움과 조금 더 친밀하게 마주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안슐 차우한 <타이가>
남성 전용 마사지 숍에서 일하며 게이 포르노 오디션을 보러 다니던 타이가는 어느 날 아버지가 위독하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향한다. 아버지는 집과 치과를 물려주려 하지만, 누나는 타이가의 상속 자격을 부정하며 타이가의 성 정체성을 가족에게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타이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꾸릴 방법을 모색한다.


영화의 시작
나는 도쿄의 LGBTQ+ 커뮤니티 친구들, 그리고 공연자들과 3년 전부터 긴 대화를 이어왔다. 처음에는 연애, 외모와 신체에 대한 이미지들이 주된 화제였다. 그러다 많은 이들이 3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관심사가 상속, 양육 가능성, 그리고 여전히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서 ‘파트너십’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 변화는 흔히 ‘전형적인’ 게이 영화를 기대하는 보이스 러브(BL) 드라마와는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영화 안에서 나는 나이 들어가면서 사랑과 가족,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다시 자신과 협상해나가는지, 그리고 잘 드러나지 않는 현실을 다루고자 했다.
영화 속 언어
이 영화의 본질을 가장 잘 담은 장면이 하나 있다. 타이가와 코지가 해변가에 주차된 자동차 안에서 삶과 ‘있었을 수도 있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그때 코지가 이렇게 말한다. “봐, 우리가 어떤 거짓 속에서 살고 있든, 결국은 다 혼자 견뎌내야 하는 거야.”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첫 기쁨은 언제나 시작점에 찾아온다. ‘이건 내가 해야 할 프로젝트다’라는 직감이 들 때.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대부분 두려움과 불안에 휩싸인다.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가장 큰 부담은 LGBTQ+ 이야기를 정직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전하는 동시에, 나를 믿고 자신의 이야기를 맡긴 이들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 두려움은, 이 영화는 내 친구들을 위해 만든다는 사실을 상기했을 때 비로소 조금씩 누그러들기 시작했다.
영화로의 인도자
2013년부터 영화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나의 시각과 이야기 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이란 영화에 강하게 끌렸고, 당시 <바란> <천국의 아이들> 등 마지드 마지디 감독의 작품이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일상을 솔직하고 진실되게 담아내는 그의 영화가 지닌 순수성은 지금 내가 영화 안에서 끊임없이 좇는 것이다. 2018년, 마지드 마지디가 술라이마니야 국제영화제에 참석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라크로 여행을 떠났고, 그곳에서 그를 만난 순간은 영화가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확신을 준 계기가 되었다.
정승오 <철들 무렵>
용접 기사인 철택은 어느 날 암 말기 선고를 받는다. 이는 철택의 외동딸 정미, 철택과 사실상 이혼한 현숙, 현숙의 어머니 옥남, 철택의 친형 관택, 관택의 손자 동민의 삶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그동안 서로를 잊고 지낸 양가 가족들은 억지로 과거를 반추하며 서로에게 쌓여 있던 마음을 마주한다.


영화의 시작
몇 년 동안 작업과 간병을 병행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힘에 부치면서 내 안에 불안, 두려움, 조급증, 열패감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아프고, 또 가진 것 없는 사람이 아픈 이를 돌보다 보니 그야말로 공포였다. 이렇게 쌓이는 침전물을 어떻게든 해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이야기를 써보기로 마음먹었고, 뜨거운 마음과 머리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마음과 머리도 조금씩 식었고, 그러고 나니 지난날의 나와 지금의 나, 더 나아가 나의 부모와 가족, 주변 사람들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스며들었다. 그렇게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 속 언어
“이제 니들은 과거야.” 평생 가족을 위해 살아온 옥남이 구순 잔치 직후 자녀들에게 독립을 선언하는 장면에 이 대사가 등장한다.
가장 사랑하는 장면
현숙이 미뤄두었던 이혼 절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 그 순간에 피어나는 긴장감, 허무감, 헛헛함 등 만감이 교차하고 또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미묘한 순간이 양말복 배우의 얼굴에 고스란히 담겼다고 생각한다.
즐거움과 두려움 사이에서
가능하면 촬영 하루 전날 현장 가까운 곳에서 묵는다. 스태프와 배우들이 없는 공간을 홀로 서성거리며 다음 날 촬영을 상상하면 두근거리고 설레지만, 모니터 앞에 앉는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리고 어찌어찌 얼렁뚱땅, 상상한 대로 굴러가지 않는 촬영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는 항상 ‘아, 영화를 계속할 수 있을까?‘ 하고 자괴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영화로의 인도자
어릴 때 자주 아버지 또는 어머니와 함께 극장에 갔다. 두 분은 영화 취향이 달라서 각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함께 관람하지 않고 나를 데리고 극장에 가서 따로 보았다. 어머니는 보통 영어권 영화를, 아버지는 홍콩 영화를 즐겨 보셨다. 어머니와 본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불멸의 연인> <비터 문> <잉글리쉬 페이션트>. 아버지와 본 <천녀유혼> <태극권> <영웅본색> <희극지 왕> <풍운> 등이 떠오른다. 알게 모르게 부모님의 영화적 취향이 지금 나의 영화 만듦새에 영향을 미친 것 같기도 하다.
과거의 나에게, 미래의 나에게
과거의 나에게 “힘들어? 그런데 말이야, 여기 전혀 나아지지 않았어. 다시 생각해봐, 진지하게. 언제까지 네 돈 쓰면서 영화 만들래? 믿기지 않겠지만, 너 자식도 생겼어. 이거 계속할 수 있겠어?” 그리고 미래의 나에게 “아직도… 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