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위의 이야기는 관객의 시선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영화를 사랑하는 문화 예술계 인물 10인에게 영화에 관한 10개의 질문을 던졌다.
‘지금 떠오르는 영화의 한 장면’부터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까지.
10명의 관객이 전해온 답변 속에는 영화를 완성한, 그들 각자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듀나
영화비평가 겸 소설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듀나의 영화낙서판’을 포함한 각종 매체에 영화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평형추> <태평양 횡단 특급> <파란 캐리어 안에 든 것> 등의 소설, <옛날 영화,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와 같은 영화 에세이를 썼다.


최근 1년간 가장 큰 놀라움을 안긴 영화
<플로우>. 이토록 조촐한 스케일의 영화가 이렇게 큰 주제와 아름다움을 품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루 종일 영화 한 편을 반복 재생한다면
아마 뮤지컬영화가 아닐까. <사랑은 비를 타고> 와 <로슈포르의 숙녀들>은 이미 내 방 TV에서 하루 이상 반복 상영된 적 있다. 아,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도.

지금 떠오르는 영화의 한 장면
<스윙 타임>에서 댄스 선생인 진저(페넬로페 페니 캐롤)와 학생인 척하는 프레드(존 럭키 가넷)의 첫 번째 댄스 장면.

외우고 있는 대사
“거긴 내 가장 덜 취약한 곳이지.” <카사블랑카>에서 릭 블레인(험프리 보가트)이 총으로 자신의 심장을 겨누자 르노 경찰서장(클로드 레인스)이 하는 말. 모든 등장인물이 재치 있는 말을 하려고 시동을 걸고 있는데, 아무도 르노 서장을 못 이긴다.
최고의 무비 스타
언제든 바뀔 수 있지만, 베티 데이비스. 그를 덕질하면 20세기의 절반 이상을 커버하는 한 사람의 인생 자체를 감상할 수 있다.
무조건 스크린에서 봐야 하는 영화
얼마 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마이클 포웰과 에메릭 프레스버거의 <분홍신>과 <천국으로 가는 계단 / 삶과 죽음의 문제>를 봤다. 모든 사람이 이 테크니컬러의 기적을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카데미 비율로 마스킹되는 상영관이라면 더 좋겠다.

‘이 영화 안에서 살고 싶다’고 느낀 작품
앨프리드 히치콕의 <해리의 소동>에 나오는 버몬트의 작은 마을. 난 도시 사람이고 시골에선 못 살 것 같지만(1950년대 미국은 나 같은 동북아시아 사람에겐 더 힘들겠지), 영화를 보는 동안엔 ‘저기선 나쁜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고 싶은 영화 속 인물
왜 다들 허구의 인물을 만나려 할까? 난 그럴 생각이 전혀 없다. 하지만 <너와 나>의 세미(박혜수)를 ‘지금’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냥 얼굴만 보고 슬쩍 지나치고 싶다.
한 명의 감독을 만날 수 있다면
김수용 감독. 예전에 감독님이 사석에서 김진아 배우에게 그의 아버지인 김진규 배우와 관련한 에피소드들을 이야기하는 걸 옆에서 들었는데, 끝부분을 놓쳤다. 지금은 두 분 모두 고인이 되었지만.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
영향을 받은 영화가 너무 많지만, <벌집의 정령>이 언제나 그 목록에 들어갈 것이다. ‘영화에 대한 영화’ 중 <벌집의 정령>만큼 내게 와닿은 작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