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현지 시각), 밀라노의 실험적 브랜드 써네이(Sunnei)의 공동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로리스 메시나(Loris Messina)시모네 리조(Simone Rizzo)가 브랜드에서의 퇴임을 공식 발표했습니다.

써네이는 마지막까지 자신들다운 방식으로 작별을 고했습니다. 바로 밀라노 패션 위크 한복판, 전통적인 런웨이 대신 세계적인 경매사인 크리스티(Christie’s)와 협업해 거대한 ‘경매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인데요. 쇼가 열린 공간은 고풍스러운 나무 연단이 놓인 강당, 무대 중앙에는 금빛으로 새겨진 ‘Christie’s’ 로고가 상징처럼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not a fashion show, but an urgent act.” 쇼의 시작을 알린 이 문장이 울려 퍼지자 관객들에게는 두 개의 미스터리한 경매품이 적힌 카탈로그가 배포됐습니다. 모델들은 무대 양쪽 난간에 올라 전화기를 든 채 경매 참가자처럼 포즈를 취했고 쇼장은 어느새 경매장과 연극 무대를 오가는 듯한 이질적 긴장감으로 가득 찼죠.

첫 번째로 경매에 오른 것은 다름 아닌 ‘써네이’ 브랜드 그 자체였습니다. “이탈리아 장인정신의 증거이자 창의성과 대담한 미학을 담은 브랜드”라는 멘트로 소개된 첫 번째 경매품은 시작가 600만 패션 달러에서 시작돼 순식간에 1억 1,200만 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숫자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건 브랜드의 정체성과 정신을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무대 위에 올렸다는 점이었죠.

이어 두 번째 경매품이 등장했는데요. 거대한 나무 상자 하나가 무대 위에 세워졌고 “이 작업은 디지털과 물리적 현실 간의 지속적인 대화를 특징으로 하며, 패션·디자인·미학적 탐구의 경계를 허무는 다각 프로젝트로 확장된다. 그리고 한 쌍으로 판매된다”는 설명이 덧붙여졌죠. 이윽고 상자의 뚜껑이 천천히 열리자 로리스 메시나가 시모네 리조의 어깨 위에 올라탄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두 디렉터는 이 쇼의 마지막 주인공이자 작품이었죠. 시작가는 단 17 패션 달러, 최종 낙찰가는 9,500만 달러로 경매는 유쾌하게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무대는 단순한 패션쇼가 아니라 모의 경매 형식을 빌려 ‘창의성의 상품화’를 풍자한 일종의 마지막 인사였는데요. 디렉터 듀오는 “패션은 금융이며, 창의성은 상품이다(Fashion is finance, creativity is for sale)”라는 메시지를 통해 업계의 상업적 메커니즘을 날카롭게 비틀었죠. 퍼포먼스가 끝난 지 두 시간 후, 써네이는 공식 성명을 내고 두 사람의 퇴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들은 “10년이 지난 지금, 형태 변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낀다. 하지만 방향은 바꾸지 않을 것”이라며 “더 큰 자유·급진성·실험정신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전했죠. 이번 경매 퍼포먼스는 그들의 여정을 가장 써네이다운 방식으로 마무리한 무대였습니다.

써네이는 그간 파격적인 방식으로 패션계에 긴장과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지난해, 브랜드 10주년을 기념한 2025 S/S 쇼에서는 전원을 시니어 모델로 캐스팅해 ‘시간’과 ‘지각’을 화두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고, 2023 S/S 시즌에는 관객들에게 점수 패들을 나눠주고 룩을 현장에서 직접 채점하게 하는 등 전통적인 런웨이의 문법을 가볍게 비틀어왔는데요. 그들의 쇼에는 늘 실험성과 유희, 그리고 날 선 시선이 공존했죠.

2014년 밀라노에서 출발한 써네이는 기성복을 중심으로 대담한 컬러와 그래픽, 유머와 위트를 담은 ‘어른들의 유치원’ 같은 감성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팬층을 형성해 왔습니다. 남성과 여성복은 물론, 액세서리와 가구까지 확장하며 일상의 감각을 새롭게 조직해온 써네이의 두 디렉터. 그들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패션계에 어떤 파문을 일으킬지 그리고 이 실험적 듀오의 다음 행보는 어디를 향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