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으로, 스크린으로, 영화제로.
배우 전소니와 이유미의 마음이 닿는 곳에서 일어나는 일들.

전소니 이유미 당신이죽였다 넷플릭스 부산국제영화제 부국제 마리끌레르 BIFF JeonSonee LeeYoumi NETFLIX AsYouStoodBy
전소니 니트 톱 Alaïa.
이유미 니트 톱 Alaïa
전소니 이유미 당신이죽였다 넷플릭스 부산국제영화제 부국제 마리끌레르 BIFF JeonSonee LeeYoumi NETFLIX AsYouStoodBy
보디수트와 스커트 모두 Alaïa.
전소니 이유미 당신이죽였다 넷플릭스 부산국제영화제 부국제 마리끌레르 BIFF JeonSonee LeeYoumi NETFLIX AsYouStoodBy
슬리브리스 톱 H&M, 스커트 Gyouree Kim, 슈즈 McQueen.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최초로 공개돼요. 작품의 첫인상이 어땠나요?

대본을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강한 인상을 남긴 책이 있었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제가 <당신이 죽였다>의 원작 소설인 <나오미와 가나코>를 4~5년 전에 읽었더라고요. 이 이야기를 배우의 연기로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소설이라 놀라우면서도 반가웠고, 그만큼 욕심이 났어요. 원작의 ‘나오미’와 제가 연기한 ‘은수’가 동일 인물은 아니지만, 은수에게 묻어 있을 나오미의 성향이 무엇일지 궁금해하며 소설 속 문장들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당신이 죽였다>는 평범한 일상을 위해 가장 절박한 선택을 하는 단짝 친구 ‘은수’(전소니)와 ‘희수’(이유미)에게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죠. 은수에 대해 알아가며 어떤 생각을 했나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날 때마다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느꼈는데, 이번에 은수를 알아가면서 그 어려움을 더욱 크게 실감했어요. 은수는 나보다 남을 위할 때 더 용기 있는 사람인 것 같더라고요. 본인이 했다면 용납하지 못할 행동을 한 사람한테 “충분히 그럴 수 있어”라고 얘기할 줄 아는 마음이 은수한테 있다고 느꼈어요. 어떤 사람이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생각해봤더니, 은수에게 타인을 구하는 건 곧 자신을 구하는 일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렇다면 은수가 돕는 희수는 어떤 친구일지, 은수는 희수한테 얼마나 많은 걸 해주고 싶었을지 고민하면서 이번 작품에 임했어요.

은수는 희수를 만나면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자신이 겪었던 지옥에 빠진 희수를 구하기 위해 살인을 제안한다고 들었어요. 둘의 이야기가 드라마 <악귀> <VIP> 등을 만든 이정림 감독의 연출을 통해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돼요.

감독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소니는 강한 듯한데 약한 얼굴이 문득 비치고, 유미는 약해 보이지만 강한 사람 같아.”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을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에 저한테 은수 역을, 유미한 테 희수 역을 맡기고 싶으셨대요. 그 얘기가 흥미로워서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제가 은수로서 유미를 구해줘야겠다 싶었고요. 은수와 희수의 공모는 예측 가능한 흐름으로 시작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을 계속 맞이하면서 조마조마하게 이어질 거예요.

두 친구의 공모를 표현하며 연대의 힘을 새삼 느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요즘 세상이 개인적이고 삭막하다고 느끼는데, <당신이 죽였다>를 만들면서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어요. 타인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 사이도요. 지나온 날들에 해결하지 못한 지점들을 언젠가는 흘려보낼 수 있다는 걸 이번 작품을 통해 느꼈어요. 그 덕분에 위안을 얻었죠.

<당신이 죽였다>가 용감하게 행동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점도 인상 깊어 요. 이전에도 <소울메이트> <죄 많은 소녀> <여자들> 등 여성을 중심에 둔 작품에 다수 출연했죠.

여성 서사를 전하는 작업에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해요. 제가 직접 작품의 이야기를 쓰진 않지만, 한편이 되어 주고 싶은 캐릭터를 연기하고 진심을 담은 대사를 말할 수 있다는 게 참 좋아요. 관객으로서 마음이 가는 여성 캐릭터도 많아요. 넷플릭스 시리즈 <그레이스>의 ‘그레이스 마크스’, 영화 <가여운 것들>의 ‘벨라 백 스터’와 <작은 아씨들>의 ‘조’처럼 자신에 대해 궁금해하며 탐구해가는 여성들을 특히 좋아해요.

전소니 배우의 전작을 돌아보면서 발견한 또 하나의 특징이 있어요. SF, 멜로,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며 간극이 큰 캐릭터들을 연기해왔더라고요.

간극이 큰 덕분인지, 새로운 캐릭터를 맡을 때마다 전에 없던 시각이 생겨나요. 현장을 넘어 일상에서도 매번 다른 공기주머니를 달고 사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동일한 풍경을 마주하더라도, ‘작품 속 캐릭터라면 지금 어떤 마음일까?’라는 질문이 떠오르면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당신이 죽였다>를 예로 들면, ‘은수는 저 들판처럼 탁 트인 곳에서 희수랑 살고 싶겠구나’, ‘은수라면 저기 보이는 파출소가 원망스럽겠지’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

좋은 영향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어요. 캐릭터가 부정적인 면을 지니는 경우도 있을 테니까요.

맞아요. 그런데 전 항상 제게 주어진 캐릭터를 저보다 좋은 존재로 여겨요. 이 일을 시작한 이래 ‘내가 맡은 캐릭터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왔거든요. 그게 제가 현장에서 표현할 때 최선을 다하면서 후회를 남기지 않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작품이 바뀔 때마다 사랑과 이별을 거듭해왔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둘 다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어렵진 않아요. 어떤 캐릭터든 알아가다 보면 어느덧 정이 들어서 사랑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촬영이 끝나면 ‘작품이 공개될 때까지 잠시 떨어져 있는 거야’ 하면서 곧잘 보내주고요.(웃음) 그러다 시간이 흘러 재회할 시점이 되면 그사이 제 마음이 바뀌어 있기도 해요. 그래도 각 캐릭터가 제게 남긴 것들이 있으니, 잊고 지내다가도 문득 떠올라서 그리워질 때도 있어요. 연기만큼 조건 없는 사랑의 소중함과 애틋함을 일깨워주는 게 없는 듯해요.

앞으로 연기를 통해 더 많은 사랑을 기꺼이 하려는 마음도 있죠? “계속 연기에 연연하고, 휘둘리고 싶다”라고 말한 적도 있어요.

네. 지금도 이렇게 연연하면서 휘둘리고 있으니(웃음) 연기에 대한 마음이 변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다만 저에 대한 의심을 덜어내고, 스스로에게 더 욱 큰 지지와 용기를 전할 필요는 있겠다 싶어요. 제가 어느 순간 지쳐 버리지 않고, 계속 버텨낼 수 있도록요.

전소니 이유미 당신이죽였다 넷플릭스 부산국제영화제 부국제 마리끌레르 BIFF JeonSonee LeeYoumi NETFLIX AsYouStoodBy
전소니 이유미 당신이죽였다 넷플릭스 부산국제영화제 부국제 마리끌레르 BIFF JeonSonee LeeYoumi NETFLIX AsYouStoodBy
슬리브리스 톱 H&M.

연기만큼이나 영화를 향한 마음도 여전한 것 같아요. 데뷔 초반부터 “영화가 시간이 많이 흘러도 살아 있다는 점이 좋다”는 말을 자주 했죠. 요즘의 생각은 어떤가요?

‘영화가 예전만큼 길게 살아남나?’ 하는 의문이 들긴 해요. 흥미롭고 의미 있는 영화가 아주 많아졌고, 한국영상자료원에 가야 접할 수 있던 작품을 OTT 플랫폼에서 시청할 정도로 접근성도 좋아졌잖아요. 이런 환경에서 우리가 과연 한 편의 영화를 계속 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하지만 영상이라는 형태로서 생명력이 약해졌더라도, 그 안의 이야기는 관객의 마음속에서 오래 머물 수 있을 거예요. 이 또한 영화가 존속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네요. 영화의 이야기가 관객을 만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낼 수도 있을 테고요.

맞아요. 관람 직후의 감상뿐만 아니라, 영화에 대한 기억 또한 새로운 의미를 갖기도 해요. 신기하게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 보는지에 따라 영화가 복합적인 기억으로 남더라고요. 이전에 본 영화를 나중에 다시 봤을 때, 같은 작품이 아니라고 여길 정도로 새롭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실망해서 상처받은 적도, 의외로 긍정적인 인상을 받은 적도 있었죠.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에 대해 종종 적어둔다고 들었어요.

그 인상들이 잊 힐 수 있다는 게 억울해서요. 당장은 중요하지 않은 듯해도 시간이 지나면 필요할지도 모르잖아요. 예전의 제가 적어둔 메모를 보고 ‘오, 괜찮은데?’ 싶어 기특할 때도 종종 있어요.(웃음)

누군가의 삶에서 파급력을 지닐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로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요?

최근 제 전작을 보고 들려주는 말들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소울메이트>의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내가 싫어하던 계절을 다른 마음으로 기다리게 됐다”라고 전해준 적이 있어요. 생각지 못한 지점이라 고맙더라고요. 이런 반응들이 제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어요.(웃음) 그만큼 영화 작업이 신비로운 일로 여겨지고요.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지금, 본인과 영화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나요?

동지애 같은 감정이 생겼어요. 제가 배우로서 제 자리를 잘 지켜갈 테니, 영화도 그 자리에 계속 있어주기를 바라요.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또한 변치 않았으면 하고요.

최근 한 인터뷰를 읽었는데, 본인의 극장 경험을 자세히 기억하고 있더군요. 극장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영화를 보는 장소에 우위는 없지만, 극장에서 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엔 큰 차이가 있어요. 스포츠 경기를 보러 가면 관중이 한마음으로 응원하듯이, 극장의 수많은 사람이 한 팀을 이뤄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만의 기운이 확실히 있더라고요. 혼자 볼 때보다 더 열린 마음으로 작품을 받아들이게 되고, 다 함께 약속된 시간에 모여 앉아 스크린만 바라보는 모습이 착하게 느껴지기도 해요.(웃음) 이런 경험을 좋아하기 때문에 영화관을 자주 찾아가요. 또 극장마다 스크린 크기와 객석 구조, 영사기 위치 등이 제각각 다르잖아요. 그게 영화 감상에 은근히 영향을 미치더라고요. 그러니까 다양한 영화관이 앞으로도 계속 존재하기를 바라요. 극장을 찾아가는 게 미래에도 당연한 일이면 좋겠어요.

영화와 관련된 모든 것에 두루 애정을 가진 것처럼 느껴져요. 이토록 영화를 아끼는 이유는 무엇인 것 같나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났는데,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 거예요. 왜 그럴까 고민 하다 보니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가 더 새로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쩌면 몇 시간의 영화 감상이 며칠의 여행보다 낯선 경험과 사유를 안겨줄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 경험을 많이 누리다 보면 일상 가까이 있는 대상이 다르게 보이기도 할 테고요. 매일같이 반복되는 삶의 박자를 조금 바꿔보는 것, 그런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고대하는 부국제가 곧 시작되죠. 관객으로서 잊지 못할 부국제의 추억이 있나요?

제 인생 최초의 손 떨리는 티케팅이 부국제 예매였어요. PC방 모니터 앞에 앉아서 초조한 마음으로 스케줄 코드를 입력하던 기억이 문득 떠오르고요.(웃음) 한번은 친구들 대여섯 명이랑 부국제를 찾아가서 며칠 동안 각자 영화만 보자고 했어요. 우연히 작품이 겹쳐 같이 볼 때도 있었고, 혼자 상영관으로 가는 길에 친구를 마주치기도 했죠. 그때 왜 그렇게 행복했는지… 뭐랄까, 진짜 축제 같았어요.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의 풍경이 무해해 보이더라고요. 부국제의 모든 순간을 좋아해온 만큼, 올해 부국제도 기대 하고 있어요.

올해도 아름다운 영화들이 부산을 많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러니까요. 상영작의 면면이 무척 화려하더라고요. 궁금한 작품들을 적어뒀는데, 20편 정도 돼요. 이번엔 티케팅에 성공하면 좋겠네요.(웃음)

전소니 이유미 당신이죽였다 넷플릭스 부산국제영화제 부국제 마리끌레르 BIFF JeonSonee LeeYoumi NETFLIX AsYouStoodBy
보디수트와 스커트 모두 Alaï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