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위의 이야기는 관객의 시선을 거쳐야 비로소 완성된다.
영화를 사랑하는 문화 예술계 인물 10인에게 영화에 관한 10개의 질문을 던졌다.
‘지금 떠오르는 영화의 한 장면’부터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까지.
10명의 관객이 전해온 답변 속에는 영화를 완성한, 그들 각자의 세계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금정연
서평가
‘서평을 쓰지 않는 서평가’로 활동하며 책이나 영화에 관한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쓴다. <담배와 영화> <한밤의 읽기>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공저) 등의 책을 쓰고, 영화 <나랏말싸미>의 시나리오를 함께 썼다.

최근 1년간 가장 큰 놀라움을 안긴 영화
소마이 신지의 <태풍클럽>. 어두운 학교 수영장에서 시작하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눈을 뗄 수 없다. 영화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이토록 압도되는 느낌을 받은 게 얼마 만인지.

하루 종일 영화 한 편을 반복 재생한다면
요나스 메카스의 <우연히 나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 다른 일을 하다 중간중간, 창밖 풍경을 바라보듯 멍하니 보기 좋을 듯하다.
지금 떠오르는 영화의 한 장면
<머니볼>의 마지막 장면.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온 천 문학적 연봉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부한 빌리 빈(브래드 피트)이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덜컹거리는 도로를 달린다. 다른 손으로 센터 콘솔을 열고 더듬더듬 CD를 찾아 플레이어에 넣으면 딸이 아빠를 위해 직접 녹음한 노래가 흘러나온다. “그냥 쇼를 즐겨요. 아빠는 루저야”라는 가사를 담은 노래가. 지금도 가끔 TV 채널을 돌리다 <머니볼>이 나올 때면 그게 어느 지점이건 상관없이 끝까지 본다. 순전히 이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해서.
외우고 있는 대사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한다. 그해부터 난 많은 것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한 것만 생각했다.” 왕가위의 <동사서독>에 나오는 대사다. 왕가위를 잊은 지 오래지만 황약사(양가휘)의 이 말은 잊히지 않는다. 이 대사가 내게는 복사꽃인 셈이다.
최고의 무비 스타
브루스 윌리스. 정확히 말하면 그는 ‘무비 스타’가 아니라 ‘무비’ 그 자체다.

가장 완벽한 포스터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 검은 하늘에 불꽃으로 이루어진 큰 꽃이 있고, 그 아래 양복에 선글라스를 낀 아저씨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해변을 걸어 간다. 참 이상하지. 별다를 것 없고 멋지지도 않은 이 포스터가 10대 시절의 내게는 완벽하게 느껴졌는지. 왜 중년이 된 지금도 그 느낌은 달라지지 않는 건지.

무조건 스크린에서 봐야 하는 영화
알폰소 쿠아론의 <칠드런 오브 맨>. 2007년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본 건 내 영화 인생(이랄 게 있다면…)에서 크나큰 행운 중 하나다.

만나고 싶은 영화 속 인물
<크레이지, 스투피드, 러브>의 제이콥 팔머(라이언 고슬링). 중년의 스타일링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다.(아님)
한 명의 감독을 만날 수 있다면
데이비드 린치.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싶다.
가장 큰 영향을 준 영화
조철현의 <나랏말싸미>. 만약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까지 영화판을 기웃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